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언니는 집에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난 워킹맘이라 힘들어요. 나도 집에 있었으면 애들 케어하고 살림하고 좋았을 것 같은데, 이놈의 돈이 원수네요.
얼마 전 나와 커피 한 잔 마시던 올케의 푸념이다.
올케는 종종 이런 말을 하며 자신의 딸은 돈 많은 집에 시집이나 잘 갔으면 좋겠다고 한다. 나는 그게 무슨 라떼 시절의 이야기인가 싶다.
요즘처럼 오래 사는 시대에 자신의 직업은 꼭 하나 있어야 하며, 자신이 잘 되어 있어야 그에 맞는 배우자 폭도 넓어지는 것이 아닐까?
올케는 공무원이다.
경쟁률이 치열한 시절에 합격하여 남들이 선망하는 직업을 갖고 있다. 동생과 사내 커플로 결혼하여 올해 10년 차 부부다. 직업이 안정적이긴 하지만 사실 공무원 월급은 박봉이다 보니 직업적 만족도가 크게 높아 보이지 않았다.
물론 지금 당장은 회사 다니랴, 아이들 케어하랴 너무 힘든 하루하루 일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올케가 전업주부를 부러워하는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나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시간도 걸리고 해야 할 것도 많고, 정말 노력한 티가 잘 안 나는 게 살림이야. 그리고 나도 대학원까지 나왔는데 공부한 게 아까워서 얼마나 일하고 싶은 줄 아니?
당장은 네가 더 힘들겠지만 아이들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면 그런 생각도 없어질 거야. 애들도 학원 다니고 자기 공부하느라 바쁘대. 서서히 독립을 시작하는 거지.
그때 전업주부들은 얼마나 심심하겠냐? 그래서 아이들 학원비도 벌 겸 돈 벌러 나간다잖아. 근데 너는 나이 들 때까지 걱정 없는 직장도 있겠다 대체 전업주부가 뭐가 부럽다는 거야. 난 네가 더 부러워"
사실 주부의 자기 시간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아이를 기관에 보내고 나면 그때부터 집 정리와 청소를 시작한다. 그리고 하원하기 전까지 반찬과 간식을 준비해야 하고 그 사이에 빨래까지 해치워야 한다. 커피 한 잔 마시며 조용히 책 좀 보려고 하면 이내 아이를 데리러 갈 시간이다.
"그래도 일터에 나가면 전쟁인데 집에서 알아서 컨트롤하면 되니 편한 것 맞지 않나요?"라고 말한다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전업주부에게도 온전한 자기 시간 만들기는 쉬운 일이 아니며 심지어 퇴근시간이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얼마 전, 어린이집 엄마들과 부모교육을 듣고 점심을 같이 먹었다. 다들 초면이었는데 제일 젊은 엄마가 나에게 물었다.
언니, 언니도 집에서 노시죠?"
순간 웃음이 빵 터졌다. 맞는 말이지만 그렇게 대놓고 노냐고 질문하는 사람은 처음이었다.(보통은 전업주부냐고 물어보지 않는가.)
"네, 맞아요. 놀아요."
옆에 계시던 원장 선생님이 민망하셨는지 덧붙여 말씀하셨다.
"놀기는요. 요즘 글쓰기 하시고 얼마나 바쁜데."
여기저기서 작가냐고 되물어 본다.
"아, 그건 아니고 그냥 제 이야기를 조금씩 쓰고 있어요."
나는 법학과, 국어국문학과를 나와 교육대학원에서 국어교육을 전공했다. 결혼하기 전까지 학교에 잠시 근무를 했었고, 개인적으로 아이들에게 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했다.
결혼 후 출산과 육아를 하며 혼자 아이를 케어하다 보니 학생들과 수업시간 맞추기가 어려워지면서 자연스럽게 일을 쉬고 있다. 내 일을 좋아하고 열심히 하고 있던 터라 생각지 못한 경력단절은 금세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그때의 나를 찾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글쓰기를 통해 나라는 사람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여러 가지 생각들을 정리하고 있다.
전업주부들 중에 정말 신나게, 재미있게 잘 노는 사람도 있고, 주부라는 직업(?)이 자신에게 잘 맞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는 걸 4년 동안의 주부생활로 몸소 느끼고 있다. 그래서 조금의 여유가 생긴 요즘, 많은 것을 배우고 공부하려고 한다. 나의 일을 언제 다시 시작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도록 탄탄하게 내공을 쌓아 갈 것이다.
학생에게 "공부할 때가 제일 편할 때야. 그게 제일 쉬워."라는 말이 최악이 듯, 전업주부에게 "하루 종일 집에 있어서 좋겠어요. 부러워요." 역시 실례의 말임을 꼭 기억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