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향미작가의 페이퍼 커팅 아트북
페이퍼 커팅 아트.
나는 페이퍼 커팅 아트를 시간을 낭만적으로 소비하는 일이라고 소개하고 싶다.
'잘못 자르면 어쩌지' '선을 벗어나도 되나' 하고 걱정하지 마세요. 괜찮습니다. 정말로 괜찮아요. <피어나다>는 꽃과 풀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빗나간 칼질도 꽃이 되며, 귀퉁이가 떨어져 나가도 그건 풀잎이 맞습니다. 이번에도 꼭 말씀드리고 싶은 점은 무엇보다도 칼에 다치지 않게 조심하는 것, 빠르고 완벽하게 완성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스트레스 받지 않는 것입니다. 제가 그린 선에 딱 맞추어 자르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그림에는 정답이 없으니 천천히 작은 조각부터 오려내며 온전히 자기만의 시간을 담아내시기를 바랍니다.
피어나다_최향미_여는 글
생각이 많아져서 머리가 복잡할 때, 넘치는 시간이 부담스러울 때면 잊고 살았던 페이퍼 커팅북을 다시 꺼내게 된다. 칼질을 따라 풀잎이 하나둘씩 잘려 나갈수록, 머릿속에 가득 차 있던 고민들도 하나씩 빠져나가는 느낌을 받는다. 넘치는 시간이 불안과 부담으로 다가올 때 조각 하나하나에 고민을 담아 잘라냄으로써 마음의 안정을 되찾는다. 그렇게 다 잘려나간 풀잎 조각을 보면 복잡했던 머리가 조금은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페이퍼커팅의 매력에 빠져 꾸준히 칼질을 하다 보면 책장 한 곳에 작업물이 쌓인다. 이걸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다가, 한 번은 그동안 만들었던 작업물을 아크릴 액자로 만들어서 친구들에게 선물로 나눠줬었다. 그때 만들었던 작업물들 사진은 어디 갔는지 없어서 올릴 수가 없지만... 선물로 나눠주고 나니 책장에 쌓여 있기만 할 때보다 기분은 썩 좋았던 것 같다. 그리고 그때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기 위해 칼질을 한다는 것이 가지는 의미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전까지는 풀잎 조각 하나를 자를 때면 고민 하나가 잘려나가는 것 같았다면 지인에게 선물로 주기 위해 풀잎 조각을 자를 때는 잊고 있었던 그 사람과의 추억들이 떠올랐고, 풀잎이 잘려나가 비워진 자리를 누군가와의 추억으로 채워나가는 느낌이었다. 이런 점들이 페이퍼 커팅의 매력 아닐까 싶다.
친구들에게 페이퍼커팅 선물을 줄 때면 꼭 챙겨주는 것이 있다. 바로 만들다 생긴 쓰레기!!! 쓰레기라고 표현하기에는 좀 미안하니까 추억이라고 표현하겠다. 잘려나간 풀잎 조각들 속에 추억이 담겨있는 만큼 정말 중요한 건 완성된 도안보다도 잘려나간 조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조각들도 전부 따로 챙겨서 선물에 같이 넣어준다. (근데 보통 이상하게도 완성된 도안보다 함께 챙겨준 쓰레기를 더 좋아한다... ㅎ)
요즘은 바쁘다는 이유로 페이퍼 커팅 아트 <피어나다> 도안이 책장에서 나오는 일이 부쩍 사라졌다. 바쁘게 살아서 쓸데없는 걱정이 사라진 점은 좋지만, 또 한편으로는 머리를 비우기 위해 조용히 책상 앞에 앉아서 하루종일 칼질만 하던 순간의 여유가 그립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