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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재 Oct 13. 2023

임산부석에 앉은 임산부를 본 적이 있으신가요?

본 적이 없다면

와이프가 출산을 앞두고 있다.

이제 예정일까지 채 10일이 남지 않았다. 언제라도 직장에서 뛰쳐나갈 수 있도록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 두 번째 출산을 맞는 우리 부부는 평소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이번에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임산부만이 겪는 고충은 바로 '대중교통 임산부석'이다.


대중교통에는 '임산부 배려석'과 '교통약자석'이 있다. 버스와 지하철에 차량당 일정 비율로 배치되어 있는데, 새로 생긴 버스를 타 보면 그 비율이 유지되어 보통 2 좌석 정도는 임산부석으로 지정되어 있다. 하지만 임산부 와이프를 두어 임산부석에 탄 사람을 유심히 쳐다보는 나조차 와이프가 아닌 임산부가 버스나 지하철에서 임산부석에 앉아있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리고 와이프조차도 임산부석에 앉은 적이 많지는 않다. 왜일까?

지하철을 타고 가다 보면, 차내 방송으로 '임산부 배려석을 비워주세요.'라는 멘트가 나온다. 그렇다. 임산부석은 '비켜주는' 자리가 아니라 '비워두는' 것이 맞다. 임산부, 특히 직장을 다니는 임산부들은 출퇴근 시간의 빽빽한 지옥철에서 임산부석을 앉을 수 없다. 왜냐면 임산부석에 이미 누군가 안장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임산부가 앞으로 와도 비켜 주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임산부가 만원인 지하철에 탄 사람들을 비집고 들어가기엔 누군가 이미 앉아 있는 임산부석은 거기까지 가는 노력에 비해 못 앉을 확률이 커서 에너지 낭비다. 임산부석에 누군가 앉아 있는 한, 임산부들은 만원인 지하철에서 그 앞까지 가지 않는다. 아니, 가지 못한다.


암행어사 출두야!... 근데 임산부 출두야! 는 아무도 관심이 없다.

임산부들을 알아보는 방법 중 가장 확실한 방법은 '임산부 배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와이프는 마른 편이라 임신 5~6개월까지도 자세히 보지 않으면 임산부로 보이지 않는 축복이자 저주받은 신체 조건으로 좌석 양보를 받아 본 적이 별로 없다. 하지만 이 배지가 있기 때문에 눈치 있는 시민들의 양보를 가끔씩 받곤 했다.

임산부 배려석에 앉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임산부가 오면 비켜 주려고 생각했다.' 거짓말이다. 와이프가 본, 그리고 내가 유심히 관찰한 임산부 배려석을 무단 점거한 이들은 남녀노소 다양했지만 그 누구도 눈앞에 임산부 배지를 들이댈 때까지 주변을 유심히 살피지 않았다(심지어 와이프가 눈앞에서 배지를 흔들어도 보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까짓꺼 당당하게 '나 임산부요!'하고 자리 비켜달라고 말하면 되지 않나요?" 그렇지 않다. 세상이 얼마나 흉흉한지는 올해 뉴스에서 '묻지 마 살인'과 같은 사회에 대한 분노로 똘똘 뭉친 비정상 범죄에 대한 기사만 봐도 알 수 있다. 버스나 지하철은 누구나 탑승할 수 있는 대중교통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자리를 비켜 달라'라고 말했다가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른다. 특히나 임산부 배려석을 무단 점거한 상황에서 이미 그 사람은 대화가 통할 확률이 낮아진다. 제일 중요한 것은 임산부는 홑몸이 아니라는 점이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는 것보다 뱃속의 아기가 더 신경 쓰인다. 괜히 앉으려다 아기에게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하면 죄책감에 두고두고 후회할 생각을 하면 조용히 참아내는 것이 백배 낫게 느껴진다.


임산부들은 사회적 약자다. 그것도 티 나지 않는 약자다.

티가 나는 약자에 비해 티가 나지 않는 약자는 더욱 약하다.

통계로, 숫자로, 인터넷 뉴스로 접하는 출산율과 지원 정책에 촉각을 곤두세울 시간에 핸드폰에서 눈을 떼고 내가 타고 있는 차량에 임산부는 없는지, 임산부 배지는 없는지 한 번씩 둘러보면 좋겠다.

임산부 배려석에서 일어나 임산부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사람도 좋지만, 임산부 배려석을 비워 두는 사람, 임산부 배려석이 아님에도 흔쾌히 일어나 임산부를 앉히는 사람이 진짜로 멋진 사람이다.

와이프도 임신 기간 중 많은 시민들의 배려를 받았다. 임산부 배려석에 앉은 사람에게 좌석 양보를 권하는 어르신, 젊은 여성 등등. 그 감사함을 가지고 우리 부부는 살아갈 것이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것이다.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사회야말로 아기를 낳아 키우고 싶은 사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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