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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재 Nov 18. 2023

바야흐로, 여아선호사상의 시대

이젠 아들보다 딸입니다

주변에서 아이를 키우거나 낳을 예정인 사람들에게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첫째가 아들이면 둘째를 낳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반면 첫째가 딸인 경우에는 둘째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다. 처음부터 한 명만 낳을 생각이 아니었다면, 둘째가 아들이든 딸이든 상관없으니 자유롭게 고민할 수 있는것이다. 왜냐고? 이미 딸이 한 명 있으니까. '성공'했으니까.



90년대생인 내가 태어나고 자랄 즈음엔 남아선호사상이라는 말이 많이 퇴색되어 있었다. 어린, 남자인 내가 느끼기에는 말이다. 남녀차별도, 성 역할에 대해서도 잘 모르던 시기이다. 명절이면 큰집에 가서 차례를 지내고, 여자들은 아침부터 바지런히 제사 음식을 만들고, 식사를 할 때도 남녀 테이블을 따로 쓰는데도 몰랐다. 그렇게 잔재하던 남녀불평등과 남아선호사상은 2023년인 지금, 여전히 없어지지는 않았지만 남아선호사상은 이제 정말 옛말이 되었다.


남아선호사상은 우리나라, 과거 유교 국가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오히려 지구상의 대부분의 민족들이 가지고 있던 고유한 특성이다. 노동력에 더 도움이 되고 식량 확보가 중요했던 과거에는 남자가 더 필요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이 어떤 시대인가. 적어도 성인이 육체적인 힘이 부족해 돈을 벌기 어려운 사회는 아니다. 오히려 육체적인 힘으로 돈을 버는 것보다 스마트폰으로터치 몇 번 해서 돈을 버는 게 더 쉬운 시대이다. 남자가 노동력으로 대우받는 시대는 종말한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한국의 여아선호사상은 사람들의 어떤 부분에 뿌리내린 것일까? 단순히 남아선호사상이 퇴색되었다고 여아선호사상이 대두된 것은 아니다. 분명한 이유가 있다. 첫 번째로, 양육의 부담이 제일 큰 부분을 차지한다. 요즘 같은 시대에는, 한 명만 키우려고 해도 부담감이 굉장하다. 미디어, 매체에서 양육에 대한 책임감과 위험부담, 어려움에 대해 지속적으로 접했기 때문에 이왕 키울 거면 잘 키우고 싶고, 해줄 수 있는 건 다 해주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디어와 매체, 주변 사람들에게서 정보를 접하다 보면 남자아이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생기게 된다. 선천적으로 남자아이는 여자아이보다 활동량이 많고, 그에 따라 주 양육자인 엄마들이 겪는 육체적, 정신적 피로가 크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여자아이는 얌전하고, 활동량도 비교적 적고,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맛이 있다. 특별히 처음부터 남자아이를 원했던 엄마가 아니라면 남자아이보다는 여자아이에게 마음이 기울기 마련이다.


두 번째 이유는 성장한 자식의 포지션에 있다. 옛날엔 남자가 성인이 되면 가문의 대를 잇고 제사도 지내는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반면 여자는 출가외인이라며 명절때 부모를 찾아가지도 못하고 다른 집 제사나 지내야 하는 역할이었다. 또 부모를 모시고 사는 것도 주로 딸들보다는 아들들이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성장한 자식들 중에서도 아들이 보다 듬직하고 필요가 있었지만, 현재는 모두 퇴색된 것들이다. 요새 누가 대를 잇는다고 집착하는가? 제사도 없어진 집이 많다. 명절 때 친정에 들르는 부부도 많아졌다. 가부장적인 요소가 하나씩 제거될 수록 아들에 대한 메리트는 줄어든다.


반면 요새 나이 드신 부모님들을 챙기는 자식들은 거의 대부분 딸이다. 모시고 여행도 다녀오고, 맛있는 음식도 함께 먹으러 가고, 40대부터 90대까지 중,장,노년층의 부모를 살뜰히 챙기고 감정적으로도 지탱해 주는 자식들은 거의 대부분 딸들이다. 아들들이 살펴드리지 못하는 부분을 잘 챙겨드리는 딸들에 대해서는 이미 대부분의 부모님들이 직,간접적으로 경험해서 알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을 목격해 온 현재 20~40대 부모들은 당연히 딸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지게 된다.



그 외에도 여러가지 요인들이 있겠지만 내가 스스로,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로 분석한 여아선호사상의 배경은 위와 같다. 이제 세상은 바뀌었다. 단체보다는 개인의 삶이 중요해졌고, 대가족은 핵가족으로 분열되었다. 가문의 명예, 위신보다는 결혼한 자식들의 행복을 바라는 부모님들이 늘어났고 그에 따라 대를 잇지 못해도 괜찮고 제사를 지내지 못해도 괜찮은, 반면에 정서적으로 보다 더 교감할 수 있고 나이들어서도 더 의지가 되며 키우면서도 부모를 덜 힘들게 하는 딸이 인기있어졌다. 


이러한 경향에 대해 긍정적, 부정적이라고 바로 판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과거 남아선호사상이 그랬듯 배경이 있고 결과가 있고 폐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당장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알아야 그것을 받아들이고 인저하지 않겠는가? 하여간 바야흐로, 여아선호사상의 시대이니 주변에 여자아이 태어난 집에 대고 '아이고 아들도 있어야지~'라는 말은 삼가기 바란다. 그 말 듣기 좋아하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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