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마주한 가장 조용한 스승

항암치료를 받는 그가 나에게 준 깨달음.

by sun

나는 한 복싱체육관에서 메인코치로 일을 했었다.

나는 학창시절 복싱 선수였었고 예체능을 특기로 살려서 군대를 전역 후 이쪽 분야로 취업을 한 것이다. 그렇게 난 처음 보는 사람들의 수많은 첫걸음들을 지켜보았다. 그들은 모두 걷기 전에 흔들렸다.


어떤 이는 다이어트를 목표로,

어떤 이는 멘탈 향상을 목표로,

어떤 이는 단지 운동을 좋아한다는 이유 등

수많은 이들의 낯선 장소에서 하는 각자의 다짐들과 첫걸음...


우리 모두에게는 분명히 삶 속에 목표와 그에 따른

갈증을 해소하려 각자만의 방식을 찾고자 살아간다.

각자 다른 사연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각자 다른 시작점의 이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감히 이야기 해보려한다.




나는 체육관을 관리하고 관원들을 트레이닝하고 새로 오는 사람들의 상담을 맡고 개인의 몸상태와 목표에 맞게 트레이닝을 해오고 있었다. 관장이라는 직책이 하는 일은 거의 내가 대신 하였기 때문에 거의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맡고 있었다. '당시' 초반에는 업무 중 유일하게 스트레스 받고 나와 관련없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상담'이 있었다.


하지만 내 직업 특성상 나의 생각과는 역설적이게도 상담은 내가 사람들을 유동적으로 관리하고 트레이닝 시키기 전에 반드시 필요한 절차였다. 나는 상담 스크립트와 트레이닝 메뉴얼에 맞춰서 상담과 트레이닝을 진행하지 않았다. 스크립트와 메뉴얼에 맞게 수동적으로 사람들을 상대하기에는 그들이 가진 고충과 목표가 너무나도 다양하였기 때문이다.


상담을 오는 손님들 중 99%가 주눅이 든 상태로 방문을 한다. 나는 이들이 왜 주눅이 들었는지 명확히 알고 있었다. '복싱'이라고 하면은 대부분 야만적인 이미지와 중압감있고 무자비한 사람들이 있는 이미지니까 말이다.


그들이 사무실에 진입하고 가벼운 인사 후 나는 보통 이러한 말을 꺼낸다.


"처음 방문하신 분들은 들어오시자마자 관원들이 한껏 상기된 얼굴로 샌드백을 무자비하게 치고 사슬끼리 엉켜 찰랑거리는 소리가 고막을 때려 많이들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오시더라구요"


나는 그들이 주눅이 든 이유를 알았기 때문에

내가 먼저 말을 꺼냄으로써 그들의 마음을 공감해주었다.

나는 여태껏 이 멘트를 여러번 하여서 누군가 나에게

자다가도 일어나서 상담을 하라고 한다면

위와 같은 멘트를 할 것이다. 각설하고,


이렇게 99%의 첫인상은 많이들 봐왔기 때문에 나름대로 요령껏 나만의 방식대로 그들을 편하게 해주고 상담을 할 수 있었다.


이 99%의 유형의 사람들의 목표는 대부분 아래와 같이 귀결된다.


1. 건강을 위해서, 다이어트를 하고 싶은 사람

2. 운동을 취미로 삼고 싶은 사람

3. 멘탈이 약해서 정신력을 강화하고 싶은 사람


대표적인 이유는 이 3가지다.

하지만 이 대표적인 이유 중 1번에서 건강과 관련된 인물로

어느 한 남자와의 첫 만남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항암치료를 받는 60대 후반의 남자 이야기

사람은 목표를 세우지만 그 목표를 세우는 이유라는 것은 정말 사소하지만 반대로 그 사람의 각오와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위대하고 장대한 것임이 틀림없다고 나는 지금까지 믿고 있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과거에서 찾을 수 있다.


나는 어느날 찾아온 손님을 상담 해주고 트레이닝을 시켜 준 한 사람이 아직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 사람은 항암치료를 받는 한 60대 후반의 남자였다. 그는 남색 체크무늬 패턴의 셔츠와 흰 면바지와 광택이 있는 가죽 구두를 신은 차림이었다. 그가 처음 방문하였을 때, 나는 그가 어느 누구보다 나이를 떠나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건강한 사람인 줄 알았다.


앞으로 뒤에 나올 이야기에서 내가 그에게 질문을 하기 전까지는 항암치료를 받고 있는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상담도중에 아이스 브레이킹을 섞을 때에도 간간이 보여주는 미소를 지었으며 상담을 마치고 첫 트레이닝을 해줄 때도 거친 숨을 몰아쉬었지만 내가 지시한 대로 차곡차곡 하나하나씩 그는 성실하게 또 분명하게 이겨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루도 빠짐없이 체육관에 나오는 열정적인 그를 한 달 동안 트레이닝 시켜주고 나서 어느 날 그와 대화할 시간이 생겼다. 그 날 따라 유독 다른 관원들도 없었기에 나는 휴식 시간 중 나는 그가 운동을 시작한 이유가 문득 궁금해져서 아래와 같이 물어보았다.


"선생님께서는 아무래도 연세가 있으셔서 이런 투기 종목을 시작하기까지 걱정과 가족들의 반대도 상당했을 것 같은데 굳이 이 운동을 선택하신 이유가 무엇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그가 운동 후 거칠었던 숨이 천천히 걷히고 땅바닥을 보았던 고개를 들며 나의 얼굴을 보고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코치님은… 왜 이 일을 하십니까?”


나는 그 질문이 그의 땀보다 먼저 내 마음을 적시는 걸 느꼈다.

사람이 인생의 끝자락에서 던지는 질문은 가벼운 호기심이 아니라 스스로 살아온 날들을 돌아본 후에만 나오는 묵직한 울림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잠시 나를 바라보던 그는 내가 기억하던 바로는 미소인지 체념인지 모를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사실 저는… 항암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가장 무서웠던 게 살아 있는 게 아니라 살아낸다는 느낌이 사라지는 거였어요. 아무 노력도 안 하고 아무 의지도 없이 그저 시간이 흘러가는 대로 버티는 사람처럼 보일까 봐… 그게 너무 싫었습니다.”


그는 다시 시선과 고개를 저 바닥으로 떨구어 자신의 손등을 내려다보며 작은 숨을 토했다.


“그래서 시작했습니다. 몸이라도 다시 움직이면… 마음까지 죽은 사람처럼 보이진 않을 것 같아서요.”


그의 말은 오래된 상처처럼 조용히 내 안으로 스며들었다.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그가 다시 물병을 닫고 가쁜 호흡이 조금씩 안정되어 가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항암치료라는 단어는 의학적 설명으로는 담을 수 없는 현실을 품고 있다. 몸이 고통받는 것보다 더 잔혹한 건 ‘살아가는 주도권’을 잃었다고 느끼는 순간이다. 그는 그 감각을 누구보다 정확히 알고 있었다.


“코치님”

그가 다시 말을 이었다.


“몸이 아픈 건… 그냥 견디면 됩니다. 그런데 마음이 멈추면… 그건 정말 끝이더라고요.”


나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가 하는 말이 이상하게도 나에게 더 큰 질문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가? 나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그리고 나는 지금 어떤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서 있는가...


그를 가르친 시간은 사실 나를 드러낸 시간이었다. 내가 일에서 느꼈던 피로, 사람들 앞에서 보여주던 단단함, 내가 스스로에게 요구하던 완벽함. 그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의미를 잃고 정적 속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웃었다.

기력이 떨어진 사람에게서 나올 수 없는

이상하리만큼 따뜻한 웃음이었다.


“그래서요… 저는 여기에 옵니다. 하루라도 덜 흔들리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그 말은 마치 나에게도 그렇게 살아볼 수 있겠냐고,

조용히 권하는 제안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제야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 그는 이미 다시 글러브를 끼고 있었다. 떨리던 손이 조금씩 힘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 날 이후, 나는 사람을 가르치는 일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누군가의 흔들림을 잡아주겠다고 서 있었던 나는 사실 그들의 흔들림을 보며 내가 얼마나 흔들리고 있었는지 깨닫지 못했다.


가르침이라는 것을 주는 자리는 누군가를 변화시키는 곳이 아니라 나 자신이 더 솔직해지는 자리였다. 그의 첫걸음은 느렸지만 그의 이유는 누구보다 명확했다. 그리고 그 이유가 나를 조금 더 단단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의 첫걸음은 느렸지만 그가 흔들림 속에서 버티는 모습은 누구보다 단단했다. 나는 그 시간이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그에게도, 그리고 나에게도 하루를 살아내는 하나의 의식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는 매일 조금씩 변해갔다. 힘이 붙고, 호흡이 길어지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침착하게 받아들이는 법을 익혀갔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인가 그가 늘 서 있던 구석이 비어 있었다. 운동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목에서도, 운동 시작 전의 준비 공간에서도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가 나오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궁금하였지만 구태여 이유를 묻지 않았다. 사람은 때때로 말하지 않는 방식으로 자신의 길을 바꾼다는 걸 나는 그와의 시간을 통해 배웠기 때문이다.


가끔 그의 호흡과 걸음이

체육관의 공기 속에 남아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가 다시 돌아올지 아니면 그 네 달의 시간이 그가 남긴 마지막 흔적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그 사실을 조용히 받아들였다.


어떤 이의 첫걸음은 다른 이의 잊지 못할 깨달음이 된다. 흔들림을 가르치다 보면 결국 나의 흔들림과 마주하게 된다. 내가 남긴 가르침보다 그가 남기고 간 침묵이 더 많은 것을 말했다.


그렇게 그와 함께 한 시간이 4개월이라는 짧을 수도 길 수도 있는 시간이 지나고 언젠가부터 한동안 그를 볼 수 없었다.


그가 어디에 있든지 꼭 행복한 여생을 누렸으면 좋겠다.

다시 만나지 못하여도 그가 앞으로도 행복할 수 있다면

그걸로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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