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삿짐 사이사이로 20년을 품은 추억들이 떠올랐어요. 손끝에 스치는 한 조각조각의 물건들이 세월의 흐름을 되살리듯, 매일 한 움큼씩 정리하며 그때의 나와 다시금 마주했죠. 안방을 정리하다 만난 아이들의 신생아 팔찌는 아기때의 작고 소중한 온기를 고스란히 담고 있었고, 신랑과 주고받았던 편지들은 두근거리던 우리의 20대를 찬찬히 떠올리게 했어요.
힘들지만 차근차근 집안 곳곳을 정리하며, 오랜 시간 나를 품어주던 이 집과 충분히 작별을 할 수 있어 감사했답니다. 새로운 집에선 요즘 많은 쓰는 인덕션 대신, 과감하게 4구 가스레인지를 선택했어요. 오랜 시간 익숙해진 불의 온기와 힘을 그대로 가져오고 싶었거든요. 불꽃이 힘 있게 타오르는 모습을 보니, 주방 한가득 요리 향을 채우고픈 마음이 벌써부터 가득해졌답니다.
작은 홍합 3천원짜리 한 팩으로 두 가지의 요리를 해보았어요. 소박한 재료 하나지만, 따뜻한 국물의 홍합탕이 되었다가, 깊은 맛을 품은 홍합 스튜가 되었답니다. 요리는 생각보다 간단하지만 온 집안에 바다향은 가득해질 거예요. 바다향이 강하면 환기를 꼭 하세요.
홍합은 고무장갑 끼고 팍팍 문질러 여러번 닦고 수염처럼 나온 부분을 당겨서 빼주시면 일단 요리의 반은 끝났답니다. 파, 마늘, 청양고추, 소주 없으면 미림, 소금 조금 넣고 끓이면 완성이에요.
홍합탕 먹고 남은 홍합을 분리해서 양파랑 토마토소스 치킨스톡 넣으면 맛있어요. 처음에 청양고추를 넣어서 더 칼칼한 홍합스튜가 된 것 같아요.
홍합탕은 그릇에 담아내어 바다의 맑고 깊은 맛을 그대로, 홍합 스튜는 따뜻한 색감으로 그릇에 가득 채워 식탁에 올렸죠. 숟가락을 살짝 담가 첫맛을 보니, 입안 가득 퍼지는 시원하고도 부드러운 풍미에 저도 모르게 맥주를 준비하게 되네요.
작은 홍합 한 줌이 이렇게 따뜻한 한 끼로 나를 위로해 줄 줄이야. 오늘 하루도 마무리하며, 이 작은 바다를 마음에 담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