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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이슬 Apr 07. 2024

뮤지컬 <파과> 후기

※스포 주의


-소설&뮤지컬 <파과>의 내용이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책이나 공연을 관람 예정이고, 스포일러를 싫어하신다면 읽지 말아주세요!




240406.

최애&최애 조합인 신성록&차지연 페어로 뮤지컬 <파과>를 보고 왔습니다.

쓰린 속을 부여잡고 일어나서, 까먹기 전에 남겨보는 간략한 후기.




극호

-출연진

배우분들의 연기는 정말 더할 나위 없이 좋았습니다. 창작뮤지컬 초연이라 걱정을 많이 했는데, 기대 이상으로 재밌게 봤습니다.

군데군데 구멍이 나있는 빈약한 서사를, 배우들이 연기로 멱살 잡고 메꾼다는 느낌까지 받았거든요.

특히 1인 2역을 연기한 최재웅 배우의 연기가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서사의 부족한 개연성을, "내가 바로 그 개연성이다"라고 외치며 메꿔버리시더라고요.


차지연, 신성록, 최재웅


-<파과>

2막에 조각이 부르는 넘버 <파과>. 무용이 죽고, 류와 그의 아내&아기가 죽고.

늙고 병들어 가는 자신의 모습 그리고 썩어버린 과일까지.

모든 서사가 한 번에 폭발하며 터지는 넘버가 너무 좋았어요.

이 장면을 위해 차근차근 서사를 쌓아왔구나, 하는 느낌이랄까요.


-신성록

이건 제가 팬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입니다만... 신성록 넘나 사랑스러운 것...!

<파과> 직전 출연작이 <드라큘라>였는데, 처음에 투우가 롱코트를 입고 나오자마자 바로 드라큘라가 오버랩되더라고요. 저 큰 키로 상대를 내리깔아 보는 시선에 정말 미쳐버립니다아아아ㅏㅏㅏㅏㅏㅏ!!!


극 중 '방역'을 할 때는 다양한 가죽옷들을 입고 나오는데(짧은 가죽재킷, 긴 가죽재킷, 검정 가죽재킷, 갈색 가죽재킷 등등) 배우가 가죽 마니아로 유명하기 때문에, 분명 <파과> 출연을 결정한 데는 가죽을 맘껏 입을 수 있다는 점도 한몫한 게 아닐까 하는 합리적 의심이 들었...


<드라큘라>에서는 여주인공 '미나'의 주위를 끊임없이 맴돌며 사랑을 갈구하고, 집착하고, 애증을 보이는데

<파과>에서도 마찬가지로 여주인공 '조각'의 주위를 맴돌며 집착하며 광기를 보입니다.

그 광기 어린 목소리와 눈빛... 덕후는 여기에 눕습니다... 여기가 제 묫자린가 봐요. 사요나라......



좌 드라큘라, 우 파과(출처: @_record_one_day)



-가죽재킷

내용도 그렇고 주인공들의 직업도 그래서(주인공들 모두 살인청부업자입니다), 아무래도 간지폭풍을 위해서인지 주인공들이 다양한 가죽재킷을 입고 나옵니다. 다들 내용을 숙지하고 오신 건지, 관객분들도 가죽 재킷을 입은 분들이 무척 많았습니다(물론 저도).

꽃놀이하는 커플들은 꼴 보기가 싫었는데 가죽재킷을 나란히 입고 온 커플분들은 무척이나 귀엽더이다...


-마지막 격투신

대미를 장식하는 투우와 조각의 격투신에선 배우들이 자체 슬로 효과를 연기하며, 독백이 나옵니다.

소설의 내용들이죠. 가령 투우가 움직일 때는

'투우는 슬슬 부아가 끓기 시작하는데 그 이유는 조각의 눈에서 이기겠다는 생각 없이 가능한 한 시간을 끌겠다는 의도를 엿보았기 때문이다.'

조각이 움직일 때는, 

'몸을 뒤로 완전히 젖히며 그 자리에 무릎을 꿇는 바람에 칼날은 경동맥 대신 허공에 꽂힌다. 넘어지는 척하면서 그의 하복부에 꽂은 칼을 거의 간 부위까지 올려 긋고...'와 같은 식이죠.

소설에 묘사된 장면들이 생생하게 구현되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원작 강추.


-독백

연극과 뮤지컬엔 독백이 무척 많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파과>는 독백이 배우가 현장에서 직접 하는 게 아니라, 회상신 비스무리하게 처리해서 '녹음된 독백'을 엄청 많이 활용하더군요.

독백 뒤에 이어 바로 장면이 전환되거나, 대사가 나오거나, 넘버가 나오는 경우가 다른 극들에 비해 무지무지하게 많았습니다.

이게 적절히 활용되는 곳에선 꽤 괜찮았습니다. 소설의 방대한 분량을 2시간 안에 담기엔 아무래도 무리였을 테니까요. 원작의 내용을 들려주며 자연스레 관객들에게 스토리를 전달하는 의미도 있었고요. But...



불호

-독백

하지만 이 독백이 너무 남발된다는 느낌도 여러 번 들었습니다. 관객들은 배우의 연기를 보러 온 거지, 녹음된 목소리를 들으러 온 게 아니거든요. 특히나 '굳이 여기서?', '굳이 이 내용을?' 싶은 부분도 독백 처리가 되어있는 곳들이 많아, 호불호 모두 포함시켰습니다.


-조잡한 넘버들

물론 좋은 곡들도 많았지만, 대사로 처리하거나 생략했어도 될 필요 없는 부분들조차, 그것도 앙상블들만의 넘버로 채워진 곳들이 좀 있습니다. 개인적으론 아쉬웠어요.


-연출의 분위기

<파과>는 소재와 전개가 꽤 어두운 편입니다. 그런데 뮤지컬에선 이 암담한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한 의도인지 군데군데 쓸데없는 개그와 활기찬 넘버들이 들어있더라고요. 차라리 지금보다 훨씬 더 딥하게, 암울하게, 어둡고 칙칙한 퇴폐미에 집중했더라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가끔 분위기를 깨더라고요.

특히, 무슨 비보잉을 선보이는 앙상블들은 대체 의도가 뭔가 싶었습니다. 여기서 비보이들이 왜 나옵니까.



극불호

-앙상블의 의상

앙상블의 배우 중, 몸의 굴곡이 모두 드러나는 레깅스와 크롭티를 입은 분들이 있던데 극의 내용에도, 역할에도 어울리지 않는 의상으로 보였습니다. 매우매우 거슬렸어요.


-레이저쇼

극의 특성상 칼부림이나 총격신이 매우 많은데, 그때마다 무슨 롯데월드 레이저쇼마냥 특수효과들을 남발해서 거슬렸습니다. 빨간색은 물론이고 파란색 초록색 등등 휘황찬란하던데, 극의 분위기와 좀...?


-조각의 감정 처리

뮤지컬에선 강 박사에게 치료를 받자마자 한눈에 조각이 반해버리는 감정과 표현들이 나옵니다. 글쎄요. 원작은 그렇지 않았던 거 같은데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건가 싶었습니다. 원작을 보지 않은 지인도 '65살의 노부인이 30대 그것도 가정이 있는 유부남에게 첫눈에 반하는 설정이 말이 되냐'고 불평하더라고요.

예, 개연성이 아주 박살이 났습니다.

다만 여기서 영리하게도 '류'와 '강 박사'는 한 배우가 연기합니다. '류'는 조각의 어린 시절 첫사랑이죠.

그렇다면 늙어버린 조각이 자신이 사랑했던 류의 모습을 강 박사에게서 발견했다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물론 이 어거지 해석조차 가능하게 한 건, "내가 바로 그 개연성 그 잡채다 관객놈들아!!!" 하고 외치는 최재웅 배우의 연기가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신성록&차지연 보러 갔다가 최재웅 배우에게 치이고 왔습니다...



간략하게 쓰려다 길어진 뮤지컬 <파과> 후기 끝!




ps. 최재웅 배우는 뮤지컬 <쓰릴 미> 때 몇 번 봤었는데, 이 극은 동성애를 소재로 한 범죄 스릴러 극입니다.

지하철에서 최재웅 배우 이야기를 하면서 귀가 중이었는데, 건너편 젊은 여성 두 분이(10대 후반~20 초?) 갑자기 딥키스를 갈기시더라고요...? 에...? 내가 방금 쓰릴 미를 보고 온 거였나, 여기가 혜화역이 아니고 브로드웨이역이었나 싶어 대혼란이... 예... 예쁜 사랑하십쇼... 하지만 지하철에선 좀...?


ps2. 뮤지컬은 해가 거듭되며 계속 수정된다는 사실, 혹시 알고 계신가요? 가령 <몬테크리스토>는 초연과 지금 공연의 넘버와 내용이 좀 다릅니다. 초연 땐 후반부로 갈수록 스토리가 개연성을 잃고 이상했었는데, 지금은 결말부가 꽤 수정되어서 완성도가 높아졌죠. 삭제되거나 추가된 넘버도 있고요.(이 작품은 특히! '지옥송'에서 신성록이 복수할 대상들을 내리깔아 뭉개면서 연기&노래하는 모습이 일품이니 꼭 보십쇼... 세 번 보세요)

<파과> 또한 그렇게 되겠죠. 재연, 삼연, 사연이 계속 이어지며 완성되어 가는 극을 보는 것도 뮤덕의 기쁨 중 하나랍니다. 아마 저도 계속 N차 관람을 시도하게 될 것 같네요.


ps3. 최애의 극을 보고 바로 귀가하는 건 위법입니다. 뒤풀이 자리를 가서 최애 이야기와 공연 썰을 야무지게 풀어준 뒤에 가야 하거든요. 치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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