-엄마들의 착각, 그 이유.
초등학생인 아이 친구들의 엄마들을 만나거나,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의 학부모 상담을 하면서 늘 느끼는 한 가지가 있다. 다들 '우리 아이가 영어는 잘해요.'라고 굳게 믿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학교는 물론 집에서든, 학원에서든 영어 학습을 전혀 시작하지 않은 초등학교 1~2학년의 엄마들조차도 '우리 아이는 영어를 가르친 적도 없는데 가끔 영어로 말을 할 때도 있어요.'라고 뿌듯해하며 자랑스럽게 말하기도 한다.
국어, 수학, 과학 등 다른 과목은 안 그런데 유독 영어만큼은 엄마들이 자식의 실력을 이리도 과대평가, 혹은 착각하는 이유는 뭘까.
아기가 태어나고 보통 12개월 정도면 첫걸음마를 시작한다. 평균 수치이기 때문에 그보다 빠르기도, 늦기도 하다. 아이가 10개월에 아장아장 걸으면 엄마들은 마냥 신기해한다. '와! 12개월에도 못 걷는 아기들도 많은데 벌써 걷다니! 우리 아기 대단해!' 그리고 주위 엄마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벌써 걸어? 와 진짜 빠르다. 우리 아기는 언제 걸으려나. 아직 잡고 서는 것도 잘 못하는데...'
엄마들은 첫걸음마를 시작으로 두 단어 말하기, 문장 말하기, 숫자 세기, 연산 등 모든 발달사항을 또래와 비교하며 우리 아이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하게 된다.
하지만 영어는 그 가늠이 쉽지 않다. 영어 유치원, 학원에 보냈더니 집에 와서 영어 노래도 부르고, 원서 책도 읽기 시작하고, 자막 없이 만화 영화도 재미있게 본다. 그리고 혼자서 놀 때 재잘재잘 영어로 수다도 곧 잘 떤다. 게다가 영어유치원, 학원 선생님의 평가도 늘 좋다. 영유나 학원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있는 시험에서도 늘 좋은 점수를 받곤 한다. 학원 내외의 영어 콘테스트에서 나가서 유창하게 실력을 발휘하는 동영상을 보면 한없이 기특하다. 그런데 막상 다른 친구들의 실력은 어떤지 볼 수 있는 기회는 없어서 내 아이와의 비교 대상은 결국 엄마 자신이 되는 것이다.
엄마들.
빠르면 초등학교 3학년이던 10살에, 나이가 좀 있어서 80년대 이전 태생이라면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처음 영어를 접한 세대들이다. 본인은 10살에 a, b, c, d를 처음 알았는데, 이제 7살인 아이가 "I like apples.", "I am hungry!"라고, 그것도 엄마는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엄청 좋은 발음으로 외치다니! 정말 영어에 뛰어나다고 느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영어 유치원과 영어학원에 투자한 액수가 클수록 '아이 실력은 분명 좋을 것이다, 아니 좋아야만 한다'라는 믿음도 슬며시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그래서 결국 내 아이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건 더욱 어려워진다.
보통 고학년이 되면서(일부학원은 저학년부터) 영어 학원에서는 테스트 후 레벨별로 반을 분류하는데, 믿었던 우리 아이가 top 반에 배치되지 않으면 엄마들은 당황해한다. 그렇게 영어학원을 재미있어했는데, 그렇게 영어를 잘했는데 top 반이 아니라니... 처음엔 아이가 실력발휘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단지 시험운이 없었다고 믿는다. 몇 번의 반복을 통해 그제야 아이의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 확인하려 하지만, 이미 지난 몇 년간 아이 영어를 학원에 100프로 맡긴 상태이니, 부족한 부분을 알아낸다 한들 이제 와서 엄마가 채워주기도 막막하다.
그 학원의 터줏대감 격이었던 아이가 그 학원의 top 반에 들어가지 못했다면 그건 아이 탓이 아닌 학원 탓을 해야 한다. 모든 반 아이들을 top 수준으로 만들지 못한 학원 탓. 내 아이의 그릇이 달라서 top 반이 아니라고? 엄마들은 내 아이의 그 작은 그릇을 크게 만들어 채워달라고 그 많은 돈을 학원에 투자하는 것이다.
초등 고학년 내내 영어학원의 top 반에 속했던 아이들이 중고등 학교 진학 후 영어시험 점수가 잘 안 나오면, '시험은 진짜 영어실력과는 다르다', 혹은 '회화와 시험은 별개다'라는 핑계를 위안 삼으며 여전히 '우리 아이는 영어를 잘해요'라고 믿기도 한다. 물론 모든 시험은 '잘 보는 요령'을 터득하면 더 높은 점수를 얻을 수 있기에 전혀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아이의 영어실력을 치켜세우기엔 무리가 있다.
아이 영어를 학원에만 맡겨서는 절대 안 된다.
엄마들은 좀 더 객관적으로, 그리고 자주 아이 실력을 확인해야 한다.
달달 외워서 발표하는 영상은 아이의 진짜 실력과는 다를 수 있다. 실제 수업시간에 아이의 실력과 더불어 학습 태도까지 확인해야 한다.
학원에서는 법적인 여러 가지 이유로 수업 영상 촬영이 어려울 테니 공개수업을 하지 않는 한 확인할 방법이 없다.(공개수업을 하더라도 반은 '짜고 치는 고스톱' 쯤으로 봐야 한다.)
1:1 과외 수업 중이라면 선생님께 요청해서 수업을 녹화하던지, 아니면 문 뒤에서 귀동냥이라도 하며 열심히 들어봐야 한다. 집으로 과외 오시는 원어민 샘에게 한 달에 한두 번은 zoom 수업을 요청하고, 수업 내용을 녹화한 후 나중에 확인하면 아이를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 아이의 실력을 파악하기에 가장 편한 방법은 전문업체의 화상영어 수업이다.
내 아이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확인하고 부족한 부분을 꼼꼼하게 채워주며 중학교·고등학교에 가서도 흔들리지 않을 실력, 나아가 토익, 토플, 아이엘츠 등 어떤 종류의 영어 시험이라도 아이가 '도전해 볼 만 하다'라고 자신할 정도의 실력으로 탄탄히 만든 후 '우리 아이가 영어를 잘해요.'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엄마들이 많아지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