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당신을 봅니다.”
지난해 12월 9일 서울 콘래드 호텔에서 열린 영화 ‘아바타: 물의 길’ 기자 간담회에서 배우 조 샐다나(네이티리 역)는 팬들에게 이렇게 인사했다. 2009년에 나온 ‘아바타’ 1편에 이어 작년 12월 14일에 개봉한 2편의 홍보를 위해 영화의 제작진과 출연자들이 한국을 방문했던 것이다. “이제 당신을 본다(I see you)”는 말은 영화의 무대인 판도라 행성에서 살아가는 나비(Na’vi)족의 인사말이다. 우리말에서 인사는 “안녕하세요”, 영어에서는 “굿 모닝”, 중국어에서는 “니하오”이다. 이런 표현은 일이 잘 풀리고, 행복하기를 상대에게 소망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반면 나비족은 내가 상대를 본다는 말로 인사를 한다.
나비족의 언어는 인공적으로 만든 구성 언어이다. 아바타의 감독 제임스 카메론은 ‘아바타’ 1편의 시나리오를 준비하면서 나비족이 사용하는 언어가 필요하다는 점을 깨닫고, 남가주 대학의 폴 프라머 교수에게 의뢰하여 새로운 언어를 구성했다. 나비족 언어는 ‘보다’를 두 가지로 구별한다. 하나는 육신의 눈으로 보는 ‘체아(tse’a)’, 그리고 다른 하나는 영혼의 눈으로 보는 ‘카메(kame)’이다. 나비족이 인사말로 “나는 당신을 본다”고 할 때 ‘보다’는 체아가 아니라 카메, 즉 마음의 눈으로 보다는 단어를 사용한다. 신체의 눈으로 보면 물질적 형태가 보이지만, 마음의 눈으로 보면 상대의 가치와 이념이 보인다.
인간의 근본적 소망은 남에게 내가 보이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남이 나를 보아주기를 갈망한다. 사업가가 돈을 벌고, 교수가 논문을 발표하고, 화가가 전시회를 여는 것도 사실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문제는 모든 사람이 남에게 보이기를 바랄 뿐 남을 보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렇게 일방적으로 인정을 남으로부터 바라기만 하면 인간은 인정을 놓고 서로 투쟁할 수밖에 없다. 패자는 승자를 인정하고, 승자는 패자를 인정하지 않는 일방적 인정의 사회를 19세기 독일의 철학자 헤겔은 ‘주인과 노예’의 단계라고 불렀다.
이런 단계는 주인과 노예 모두에게 불만이므로, 인간은 상호 인정의 사회로 역사는 발전해 간다. 나와 네가 서로에게 인정받으려면 서로를 먼저 인정해 주어야 한다. 내가 너에게 보이려면, 내가 먼저 너를 보아야 하는 것이다. 이런 상호 인정의 기본자세는 나비족의 인사에 담겨 있다. 나비족은 “본다”는 인사를 함으로써 먼저 상대의 가치를 인정하고 그것을 통해 자기 인정을 획득한다. 우리가 ‘아바타’를 통해 배우는 첫 번째 교훈은 ‘내가 보이기 위해서 먼저 남을 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아바타’ 2편의 제목은 ‘아바타: 물의 길’이다. 길(Way)은 도가 철학의 ‘도(道)’를 영어로 번역할 때 자주 쓰이는 용어이다. 도는 신비의 개념이 아니라 인간이 걸어가는 길, 즉 인생의 자세를 의미한다. 물의 길, 즉 ‘물의 도’는 바닷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갖추어야 할 인생의 자세이다. 물의 도에 대한 서술은 ‘아바타’ 2편에 두 번 나온다. 제이크 설리 가족은 원래 살던 숲을 떠나 물가에서 살아가는 매트카이나 부족에게 거처를 부탁한다. 그 추장의 딸 치레야는 제이크의 둘째 아들 로악에게 물의 도를 설명해 준다.
도는 어디든 있다. 매트카이나 부족은 물의 도, 아마존 주민은 숲의 도, 사막 지역 사람은 모래의 도를 보아야 한다. 우리가 ‘아바타’에서 배울 두 번째 교훈은 ‘우리가 살아가는 자연환경의 도를 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물의 도에 대한 서술은 영화의 마지막에 다시 나온다. 제이크 설리는 거대한 배 아래에서 익사 일보 직전에 있었다. 살아가려면 숨을 참고 오랫동안 잠수해서 헤엄쳐야 한다. 제이크는 기진맥진하여 탈출을 포기했다. 로아크는 그에게 다가가 치레야에게 들었던 물의 도를 암송한다. 물로부터 인간은 태어나고 물로 돌아간다는 물의 도를 배운 후 제이크는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 숨을 깊게 쉬고 먼 거리를 잠수하여 수영할 수 있었다.
자연의 도를 이해한다면 죽음에 대한 공포뿐 아니라 죽음의 슬픔도 극복할 수 있다. 장자는 아내가 죽었을 때 두 다리를 뻗고 앉아서 술동이를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다. 인간의 탄생과 죽음을 자연이 연결한다는 점을 장자는 깨달았던 것이다.
인간이 잘 살아가려면 타인 그리고 자연과 공존해야 한다. 영화 ‘아바타’에서 우리는 공존의 두 방법을 배운다. 하나는 상대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연의 도를 이해하는 것이다. 이 두 교훈을 나비족의 언어로 표현한다면 내가 타인과 자연을 보는 것이다. 영혼의 눈으로 보는 것이다.(부산일보, 2023.0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