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전부리 한 봉지에 담긴 미묘한 위로
사람을 가르치는 일은 언뜻 ‘지식을 주는 일’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된다.
정작 더 많이 배우는 쪽은 가르치는 사람이라는 걸.
나는 그 사실을 체육관에서 코치로 일하던 시절
매일 새벽과 밤 사이에서 깨달아갔다.
그 중에서도 두고두고 마음에 남는 장면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커피와 주전부리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 작은 온기가 내 사람됨을 단단하게 만든 순간들.
체육관의 아침, 한 잔의 온도
어느 겨울 아침이었다.
매트 위로 희뿌연 먼지가 비처럼 떠다니고,
형광등은 천천히 깜빡이며 공간을 깨웠다.
나는 아직 정신이 반쯤 깨어 있던 상태로 문을 닫고,
오늘의 수업 구성안을 머릿속에서 다시 정리하고 있었다.
그때 문이 살짝 열리며
차가운 바람과 함께 한 관원이 들어왔다.
출근 직후의 고요함을 깨뜨리지 않을 만큼
조용히 걸어 들어오더니
커피 한 잔을 건넸다.
“코치님, 오늘은 좀 달게 드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 말투, 그 표정.
언제나 담담했지만
그 속에서 나는 미묘한 ‘관찰’을 느꼈다.
내 표정의 흐릿함, 잔여 피곤함, 말 없는 기운들을
그는 단번에 읽었던 것이다.
그 커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었다.
그날 하루 내가 버틸 수 있는 밀도 높은 격려였다.
그 관원이 떠나고 나서
나는 천천히 뜨거운 컵을 손으로 감싸 쥐었다.
그 온기가 천천히 손등에서 팔, 어깨, 마음으로 전달되는 듯했다.
그때 처음 깨달았다.
사람을 가르치는 일은
내가 그들을 이끌기만 하는 구조가 아니라는 걸.
가끔은 그들이 나를 끌어올리기도 한다는 걸.
여행의 냄새가 들어오던 날
며칠 뒤였다.
이번엔 체육관 문이 화사하게 열며
햇빛과 바람이 동시에 밀려들어왔다.
문틈 사이로 들어온 바람에는
어딘가 낯선 향기가 스며 있었고,
그 향기의 주인은 종이가방을 든 관원이었다.
“코치님! 여행 다녀왔어요! 주전부리 잔뜩 사왔어요!”
그 관원이 종이봉지를 테이블에 올려놓자
초콜릿, 견과류, 작은 케이크, 여행지에서만 볼 수 있는 과자들이
봉지 속에서 서로 부딪히며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 소리는 묘하게 생활의 온도를 담고 있었다
정성, 생각, 마음
가끔은 말보다 상상 속 장면이 더 깊게 스며든다.
그날 내가 먹은 초콜릿은 그 어떤 단맛보다도
사람의 마음을 닮아 있었다.
사람을 가르치는 자리는 결국
‘사람을 배우는 자리’라는 것
그 시절 체육관은
땀과 규율만이 존재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커피와 주전부리를 나누는 관원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확실히 알게 되었다.
사람을 가르치는 자리는
사람을 배우게 만드는 자리라는 것.
나는 관원들의 체력, 기술, 자신감을 끌어올리기 위해 애쓰고 있었지만 그들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내 마음의 무게를 들어 올리고 있었다.
어떤 날은 커피 한 잔으로,
어떤 날은 여행지에서 사온 과자로,
어떤 날은 그냥 “오늘 힘드시죠?”라는 조용한 한마디로.
나는 ‘코치’였지만,
그들에게만 일방적으로 무언가를 주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들도 나에게 주고 있었다.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는 작은 배려들로.
밤이 오면 더 선명해지는 장면들
하루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가방 안에서는 조용히 달그락거리는 간식봉지,
손끝에는 아직 사라지지 않은 커피 컵의 온기,
마음속에는 누군가의 작은 배려가 생생하게 남아있었다.
불을 끄고 누우면
그 장면들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떠올랐다.
커피를 내밀던 손.
여행지 냄새가 묻어 있던 종이봉지.
내 표정을 ‘읽고’ 건네던 배려.
관원들과 운동 후 땀과 함께 나누던 웃음.
그 작은 순간들이 내 하루를 지탱했다.
그리고 나는 그 순간들 덕분에
다음날 또다시 누군가를 끌어올릴 힘을 얻었다.
내가 사람을 가르치며 배운 것들
사람을 가르치다 보면
누가 누구를 더 많이 변화시키는지 헷갈릴 때가 있다.
그래서 나는 이제 이렇게 말한다.
가르침은 일방향이 아니다.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들어 올리며 살아간다.
관원들을 가르쳤던 나는 그들 덕분에 버티는 법을 배웠고,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조용히 흐르는지 배웠고,
작은 배려가 얼마나 오래 남는지 배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르치는 자리에서 내가 배운 가장 큰 진리는 이것이다.
사람은 결국 사람 덕분에 버틴다.
그리고 사람 덕분에 다시 일어선다.
커피 한 잔과
여행에서 사온 주전부리 한 봉지가
내게 알려준 응원의 형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