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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선우 Nov 01. 2022

시간에 관하여

어제 들은 음악 : Spiegel im spiegel

9분이 넘는, 어쩌면 좀 지루한 음악일 수도


어린아이일 적엔 왜 그리 시간이 더디 가는지, 나이가 들면 들수록 시간은 왜 그리 빨리 가는지, 어릴 적 누군가가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 중 하나. 


사람 수명이 100년이라면, 

갓 태어난 아이의 하루는 1/100년, 

즉 1년이며, 

하루가 바뀔수록 

남은 수명의 1/100 이 줄어든다고 한다. 

그러니 신생아의 둘째 하루는 

어제 1년을 빼고 남은 99년의 1/100, 

즉 0.99년과 같고, 

또 하루가 지난 셋째 하루는 

(99년-0.99년=98.01년)/100=0.9801년 같은 식으로 

하루하루가 지나면 지날수록 하루의 길이가 점점 짧아져, 

나이가 들수록 세월이 빠르게 느껴진다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듣고 있다 보면 고개를 끄덕일만한, 조금은 일리 있는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겠다.


사실 시간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다. 늘 일정한 템포다.  지금 듣고 있는 피아노 소리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흘러가는 게 시간이다. 


...


나이를 손가락, 발가락수로 헤아릴 수 있을 정도의 나이 때에는 도대체 지금 나는 무얼 하고 있는지 하는, 너무 진전이 없고 더딘, 발전이 정체되어 있는 그런 기분을 느낄 때가 많았다. 무엇인가에 쫓기듯 아무것도 한 것 없이 오늘을 지내고 나면 괜한 하루를 소비한 것 같고, 오늘을 알차게 보냈으리라 지레짐작되는 남들과 비교하는 느낌. 진학을 선택할 때 곧장 질러갈 수도 있는 것과 재수하는 것을 서로 비교하고, (남자라면, 군대 다녀오는 것이 그렇지 않은 애들보다 뒤처지는 게 아닌가 하는 것을 서로 비교하고), 걱정하지 않아도 될 일을 서로 비교하는 일이 숱하게 많았던 듯하다. 

 

젊은 친구들에게 가끔 해 주는 이야기 중 하나. 감나무에 감이 달려 있는데, 10개, 20개 정도 달려 있을 때에는 눈으로도 대충 세어 보아도 10개, 20개이지만, 30개가 넘아가고 40개가 넘어가면, 땅바닥에 감이 하나 떨어지든, 까치가 하나 물고 가든, 대충 아, 많이 열렸네 하고 넘어가게 된다고. 지금 당장 네 나이 때에는 한 해 두 해 빠진 게 없는지 매번 세어 보고 뭔가 하나라도 없으면 불안해 하지만, 시간이 지나 네 나이만큼 해의 수가 늘어나면 한 해 두 해 빼먹는 게 사실 별 일이 아닐 거라는, 감나무에 감 하나쯤 없어도 아무렇지도 않게 느낄 때가 올 거라는 이야기이다. 그러니 재수를 하든 군대를 가든 여행을 가든 연수를 가든 그 모든 것은 너에게 어떠한 결실이 되어줄 것이니, 젊을 때의 한 해 두 해 보내는 것을 너무 아까워하지 말라고. 떨어진 감이 되었든 까치가 물고 간 감이 되었든, 그 모든 것이 네 성장에 도움이 되는 비료가 되어 돌아올 것이니 너무 두려워 말라고. 그게 나이가 들면 배우는 시간이라고.


지금 듣고 있는 피아노가 가끔 쿵하고 소리 내듯, 감나무에서 크게 떨어지는 감처럼 느껴지더라도, 그건 전체적인 음악에 변화를 주어 음악이 보다 풍부하게 들리게 하는 것처럼. 일정한 템포 속에서 자극제가 되는 그것이 시간이라고.


...


피아노가 연주하는 것이 나의 시간이라면 그것을 감싸 은은하게 들려오는 첼로는 늘 내 곁에 있으며 나를 위한 남들의 시간, 나와 남들의 시간이 합쳐져 하나의 음악처럼 느껴지지는 않은지...


...


이 곡은 어디에선가 한 번쯤 들어봤을 수도 있다.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은 영화 About Time의 삽입곡이기도 하고, 적막한 우주에 홀로 떨어져 지구로 귀환할 시간을 기다리는 Gravity에서도 들어봤음직한 곡이다. About Time에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아버지와의 추억을 되돌아가 되돌아가 반복하며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대목에서 일정한 템포의 피아노와 그것을 감싸는 첼로로 감성을 자극하는 반면 Gravity에서는 무엇이 앞으로의 시간에 나타날 지 모르는 불안과 고독을 그리는 데 일조하고 있다.


에스토니아 출신 음악가 아르보 패르트(Arvo Pärt)가 작곡한 이 곡은 위 두 편의 영화 뿐만 아니라 수 십 여편에 이르는 영화와 연극, TV 드라마 또는 다큐멘터리에 사용된 곡이다. (심지어 홍상수 영화 '생활의 발견'에 까지 삽입되었다) 원래는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위해 작곡되었지만 오늘은 첼로로 듣고 있는데, 첼로 또는 비올라가 가끔 사용되기도 한다.


제목은 Spiegel im spiegel. 독일어로 '거울(들) 속의 거울'로 번역될 수 있고, 거울이 가득한 사방이 거울로 둘러 있는 거울방을 의미하기도 한다. 시간이 되도는 느낌으로도 표현될 수 있는 그런 제목을 가지고 있다 할 수 있겠는데, 왜 이 곡이 About Time이나 Gravity의 시간을 의미하는 음악으로 사용되었는지 그 일맥상통함을 알 수도 있겠다.


...


어제 들은 음악은 

Spiegel im spiegel (Arvo Pärt) 

- Piano : Filipe Melo , 

- Chello : Ana Cláudia Serrao 이다.


ps. 이 곡은 여러 연주가가 연주한 다양한 버전의 동영상이 많이 존재하고, 뉴욕시티발레단의 발레 New Beginnings의 배경음악으로도 사용된 것이다. 아래 추가한 동영상이 그것이다. (좀 짧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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