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는 회사, 나는 나.
5. 회사와 나 분리하기
회사는 회사, 나는 나.
이 간단한 규칙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이는 크루로서 가장 위험한 일이다. 우리는 퇴근해서도 보통 회사의 기숙사에 머문다. 그곳은 나의 집이라고 느끼기엔 무리가 있다. 그들은 메일로 통보하고 때로 청소 상태를 점검하며 가끔은 벌레 퇴치를 위한 약을 뿌리기 위해 벌컥 집으로 들어온다. 이게 나의 집이라는 그들의 주장이 옳은가? 나는 아니라고 본다. 하지만 다른 동기들 중에는 퇴근했으니 집이 맞다고 하며 편안해 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니 하나의 의견이므로, 참고 정도로 남겨두길 바란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퇴근하면 크루가 아니다. 나는 한 가정의 누나이며 큰 딸이고 때론 여자친구이며 그저 웃긴 친구일 수 있다. 회사와 나를 분리하는 건 생각보다 중요했다. 나는 이를 차근차근 배웠는데, 이로 인해 내 삶을 최대로 누릴 수 있었다. 회사에 대한 충성도를 이로써 보여주는 이들도 있다. 나는 그들의 맘도 이해한다. 내게는 놀라울 정도다. 하지만 그게 지나치면, 정말 답이 없더라. 그들을 존중하지만 이로 인해 타인을 강요하는 건 무리가 있지 싶다. 하지만 중동 항공사는 일명 가스라이팅이라는 형식을 자주 사용하는 듯하다. 여기에 편승하지 않으면 이상하게 취급해서 크루들은 대충 이에 따른다. 물론 아주 잘 따르는 사람들도 있다.
승무원은 필히 비행기에 모든 업무를 두고 가야 한다. 그날 겪었던 진상 승객, 크루 등등 두고 갈 것은 많다. 쓰레기를 제게 버리는데, 굳이 그걸 들고 갈 필요가 있는가? 쓰레기통에 당장 갖다 버리길 바란다. 그런 곳에 맘을 쓰지 말기를. 세상 일이 그렇듯 그저 운이 안 좋아 그런 승객을 만났을 확률이 크다. 자신에게 마음을 쓰길 바란다. 그런 취급을 받은 자신에게 큰 선물을 주라. 제일 좋아하는 음식을 시키고 목욕을 따뜻하게 하라. 맥주를 좋아하면 맥주를 마시고 커피를 좋아하면 커피를 마셔라. 당신은 퇴근했다. 퇴근은 좋은 것. 즐기고 누리길 바란다. 홀로 아무도 없는 비행기에 두지 마라.
이는 사회인으로 자라면서 당신이 아주 잘 알아야 할 팁이다. 비행기에 모든 걸 두고 내려라. 그것이 승무원이 할 일이다. 승객이 두고 간 쓰레기를 더 이상 줍지 마라. 당신은 퇴근했다. 당신의 스트레스를 풀 만한 설레는 일을 하기를. 최고의 대우를 해주거라.
비행에서 돌아오며 진상 승객을 만났다. 동료가 편들어주며 웃었다. 개인사를 이야기하며 복수전공으로 이코노미를 했다니까 그래서 이코노미에 있는 거 아니냐며 한국에 돌아가면 비즈니스 석사를 이수하라고 했다. 이런 농담으로 내 기분은 크게 전환되었다. 중동 항공 승무원의 길은 외롭다. 외로움과 싸우며 회사와 나를 분리하는 것만이 당신이 최적화될 수 있는 방안이다.
더위가 가신 이곳에서 무한한 응원을 보내며 글을 마친다.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