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은 결핍이 아닌 감내하는 것이다 .
나는 언제나 무리의 앞자리에 서왔다.
학급에서든 직장에서든
스스로 나서지 않아도 사람들은 나를 추천하며 앞에 세웠다.
그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
말이 많아서도, 화려해서도 아니었다.
내 태도에는 가벼움이 없었기에
사람들은 나를 리더라 불렀다.
그러나 그 자리가 언제나 편안한 것은 아니었다.
권위는 화려한 빛이 아니라 짐이었다.
고등학교가 실업계였던
나는 19살에 이미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대학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던 분위기 속에서,
나는 “일을 먼저 배우는 것이 더 현실적”이라고 여겼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조직의 갈등이라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나는 그 갈등에 직접 휘말리지는 않았지만
동료들 사이의 불신과 분열이 어떻게 업무를 갉아먹고,
어떻게 악순환으로 이어지는지를 곁에서 목격했다.
그 모습은 내게 중요한 깨달음을 남겼다.
권위 없는 집단은 언제든 갈라지고,
갈라진 집단은 결국 무너진다는 사실이었다.
그 속에서 나는 1년 동안 묵묵히 내 업무에 집중했다.
다행히 전공과 잘 맞아떨어진 업무였기도 하였고
팀원들은 비전공자 출신이 많았으며
단지 나는 운이 좋게 성과를 낼 수 있었고
그 결과가 쌓여 나를 돋보이게 만들었다.
조직은 갈등 속에서도 성과를 내는 사람을 찾았고,
나는 그렇게 팀원들을 지시하고 이끄는 자리,
소위 본사 팀장 바로 밑의 지사팀장을 맡게 되었다.
당시 나이는 20~21세었지만,
내게 주어진 무게는 어른 못지않았다.
그리고 나는 그때 또 한 번 알았다.
권위란 직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혼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결과를 내는 힘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그 경험은 내 삶에 큰 흔적을 남겼다.
나는 이후에도 여러 자리에서 리더 역할을 맡았지만
언제나 그 첫 직장에서의 기억을 떠올린다.
권위는 소리 높여 싸우는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분열에 휩쓸리지 않고 자기 자리를 지킨 자에게 돌아왔다.
나는 그 사실을 몸으로 배웠다.
영장이 날라오기 전까지는 첫 직장에서 근무하였고
시간이 흘러 나는 군복무를 마치고 전역 이후
나는 곧바로 서울로 올라왔다.
더 넓은 무대에서 부딪히기 위해서였다.
나는 중학생 때부터 취업하기 전까지는
쑥스럽지만 성적이 좋은 운동선수의 신분이 었다.
비록 코로나에 의하여 체대를 결정하는
중요한 시합들이 취소가 되었고
빠르게 취업으로 눈길을 돌렸던 것이다.
각설하고,
그 특기를 이용하여 한 체육관의
메인코치로 일하며 내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지도자의 자리는 단순히 기술을 가르치는 일이 아니었다.
책임을 지고, 제자의 부모가 되어줄 수 있어야 하고,
정신과 의사 역할까지 해주어야 하며
제자의 앞 날의 무게까지 감당해야 하는 자리였다.
그곳에서도 나는 리더였다.
함께했던 코치님들 중에서도 나는 메인 코치였다.
사람들은 나의 말과 행동에서 무게를 읽었고
나는 또다시 앞에 세워졌다.
그러나 리더의 자리에 선다는 것이
언제나 긍정적이지는 않았다.
고독은 나를 무겁게 눌렀고, 때로는 그것이 너무 버거워
스스로를 잃기도 했다.
하지도 않던 명상에 매달리거나,
술에 취해 쓰러지듯 잠들기도 했다.
하루가 견디기 힘든 날에는
혼자 노래방에 가서 목이 쉬도록 노래를 불렀고,
혹은 PC방에 앉아 새벽까지 불빛에 시선을 묻었다.
그것들이 내 본질에 맞는 해소는 아니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고독을 잊을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결국 더 깊은 고독만이 남았다.
나는 마침내 알았다.
권위의 그림자가 아니라 근원이라는 것을.
나는 점점 더 확신하게 되었다.
하나는 진심과 책임에서 비롯된 권위,
또 하나는 직위와 겉치레에 불과한 가짜 권위.
전자는 시간이 흘러도 무너지지 않지만,
후자는 언젠가 붕괴한다.
내가 추구하는 것은 언제나 첫 번째다.
권위는 억누름에서 생기지 않는다.
권위는 도망치지 않고, 고독을 감내하며,
혼란 속에서도 제자리를 지키는 자에게 주어진다.
그 길 위에서 나는 새로운 선택을 했다.
처음에는 대학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지만,
젊은 나이부터 사회에 뛰어들고
최근까지 코치로 일하며 깨달았다.
권위는 성과와 경험만으로 단단해지지 않는다.
그것은 반드시 사유와 학문 위에서 더 깊어져야 한다.
그래서 나는 대학을 선택했다.
단순히 미래의 부유함과 평안을 위해서와
자격을 위해서가 아니라,
어떤 이들은 부모의 강요로,
교육열에 기괴할 정도로 집착하는 사람들,
공부를 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착각을 가지고 있는 무지한 사람은 아직도 많다.
사람들이 나의 안부를 물을 때,
내가 대학 진학을 위해서 공부를 한다니까
응원과 격려, 도움이 되어주겠다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몇몇 사람들은 하나 같이 입을 모아 두 가지를 말하였다.
"그건 너무 위험한 선택일 수도 있어~ 더군다나 인문계도 아니라 실업계를 나와서 좀 불리할 거 같아서 말해주는 거야~"
.
.
.
"설령 대학에 들어간다고 해도 그 당시 나이쯤 되면 혼자 다니게 되는게 대다수인데?"
나는 구태여 입을 열지 않았다.
그들의 말에 가시가 있다는 것을 난 알았지만
동시에 맞는 말이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일반적으로 삶의 궁극적 목표가 아닌
남들 다 하니까 혹은 사회분위기에 이끌려
대학을 가는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위험하다는 말은 결국
‘다수의 기준에 어긋난다’는 뜻일 뿐이다.
나는 다수가 정한 안전 대신, 나만의 진실을 택하겠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는 법이다.
나는 늦게 들어가는 만큼, 더 고독하게,
더 분명하게 내 길을 걸을 거다.
혼자라는 말이 어쩌면 위로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나는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인다.
대학이라는 공간은 본디 무리를 이루어 다니는 곳이 아니라, 각자가 자기 질문을 짊어지고 걷는 장소다.
젊을 때는 고독을 결핍이라 여기지만,
일정한 시점 이후의 고독은 더 이상 결핍이 아니라 선택이다.나는 혼자 다니게 될지언정,
그 고독 속에서 더 명확히 나를 세우고 싶다.
다수와 함께 걷는 안전보다,
홀로 걷는 무게 속에서 더 깊이 나를 증명할 수 있으니까.
나는 이제 안다.
권위의 본질은 남을 지배하는 힘이 아니라,
무게를 감당하는 용기라는 것을.
열아홉 살,
혼란스러운 직장 속에서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온 나의 길은 그 사실을 끊임없이 증명해왔다.
나는 앞으로도 무리의 앞자리에 서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 자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것은 오만도 겸손도 아닌 확신이자 비전이다.
내가 짊어져야 할 무게이자,
내가 살아온 자리에서 발견한 권위의 본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