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노마드’들의 무대로
만들어가는 ‘예술인마을’
태안 청년마을, ‘오락발전소’의 홍세환 대표 이야기
‘노래 부르는 일을 더 이상 안 할 수도 있겠구나’에 대한 공포를 느낄 때쯤,
오락발전소 프로그램을 마치 한 줄기의 빛처럼 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한 번의 프로그램, 여러 번의 방문으로 정착을 생각하게 된 청년은, 최근 대표직을 제안받아 온 가족이 태안으로 이주를 결정했습니다.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지키며 재미있게 일할 수 있는 곳이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바닷가에서 행복하게 뛰어놀 수 있어서 좋아요.”
예술가의 목마름과 어려움을 누구보다 알기에 자신이 태안에서 경험했던 것들을 모든 예술가 청년들이 경험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다양한 축제를 통한 무대와 정착할 수 있는 기반들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덕분에 삶에 활력이 생겼다고 합니다.
예술 버전의 디지털 노마드, ‘예술인마을’을 꿈꾸는 오락발전소의 홍세환 대표입니다.
태안 '오락발전소' 홍세환 대표Q 태안에 어떻게 온 가족이 정착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노래를 부르는 보컬리스트 홍세환이라고 합니다. 음악을 전공해서 오랫동안 밴드 활동하다가 결혼하고 자연스럽게 아이 셋을 육아하며 시간을 보냈어요. 그리고 코로나가 터져 공연 등을 오래 쉬게 되었죠. 우연한 기회로 아내가 ‘오락발전소’의 ‘예술인 갭이어(Gap Year)’ 2주살기 프로그램 모집 공고를 보고 대신 신청을 해주었고 감사하게 참여하게 되었어요.
2주 동안 태안에서 지내면서 예술하는 청년들과 같이 콜라보 하고 쇼 케이스도 열고 노래도 만들면서 시간을 보냈어요. 정말 오랜만에 온전히 예술가로서의 생각들로 가득 찬 시간을 보내 보니 정체성을 되찾는 것 같은 기분도 들더라고요. 무엇보다 경치가 좋고 프로그램도 알차서 아쉬운 마음에 오락발전소 최윤상 대표님에게 가족과 함께 자주 놀러 오겠다고 말씀을 드리고 휴가 때마다 여기를 찾았어요. 특별히 일을 하려고 온 게 아니라 단순히 태안이라는 지역이 좋고 같은 음악인으로서 대표님과 말이 잘 통해서 자주 방문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여기는 그렇게 저에게 즐거운 곳, 다시 찾아오고 싶은 곳이었어요. 그러다가 대표직을 제안받고 청년마을도 구체적으로 알게 되어 운영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Q 대표직을 제안받으셨을 때 어떤 마음이셨나요?
처음에는 조금 부담이 되기도 했어요. 시기가 사업 중간이었고 선정되기 전부터 사업 계획을 세워야 하는데 저는 ‘오락발전소’라는 큰 틀 안에서 제가 새롭게 채워 나가야 했으니까요. 지금 진행하면서도 기간은 짧고, 메꿔야 하는 부분과 해야 할 일들이 많아 시간이 부족하고 어렵다고 느껴요. 그래도 재미있게 하고 있어요.
주기적으로 진행되는 청년마을 협의체 워크숍 등에 참여해 다양한 강의를 들으면서 정말 좋은 사업이라는 걸 많이 느끼는 것 같아요. 옆에서 바라보고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봤을 때의 느낌과 실질적으로 내부로 들어와서 봤을 때의 느낌은 정말 달라요.
사실 저도 외부에서 봤을 때 청년마을 사업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바라봤어요. 단순히 정부가 지역에 청년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방법을 쓴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이걸 통해 정말 청년들이 이주할까 생각했는데 실제로 들어와 진행해보니 정말 청년들이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이 될 수 있겠다 싶어요.
Q 오락발전소의 어떤 부분이 정착까지 이어지게 했나요?
대외적으로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보컬들은 보통 홍대 클럽에서 무대를 많이 해요. 사실 행사도 아무나 불러주지 않거든요. 그래서 무대에 항상 목말라 있어요. 그리고 좋아하거나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금전적인 부분까지 채워 나가기 힘들기 때문에 중도 포기하거나 다른 일을 찾아 겸하다가 결국 손을 놓게 되는 케이스가 많아요. 그런데 만약 이런 예술가들이 마을 형태로 모여 경제적인 부분을 힘을 합쳐 해결한다면, 그래서 하고 싶은 활동들을 직접 만들어서 하거나 누군가 찾아준다면 너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모여 있다면 이들이 머리를 맞대고 돈을 벌 수도, 행사를 만들어서 갈 수도, 그리고 팀을 만들어 예술가들이 여러 지역을 이동하며 다니는 것처럼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수도 있는 등 여러 가지 기회들이 생길 수 있잖아요.
‘예술가들은 굳이 서울에 있을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활동의 기회들이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고 하지만 오락발전소에서 축제, 게스트하우스 그리고 클럽 등 예술가들이 수익을 가져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놓으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오히려 서울보다 경치도 아름답고 창작하기 더 좋은 환경이거든요.
태안 '오락발전소' 프로그램 활동Q 청년들이 오락발전소에서 어떤 가능성을 볼 수 있을까요?
요즘 학교에 기회가 많아져서 실용음악과 등의 통로를 통해 젊은 청년들이 많이 배출되고 유통방식이 대부분 온라인으로 전환되어 앨범 내는 것도 쉬워졌어요. 하지만 코로나가 터지면서 저희가 설 수 있는 축제, 클럽 등 무대가 거의 없어졌어요. 어떻게 보면 환경은 좋아졌지만 길은 더 좁아진 것 같아요. 그래서 많은 청년 예술가들이 경제적인 부분에서 어려움들을 겪고 있어요.
저희는 올해 이렇게 어려움을 겪는 청년 예술인들을 불러 모으고 있어요. 태안에서의 지역살이도 중요하지만, 제가 여기서 많은 예술가들과 경험했던 것 그대로 청년들도 느꼈으면 좋겠어요. 예술가들과 여러 차례 콜라보하며 음악을 만들고, 아쉬운 마음에 한 번 더 왔다 가는 시간들이 반복되었을 때 청년들이 여기서 무언가 한번 해볼까 생각이 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냥 살다가 돌아가면 그때 거기 참 좋았다는 기억으로 끝나게 돼요. 그래서 다시 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순환이 이루어지기 위해 저희도 축제를 계속 만들어 무대를 제공하고 자연스럽게 여기에서 지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사실 그 순간부터 이주에 대한 고민이 시작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Q 앞으로 어떤 청년들의 방문을 기대하고 계신가요?
예술하는 청년들은 다 왔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저와 최윤상 대표님 모두 음악 하는 사람이다 보니 음악과 관련된 분들이 많이 모이고 있어요. 하지만 미술, 작가, 영상제작 등 모든 분야에서 같이 했을 때 재미있는 예술과 창작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다양한 분야의 청년들이 오길 기대해요. 제가 ‘갭이어’ 프로그램에 참여했을 때 무용하시던 분이 계셨는데 제가 무대에서 노래 부르며 옆에서 무용으로 함께 해 주셨어요. 이렇게 콜라보로 이루어가는 무대들을 기대합니다.
Q ‘예술인이 주체가 된 축제는 없다’는 말에 오락발전소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 담긴 것 같아요.
보통 공연은 공연기획자들이 하고 아티스트들은 초청되어서 무대하고 페이를 받는 시스템인데 그러면 구조상 지속되기 어렵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공연이 없으면 아티스트들은 갑자기 일자리가 사라지니까요. 스스로가 설 무대를 스스로 만든다는 개념인 거죠. 혼자서는 어렵지만 그와 비슷한 취지와 의지를 가진 청년들이 모인다면 충분히 가능해요.
사실 예술가들 10명이 일주일 정도만 모여 있어도 축제 하나가 나올 수 있거든요. 저희가 기본적인 틀을 만들어 놓고 청년들이 팀을 만들어 하나씩 파트를 나눠서 만들어가는 거예요. 2-5시 타임 공연을 만들거나 한 부스를 원하는 대로 꾸며보는 것이죠. 이러한 것들이 차츰차츰 모이고 갈수록 커져서 지역 사람들과 청년들이 즐거워서 신나게 놀고 있는 축제를 보게 된다면 모두가 즐거워지고 볼거리도 많아질 것 같아요. 더불어 궁극적으로는 오락발전소도 주체가 예술가일 뿐이지 사실은 디지털 노마드와 비슷한 형태를 지향하고 있어요.
태안 '오락발전소' 프로그램 참여 청년Q 예술가들의 정체성을 지켜 나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시는 거네요.
맞아요. 직설적일 수 있지만 경제적인 부분이 해결이 되어야 계속 재미있게 할 수 있어요. 그리고 그들이 금전적인 수익을 낼 수 있는 환경을 저희가 만들어 줘야 된다고 생각해요. 꼭 축제나 공연이 아니더라도 거기에서 파생되는 것들도 있어요. 이런 부분들을 고민하며 기획 단계에 있어요. 예로 악기나 노래하는 청년들이 취미활동으로 만드는 물건들을 제품화해 판매하고 아티스트 홍보에 활용할 수 있고, 또 요리를 하는 청년이 있다면 더 발전시켜서 공간을 얻어 장사를 할 수 있어요.
이런 예술가들이 모여 있는 집단, 모여 있는 동네를 만드는 게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예술가들이 주체가 되어 그들의 예술활동을 위해 다른 활동들을 재미있게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는 거죠.
많은 청년들이 이 예술가라는 끈을 놓지 않기 위해 시간제약을 받지 않는 일을 해요. 그러다 보면 알바 형태로 직장에 들어가고, 나아가 9to6 일을 하게 되고 집중하다 보면 그때부터는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이 발생해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예술 활동을 놓아버리는 상황이 생기는 거예요. 누가 보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얘기하실 수도 있는데 저는 정말 딱 그랬어요. 심지어 ‘내가 무언가 제대로 된 일을 하기 시작한다면 노래를 부르는 일을 더 이상은 안 하게 될 수도 있겠구나’에 대한 공포도 있었어요. 지금의 활동은 제 삶에 활력이 되는 일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Q 이전에 일산에서의 삶과 지금 태안의 삶의 다른 점은 무엇인가요?
일산에 있을 때는 육아와 집안일을 주로 했어요. 요즘 방구석 뮤지션처럼 집에서 혼자 노래 연습하고 오디션에 원서를 내보고 그런 삶을 보내고 있었는데, 여기 와서는 축제나 무대가 있으니까 노래도 부르고 공연도 하며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어요.
요즘은 ‘앞으로 내가 설 수 있는 무대가 더 많아지겠구나, 그리고 더 다양한 청년들과 재미있는 걸 할 수 있겠다’는 기대를 합니다.
작년에 오락발전소에서 ‘솔향기길’ 축제를 했었는데 아트 레지던시 형식으로 해외에 있는 청년들과 우리나라 뮤지션들(장구, 기타, 인도네시아 전통악기, 프로듀싱, 보컬 등 7명) 몇 명이 모여 온라인으로 곡을 만드는 활동이었어요. 줌으로 만나서 몇 차례 회의하고 각자 작업하는 시간을 가지니까 실제로 2주만에 곡을 만들게 되었어요. 그 후에 각자 시간 날 때 태안에 와서 영상 촬영해서 뮤직비디오 만들었는데 함께 작업했던 인도네시아 친구에게서 얼마 전에 연락이 왔어요. 또 그때 활동과 비슷한 작업을 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태안 '오락발전소' 홍세환 대표Q 디지털 노마드와 비슷한 형태에 대한 생각을 갖게 되신 계기나 보셨던 사례가 있으셨을까요?
가장 대표적인 곳은 발리의 ‘우붓(Ubud)’이에요. 현재 전 세계에서 디지털 노마드의 성지라고 불리는데 거기도 ‘후붓(Hubud)’이라는 한 카페에서 코워킹 스페이스로 처음 시작했어요. 숲에 둘러싸인 환경도 너무 좋아서 사람들이 지역 한달살기로 노트북 들고 모여서 일하다가 청년 개발자들이 서로 협업하며 시작되었거든요. 지금은 너무 유명해져서 사람들이 다 가고 싶어 하잖아요.
저희는 예술가 버전을 생각하고 있어요. 발리는 청년들이 모여 요가 클래스와 카페들이 생기고 또 계속 유치하기 위해 다양한 것들이 생겨났는데 저희도 같은 방향이에요. 결국 예술인들의 마을을 만드는 것, 그게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지역에 돈만 들고 온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지역 주민들과의 관계도 있고 그 사이에 섞이는 게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많이 느꼈어요. 전체적으로 고려해 봤을 때 청년들이 자연스럽게 유입될 수 있는 환경을 닦아 놓는 게 필요할 것 같아요.
Q 청년마을 사업이 청년들에게 어떤 기회를 제공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지금 수도권에 청년을 포함해 많은 것들이 밀집되어 있는 상황이잖아요.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수도권을 벗어나 생활하는 것을 생각조차 못해요. 저도 ‘갭이어’ 2주 프로그램에 왔을 때도 정착을 위한 프로그램이라고 했지만, 저는 ‘그렇구나, 나는 그냥 재미있게 놀다 가야지’ 딱 거기까지 생각했어요. 경험하고 돌아갔을 때도 ‘태안에서 살아야’ 지라는 생각까지는 안 했거든요. 결국 여기 살아야 되겠다 결정한 것은 제가 할 일이 있기 때문이었어요.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
혹은 내가 경제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는 일들이
수도권이 아니어도 괜찮다
는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기회를 주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다른 관점에서 놓고 바라본다면 ‘지금 받는 행정안전부의 지원이 만약 수도권에서 무언가를 하는 거였다면 과연 할 수 있을까, 뭐가 달라질까, 더 쉬울까’ 생각해본다면 저는 오히려 반대로 아닌 것 같아요. 수도권이 공간 확보도 더 어렵고 청년들이 활동해도 눈에 잘 띄지 않는 게 현실이거든요.
오히려 태안에서 지내다가 서울에 볼일 있으면 다녀오면 돼요. 환경도 서울보다 좋아요. 태안 바다가 진짜 매력적이에요. 제 아이들을 바다에 풀어주면 하루 종일 건강하게 뛰어놀 수 있어요.
Q 앞으로의 계획, 꿈 또는 어떤 청년마을로 오락발전소가 성장했으면 하나요?
오락발전소는 즐거운 곳이었으면 좋겠어요. 저는 1번이 ‘재미’라고 생각해요. 내가 일을 하는 것도 재미있으면 놀이가 되는데 재미없으면 노동이 돼요. 그리고 노동이 되는 순간 ‘내가 왜 이러고 있지?’ 이런 생각이 들 수 있잖아요. 그리고 더 발전해서 청년들에게 재미있는 일을 계속할 수 있는 기반까지 마련해 줄 수 있다면 더 좋을 것 같아요.
제가 이번에 이주를 하게 되면서 청년에 대해 생각해 봤어요. 사실 저도 그렇고 결혼한 사람들도 청년이잖아요. 오히려 그런 분들이 더 이주를 진지하게 고민하시는 것 같아요. 서울 경기도나 외각 쪽에 가족 단위가 더 많은 것도 너무 복잡한 도심을 피해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여유로운 공간을 찾아가시는 거니까요. 실제로 제 주변 분들 중에도 저를 보고 이주를 고민하시는 부부들이 많아요. 그래서 앞으로 가정을 이룬 청년들이 많이 이주한다면 아이들을 위한 예술적인 프로그램과 새로운 형태의 커뮤니티도 생겨날 수 있어요. 그렇다면 외부에서도 보고 지역을 주목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Q 청년마을에 관심 있지만 아직 경험해보지 않은 청년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꼭 서울이 아니어도 돼요!
서울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기회는 만들어 갈 수 있어요. 어디인지보다 청년들이 모였을 때 무언가가 이루어지는 거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