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 청년마을, '고마워,할매' 해수 청년
지치고 힘들 때면 어렸을 적 외할머니와의 추억과 초록초록한 자연을 떠올린 청년. 우여곡절 끝에 함양으로 내려가 마음의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퇴사 후 심리치료까지 생각했던 청년은 함양에 내려가 자연스럽게 회복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자연과 관련된 일이라면 몸이 고단할지라도 꾸준히 도전하고 두드립니다. 함양의 매력을 다양하게 전하고자 하는 해수 청년입니다.
Q 함양 청년마을, 고마워,할매 프로그램은 어떻게 참여하게 되셨나요?
저는 ‘해수’라고 해요. 이번에 ‘고마워,할매’ 청년마을 프로그램 진행하면서 제가 좋아하는 자연들을 엮어 바다 ‘해(海)’에 나무 ‘수(树)’자로 이름을 지었어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3년 동안 중국에서 유학생활을 했는데 그 시간들이 제 성향과 미래를 바꾸게 된 계기가 되었던 것 같아요. 중국학교의 활동을 추구하는 교육문화로 소심한 성격에서 도전적이게 변화할 수 있었고 중국어 습득 경험과 중국에 대한 꾸준한 관심으로 성인이 된 후 한국에서 중국어 관련 일을 계속했어요. 가장 최근에는 한국 유튜버 크리에이터분들이 중국 영상 플랫폼에 진출할 수 있도록 돕는 업무를 했어요.
그러다 번아웃이 와 올해 5월 말에 퇴사를 하게 되었어요. 그 시기에 초록초록한 시골과 어렸을 때 저를 키워 주셨던 외할머니와의 추억이 많이 생각났던 것 같아요. 그래서 시골로 떠나고 싶었지만 방법을 몰라 인스타그램 검색과 구글링을 시도했어요. 그렇게 ‘고마워,할매’ 2기 모집공고를 우연히 보게 되어 바로 지원했죠. 하지만 막상 떠나려니 두려움이 찾아왔어요. 이미 사람한테 치여서 힘들어하고 있는데 또 사람한테 치일까 봐요. 그래서 안 가려다 한 친구가 뭐든 다 경험이라고 얘기해줘서 다시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Q 프로그램 중 어떤 부분이 제일 인상 깊었나요?
할머니랑 스냅 촬영하는 프로그램 일정이 가장 행복했어요. 그날 유독 날이 더워서 7명의 청년들이 할머님들을 꾸며드리고 촬영까지 마치고 나니 모두 지쳤어요. 그래서 할머니 집 나루에 다 같이 누워 쉬었는데 할머님들이 말씀하시고 웃으시는 소리를 들으면서 뭉클했어요. 돌아가신 할머니도 생각났지만 도시에서는 보기 힘든 할머니 옆에 손녀가 누워서 같이 웃고 떠드는 풍경을 보니 그 순간이 너무 소중하게 느껴졌어요. 그 순간을 너무 담고 싶어 바로 카메라 셔터를 눌렀어요.
근데 한 할머니께서 저희 몰래 영상 촬영을 하셨나 봐요. 저희 마지막 날 팜파티 때 결과물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할머니가 찍으신 영상이 서프라이즈로 공개되었어요. 영상을 보는 순간 울컥했어요. 영상 속에서 할머니가 “손녀들아, 나는 너네가 우리 집 마루에 누워 있을 때 너무 귀여웠다.”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그 순간 할머니가 저희를 바라보셨던 시선이 상상되면서 할머니로부터 보답을 받은 것 같아 그때가 제일 기억에 남아요.
Q 할머니들로부터 레시피를 전수받는 프로그램은 어땠나요?
저는 외할머니랑 같이 요리를 해본 적이 없어요. 제가 먹고 싶은 음식을 할머니가 해주시기만 했는데 청년이 되어 할머니와 요리하는 경험이 새롭게 다가왔어요. 특히 로컬 음식들을 만든다는 게 뜻깊었고 또 요리하는 과정 그리고 먹고 난 후 함께 노래하며 웃고 이야기하는 시간이 너무 좋았어요.
Q 사과 농장에서 일을 어떻게 하게 되셨나요?
제가 ‘고마워,할매’ 프로그램이 끝나고 함양에서 2주 추가살이를 결정했어요. 그래서 바로 집과 일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했는데 일자리 수요가 많이 없었어요. 계속 기다리다가 사과 농장에서 연락을 받았는데 거리가 좀 멀었어요. 근데 저는 자연이랑 관련된 일이라면 뭐든 하고 싶어서 사장님의 카풀carpool이 가능하다는 말씀에 바로 출근을 결정했어요.
새벽 6시 반 버스를 타고 7시 안에 면에 도착하면 사장님이 픽업 오세요. 가는 길에 베트남 이모들, 삼촌도 태우면 7시 반 농장에 도착해요. 아침을 같이 먹고 일을 시작해요. 안 쓰던 근육을 쓰고 몸 여기저기 멍이 들어 너무 고단하지만 마음은 항상 즐거웠어요.
‘농부시장 마르쉐’라는 채소시장이 한 달에 한두 번씩 서울 성수, 혜화, 용산 등에서 열리는데 사장님이 주말에 사과를 판매하러 가세요. 한 번은 제가 도와드리러 같이 새벽부터 출발해 사과를 판매했어요. 판매 경험도 좋았지만 사람들이 사과를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함양에서 난 사과가 얼마나 맛있고 좋은 사과인지 알게 되었어요. 서울에서 푸석푸석한 사과를 먹다 보니 사과를 안 좋아했는데 원산지가 함양인 사과는 너무 맛있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은 사과를 좋아하게 되었어요. 일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하잖아요. 그래서 이왕 하는 거, 보람을 느끼는 일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보람을 느끼다가 이제 더 느낄 보람이 없다고 생각하면, 계속해서 버텨야지, 그만두면 안 돼 라는 생각으로 지속하는 것보다는 다른 선택지도 탐색해 보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어느 정도 하고 나서는 쉼을 가져보는 시간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쉼은 대부분 사람들이 게으르다고 생각하는데, 쉼도 살아가는 데 있어 꼭 필요하잖아요. 쉼으로 사람이 더욱 넓게 볼 수 있는 시야, 그리고 본인을 더 알아갈 수 있거든요.
Q 사과농장에서의 일이 어떤 부분에서 즐거움을 주었나요?
직접 사과를 판매해보는 경험 또는 직접 사과나무 잎을 정리해주고 사과를 따고, 담고 관리해줄 수 있는 것 자체가 좋아요. 또 제 손길이 닿은 그 사과들을 받은 고객들이 너무 맛있다고 하면 너무 보람차요. 그리고 퀄리티 좋은 사과를 제가 관리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게 감사하고 사장님도 저에게 항상 잘해 주세요. 함께 일하는 베트남 이모들과 소통하며 궁금해하는 부분을 제가 해결해주는 이런 사소한 부분들도 저를 즐겁게 만들어요.
Q 청년으로 꽤 남다르고 특별한 삶을 살고 계신 것 같아요.
맞아요. 이해를 못 하는 분들이 사실 많이 계세요. 아침마다 버스터미널에 도착하면 항상 벤치에 앉아 계시는 할머니분들이 계세요. 하루는 저에게 ‘맨날 새벽부터 어디 가는 거고’ 물어보시더라고요. 저를 항상 눈여겨보셨다는 것을 그때 알았죠. 그 모습을 보면서 어르신분들은 청년한테 관심이 많으시구나 싶었어요. 제가 생각해도 젊은이가 도심에 있어야 하는데 함양에 내려와 있으니 신기하게 생각하실 법도 해요. 처음에 사과농장 갔을 때 농장에서 일하시는 삼촌도 저 왜 여기 왔냐고 하시면서 공무원 안 하냐고 말씀하셨어요. 잘 설명드리며 제가 선택한 길을 헤쳐 나가고 있는 중이에요.
Q 함양에서 어떤 활동들을 하시나요?
제가 사진과 영상을 많이 찍어서 최근에 인스타를 시작했어요. 계속하다 보면 함양에 대해서도 널리 알릴 수 있더라고요.
그리고 ‘이소’라는 함양 청년모임이 있는데 정규모임에 빠짐없이 참석해요. ‘이소’는 함양에서 일하고 계신 기자분과 ‘도하 베이커리’라는 빵집 대표님 두 분이 시작하셨어요. 저희가 주기적으로 정규모임을 진행해 청년들이 본인 이야기를 소소하게 나누거나 각자 원하는 주제를 정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커뮤니티예요. 참여하다 보니 모임 속에서도 할 수 있는 것들이 계속 생기는 것 같아요. 제가 베이스를 할 수 있어서 밴드를 기획하거나 악기를 서로 배울 수 있는 모임을 만들어요. 지금도 이미 와인 모임이나 독서 모임 등 다양한 모임이 계속 진행되고 있고 모임들이 계속 생겨 나고 있어요.
Q 함양에서 발견한 가능성이 궁금합니다.
전국에 많은 청년마을이 있잖아요. 다들 각자 매력 포인트가 다른데 함양의 가장 큰 매력은 자연환경이에요. 다른 지역들도 자연들을 품고 있지만 함양은 제가 지금껏 봐왔던 산 중에 가장 둥글어 보이는 산 형태를 가졌어요. 그래서 제가 어딘가 서 있으면 산들이 저를 둘러싼 듯한 느낌을 받고 저를 지켜주는 듯한 든든함과 편안함을 주더라고요. 일본 애니메이션 ‘지브리 스튜디오’를 좋아하는데 함양은 저에게 ‘지브리’ 감성이에요. 산의 굵은 나이테를 가진 나무들을 보다 보면 어딘가에서 ‘토토로’가 튀어나올 것 같고 일을 하다가 눈을 들어 산을 보면 한 그루 한 그루 듬성듬성 뾰족뾰족하지 않은 산들의 느낌이 좋아요. 그리고 제 마음이랑 몸이 건강해지는 걸 느낄 수 있고 오랜만에 생기발랄해진 제 모습을 볼 수 있었어요.
저는 ‘마음 건강’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무엇을 하고 어디에 있든 마음이 편안하고 안정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도심에서는 마음이 ‘0’이였어요. 늘 불안하고 두렵고 조급했어요. 근데 함양에서는 편안하고 건강해진 느낌이 들어 제가 앞을 내다보고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 같았어요. 무엇보다 새로운 시도들을 다양하게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 같아요. 실패를 해도 괜찮다고 해주는 것 같고 어디에 묶여 있지 않은 채 살아갈 건강한 힘을 주는 게 바로 함양의 가능성이라고 생각해요.
Q 함양에서의 일상은 어떠셨나요?
환경적으로 도심은 너무 갑갑하고 흔히 말하는 회색빛 도시잖아요. 근데 함양의 자연환경이 저를 건강하게 만들었고 ‘느린도시’라서 집처럼 느껴졌어요. 사과농장 일이 끝나고 여유가 된다면 베이스 들고 기타 학원 가서 연습하거나 좋아하는 카페에 가서 잠깐 차를 마시고 공원에 가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여유가 있었어요. ‘퇴사하면 뭐하지?’라는 생각을 자주 할 만큼 취직에 대해서 저는 항상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함양에서는 조급 하다가도 풀려요.
일본에 ‘호타루의 빛’이라는 드라마가 있는데 여자 주인공 집에 마루가 있고 고양이도 찾아와요. 제가 그런 집에서 생활했어요. 넓은 마루, 텃밭 그리고 고양이까지요. 항상 저는 ‘대체 언제 넓은 내 집을 가질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비싸지 않은 금액에 로망의 집에서 살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Q 콩콩 대표님과 케미가 좋다고 들었어요.
저는 배우는 걸 좋아하고 언니는 할 줄 아는 게 많은 만능 엔터테이너예요. 그래서 인스타그램 관련 그리고 집 인테리어에 대해서 많이 물어봤어요. 무엇보다 둘 다 노래를 좋아해서 가끔 저녁에 퇴근하고 같이 노래방을 가고 맥주도 한잔 해요. 영화도 좋아해서 빔으로 집에서 디즈니 플러스를 많이 보고 있어요.
Q 함양에 해수님만의 비밀장소가 있나요?
저는 하늘이 가깝게 느껴지는 함양의 풍경이 너무 좋아서 상림공원 ‘연잎밭’을 자주 가고 여름에는 정자에 많이 앉아 있어요. 금요일에 농장 일 끝나고 달달한 게 땡기면 ‘꾸움’이라는 카페에 가서 좋아하는 자몽, 청포도, 샤인머스켓 등 과일 타르트를 먹었어요. 제가 SNS에 자주 업로드해서 사장님이 저를 아세요. 최근에는 사과를 드렸는데 사장님이 감동받으셔서 저에 대한 글을 SNS에 올리시고 눈물이 났어요.
기타 학원도 저만의 비밀 장소예요. 기타 선생님이 멋지신 분이라 마실 수 있는 차를 항상 바꿔 놓으세요. 그래서 베이스 연습하는 공간이지만 차 마시고 싶을 때 차 한잔 할 수 있고 마음이 힘들거나 교류하고 싶은 날에도 선생님을 찾아갔어요.
Q ‘고마워,할매’ 청년마을은 해수님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해 주었고, 새로운 삶을 살게 해 준 것 같아요.
Q 앞으로의 계획 또는 꿈이 있을까요?
저는 꿈이라면 그저 저 답게 살면서 지친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며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아가고 싶어요.
Q 지역살이를 꿈 꾸는 청년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여러분은 너무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일 때가 가장 빛이 나요. 그래서 다른 누군가가 되려 하지 말고 여러분으로 살아 가셨으면 합니다. 살면서 실수나 좌절, 실패를 겪을 때가 있지만 그럴 때 자기 자신을 탓하고 자책하기보다, 쉽지 않겠지만 스스로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셨으면 좋겠어요. ‘괜찮아’라고요.
저희가 태어나서 걸음마 배울 때 여러 번 넘어지는 것처럼 넘어졌을 때 조금은 아프겠지만 다시 일어나기 위해 배우는 중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넘어지면 우리 함께 같이 천천히 툭툭 털고 일어나요. 이 세상에서 그 무엇보다도 여러분을 잃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Love Myself!’ 내가 나일 때 가장 행복한 것 같아요.
잠시 쉼이 필요하다고 느끼실 때 함양을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