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건축
7월에 예매했던 클래식 공연을 보러 부천 아트센터에 다녀왔습니다.
바이올린 클래식 공연은 처음이었는데요.
그런데, 막상 연주회에 가려니까 뭘 입고 가야 할지 고민이 됐습니다.
뭘 입고 갈까 고민하다가 신입사원 초창기 시절에 신고 다니던 구두를 오랜만에 꺼내 신었습니다.
요즘에는 결혼식 갈 때 아니면 신을 일이 잘 없는 구두인데요.
오랜만에 구두를 꺼내서 신어 보니, 갑자기 대학생 시절 1년 동안 신월동에서 진행했던 도시재생 프로젝트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뭘 입고 갈까 고민하다가 도시재생 프로젝트가 떠오른 이유는 옷이랑 관련이 있는데요.
신월동 도시재생 프로젝트는 저를 지도해 주셨던 교수님 연구실에서 진행했던 프로젝트였습니다.
당시에 저는 조교로 참여해서 신월동에 거주하시는 거주자분들에게 매주 한 번씩 도시재생과 관련된 교육을 진행하고 있었는데요.
교육이라고 해서 거창한 내용은 아니었고 마을에 대한 기록을 데이터 하는 방법, 마을과 관련된 인적 기록을 인터뷰 형식으로 기록하는 구술사에 대한 방법을 알려드리는 방식이었습니다. 나중에 대학교의 지원이 없어지더라도, 신월동의 도시재생이 지속될 수 있도록 자립력을 키워주자는 목표로 진행됐었습니다.
그렇게 한 달 정도가 지났을 즘, 마을활동가로 활동하시던 주민 한 분이 저에게 질문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도시재생을 해야 하는 이유가 뭐죠? 우리가 이렇게 좋은 공간 하나 만들어 준다고 해서 마을이 엄청 바뀌는 거도 아니고, 그냥 재개발이 더 좋은 거 아닌가"
저 질문을 지금까지 기억하는 이유는 제가 저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했기 때문인데요. 정말로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었습니다. 도시재생 프로젝트에 조교로 참여하고 있었지만, 부끄럽게도 스스로 도시재생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도 없이 활동을 이어가고만 있었습니다.
주민분들 앞에서 '그러게요'라고 대답하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그때의 저도 질문과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거 같습니다.
저에게 원하는 대답을 듣지 못하자 곧이어 저를 향했던 질문이 교수님에게로 향했는데요. 그때 저는 속으로 위기를 넘겼다는 생각보다도, 교수님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도시재생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으신지 굉장히 궁금하다는 생각으로 가득했었습니다.
교수님의 답변을 요약하면 청바지였습니다.
청바지.
정말 생각하지도 못한 답변이었는데요.
교수님이 도시재생을 하시는 이유는 주민들에게 맨날 입는 추리닝이 아니라 청바지를 꺼내 입고 방문하고 싶은 공간을 만들어 주고 싶다는 거였습니다. 맨날 추리닝만 입고 다니던 동네에 깔끔하고 정돈된 공간이 새롭게 생긴다면, 맨날 추리닝만 입다가도 그 공간에 갈 때면 청바지를 꺼내서 입고 싶게 되고, 추리닝이 아니라 청바지를 입고 싶게 만드는 것. 그것이 도시재생의 가치일 수도 있다.
너무 오래돼서 교수님이 했던 말이 전부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때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아직 선명합니다. 뭐 이런 거로 감동까지 받냐고 할 수도 있지만,, 그때의 교수님이 정말 멋있었습니다.
교수님의 답변을 듣고 나서부터는 저도 한층 더 진지하게 프로젝트에 임했던 기억이 나네요.
공연장을 보면서 저도 언젠가 누군가가 구두를 꺼내신고 싶게 만드는, 이런 공간을 디자인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연이 시작된 이후에는 사전에 합의되지 않은 촬영은 모두 삼가 달라고 해서 아무런 사진을 안 찍었는데, 조금 아쉽네요. 그래도 사진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기억의 가치가 더 올라가는 거 같기도 합니다.
핸드폰을 꺼두고 온전히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는 순간이 정말 마음에 들었습니다. 연주회를 진행하는 연주자들을 보고 있으니까 정말 멋지다고 느꼈는데요.
이번에 제가 느끼던 '멋있어 보인다'라는 의미가 어떤 의미인지 조금 알게 된 거 같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써왔던 '멋있어 보인다'라는 표현은 '행복해 보인다'에 가까웠던 거 같습니다.
대부분 제가 멋지다고 느끼던 사람들은 전부 행복해 보이는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본인의 일을 하면서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에게 멋있어 보인다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연주를 하면서 행복한 표정을 하고 있던 연주자들이 정말 멋졌습니다.
본인이 느끼는 행복을 소리로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 정말 부러웠습니다.
그러다 문득 또 이상한 고민이 생겼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은 왜 연주회를 보러 오는 걸까.
정말 옆 사람에게 왜 왔냐고 물어보고 싶었는데 참았습니다.
그래서 혼자 그 이유를 생각해 봤는데요. 저는 정말 이런 생각하는 걸 좋아하는 거 같습니다.
일단 먼저 제가 연주회를 보면서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를 생각해 봤습니다.
저는 연주자가 연주하는 진지한 모습을 보면서 나는 일을 할 때 어떤 모습인가를 생각해 보게 됐습니다.
나도 저만큼 진지한가?
살면서 저렇게 진지했던 적이 있었을까?
그러다 살면서 가장 진지했던 순간의 기억을 찾아보게 되더라고요.
요즘의 저는 스스로 일에 진지하게 임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는 직업적으로 일을 하고 있다가 정확할 거 같습니다.
분명히 정말 진지했던 순간은 존재하는데, 그때의 모습은 많이 사라졌습니다.
누구나 전부 꿈과 인생이라는 것 앞에서 정말로 진지했던 순간이 있겠지만, 사람이 언제나 항상 진지할 수는 없는 거 같습니다. 그렇기에 사람들의 진지함을 다시 꺼내줄 수 있는 연주회나 예술이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는 거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러한 이유로 연주회를 보는 거 아닐까 상상해 봤습니다.
자신의 일 앞에서 한없이 진지하지만 즐거워하는 연주자의 모습을 보면서, 각자가 꿈꾸던 진지한 모습을 다시금 떠올릴 수 있고, 조금은 나태해진 본인을 다잡는 계기가 되기도 하며, 꿈과 일 앞에서 진지한 사람들을 보며 선망의 감정을 가질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이번 연주를 보고 나서 느낀 점이 정말 많은데요. 사실 일부러 뭔가를 느끼려고 노력해서 많은 걸 느꼈다고 생각하는 거 같기도 하네요. 그래도 저는 이런 인위적인 노력이 꽤나 마음에 들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더 많은 걸 느껴보기 위해 더 노력하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