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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민석 Jan 03. 2024

뱅크시 전시회 'FAKE' vs 'NOT FAKE'

THE ART OF BANKSY

Banksy Flower thrower collage_길민석

베일에 싸인 얼굴 없는 화가 BANKSY 만큼 말이 많은 전시 THE ART OF BANKSY




THE ART OF BANKSY 전시를 두고 'FAKE' 전시라는 말이 많다.

뱅크시에게 저작권을 허락받지 않은 전시이며, 뱅크시의 진짜 작품은 몇 점 없고, 대부분 가작, 오마주 전시라는 것이 그 이유인듯하다. 심지어 뱅크시가 공식 인스타에 모든 전시는 'FAKE'라는 글을 올리자 더욱 화제가 다. 이미 뱅크시 전시를 관람한 관객들은 가작인 줄 모르고 봤다며 환불을 요구하는 사람도 있으며, 뱅크시의 진품이 아니라면 전시를 보지 않겠다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본주의에 물든 미술계를 비판하는 뱅크시의 가치관과는 모순되게 전시를 통해 수익을 창출(입장료 / 굿즈 판매)하는 모습이 비판의 대상인 것 같다.


뱅크시라는 사람을 좋아하진 않지만, 그의 작품만은 존경하는 사람으로서 'THE ART OF BANKSY' 한국 전시가 'FAKE'라는 평가를 받으며 하자 있는 전시로 취급받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 이 전시는 전시된 뱅크시의 작품이 진퉁이냐 짝퉁이냐를 두고 논쟁하기보다, 위법적이고 부적절한 장소에서만 표현되던 뱅크시의 그림들이 미술관으로 들어왔다는 사실에 무게중심을 두고 관람했으면 좋겠다.


사람들을 억압하는 권력과 관습에 대한 경고와 도발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뱅크시의 그래피티가 단순히 불법적이며 지저분하고 부정적이라고 인식되오던 프레임을 벗고, 미술관으로 들어오게 됐다. 뱅크시가 말하던 시답잖은 전시회 입장권이나 끊어야 하는 최악의 사태가 일어났지만, 이로써 불법적이고 부정적이기만 했던 뱅크시의 말들과 작품들에 더욱 힘이 실릴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뱅크시의 경고와 도발의 메시지 끝에 서있는 그들에게 불법적인 방법 말고, 그들이 인정하는 제대로 된 방법으로 뱅크시의 메시지가 더 널리 알려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런 바람을 가지고 이번 THE ART OF BANKSY 전시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을 말해보려고 한다.

책 제목은 [    ]  로 인용구는 <  > 로 표기했다.


[ Banksy Wall and Piece ] 라는 책에서 뱅크시는 이렇게 말한다.

< 보고 싶든 보고 싶지 않든, 공공장소에서 당신에게 선택의 여지조차 주지 않고 보여지는 모든 광고물들은 당신의 것이다. 그 광고들을 마음대로 바꾸고 재사용하는 것도 오로지 당신의 선택에 달려 있다. 이것을 허가받아야 한다는 건, 마치 돌을 던진 사람에게 이 돌을 가져도 되는지 물어보는 것과 같은 것이다. >


이 말처럼 뱅크시 본인도 이미 알고 있다. 뱅크시의 작품 또한 누구의 허락도 받지 않고, 선택의 여지없이 벽에 그려졌다는 것을, 그렇기에 뱅크시의 작품을 마음대로 바꾸고 재사용 하는 것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그런데 뱅크시 인스타에 모든 전시는 'FAKE' 라는 공식 입장이 올라왔다. 그 소식을 듣고 뱅크시에게 적지 않은 실망감을 느꼈다. 우리는 뱅크시의 얼굴을 모르기 때문에, 집 앞에 그려진 낙서를 보고, 혹은 동네 전철역에 생긴 그래피티를 보며 혹시 뱅크시가 왔다 간 건 아닐까 재밌는 상상을 해보며 뱅크시의 세상에 빠져들 수 있었다. 더 나아가 이번 전시의 가작을 그린 사람들 중에 뱅크시가 숨어들어 그림을 그렸을지도 모른다고 상상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뱅크시의 'FAKE' 라는 공식 입장은 그래피티가 주는 특유의 긴장감과 상상력을 반감시켰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사람들이 'FAKE' 라고 상상할 수는 있어도 뱅크시가 'FAKE'라고 공식 입장을 밝힌 것은 개인적으로 너무 아쉬웠다.


뱅크시는 일명 '도둑 전시'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질 수 있었다. 도둑 전시는 뱅크시가 미술관에 몰래 붙여 놓은 그림들을 전시 기간 동안 관람객은 물론, 심지어 미술관 측도 눈치채지 못했던 해프닝이다. 뱅크시는 도둑 전시를 통해 아래와 같은 메시지를 전했다.


< 미술관에 간 당신은 단지 백만장자들의 장식장을 구경하는 관람객에 불과하다. 다른 대중 예술과 달리, 미술계에서의 성공은 관객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대중들은 매일같이 콘서트홀과 극장을 가득 메우고,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책을 읽고,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음반을 구입한다. 이처럼 우리는 대중 예술 전반에 걸쳐 그것을 생산하고 퀄리티를 유지하는 데에 영향을 치고 있다. 하지만 미술은 그렇지 않다. 우리가 보는 미술 작품은, 단지 소수의 선택되어진 화가들의 작품일 뿐이다. 소수의 사람들이 전시를 기획, 홍보하고 작품을 구입하여 전시하면서 미술 작품의 성공은 결정된다. 세상에서 진실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몇백 명도 안 된다. 갤러리에 간 당신은 단지 백만장자들의 장식장을 구경하는 관람객에 불과하다. >


개인적으로 도둑 전시가 전하는 메시지를 작가의 이름 말고, 작품을 보라는 의미로 해석했다. 뱅크시는 소수의 사람들이 작품의 성공을 결정하는 미술계를 비판하면서도, 미술관을 찾는 사람들이 작품에 대해 고민하지 않고, 작가의 명성만을 쫓는 건 아닌지 고민하게 만들었다. 이제는 미술관의 기획과 홍보에 현혹되지 말고 작품을 스스로 사유할 수 있는 주체성을 겸비한 관람객이 많아졌으면 한다.


그런 의미에서의 THE ART OF BANKSY 전시는 익명성에 감춰져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수 없는 그래피티의 성격을 이해하고 그래피티 자체를 즐겼으면 좋겠다.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뱅크시의 작품들도 진짜인지 가짜인지 우리는 알 길이 없고, 진짜 뱅크시의 작품일지라도 화면 너머로 보이는 건 그저 진짜를 찍은 가짜 사진에 불가하다고 말하고 싶다. 화면 너머의 사진은 진짜가 되어 인기를 누리고, 눈앞에 현실로 보이는 복제본은 'FAKE' 가 되어 아류작으로 취급받고 있다. 메시지와 경험을 전달하는 작품으로써 뭐가 더 진짜에 가까운 것일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전시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복제본일지라도 눈앞에 보여지는 그래피티가 경험을 전달하는 입장에서 진짜에 가깝다고 말하고 싶다. (그래피티에 한정해서)

Banksy Flower thrower collage_길민석

뱅크시가 자신의 작품이 미술관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고 시답잖은 전시회 입장권이나 끊어야 하는 최악의 사태가 일어났다며 입장권을 버리는 모습을 상상하며 뱅크시의 작품 'Flower thrower' 를 오마주해 봤다. 그리고 이왕 버릴 거면 저 많은 입장권 중 하나가 빨간 풍선을 타고 나한테 왔으면 좋겠다는 상상도 담아봤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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