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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Go쥬니의 다락방 Apr 20. 2023

내 입맛대로 뜯어먹는 <바빌론>

'데미언 샤젤'부터 ~ '엔딩 몽타주'까지

데미언 샤젤(Damien Chazelle)?


 우리에게는 <위플래쉬>와 <라라랜드>로 이름을 알리게 된 감독.


 그는 학장시절부터 재즈 드러머를 꿈꿨었고, 고등학교에서 스튜디오 밴드 재즈 드러머로 지원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매우 엄격한 스승에게 드럼을 배웠지만, 실력이 좋지 않다는 혹평만 듣고 결국 드러머를 그만두게 되었다. 이 엄격한 스승이 <위플래쉬>의 '테런스 플레처'에 모티브가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상처를 받고 드러머라는 길 대신, 공부에 집중하여 하버드 대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 대학교에서 인생을 함께 할 동료 '저스틴 허위츠'를 만나게 된다. 드럼을 좋아하는 '샤젤'은 영상을 전공하였고, 키보드를 잘 치는 '허위츠'는 음악을 전공했다. 같이 붙어 다니면서, '샤젤'은 뮤지컬 영화에 빠지게 되었고, 이때 <라라랜드>의 각본은 구상하게 된다.

 하지만, 무명의 감독의 영화에 투자를 할 영화사를 찾기가 쉽지 않았고, 어렵게 100만 달러를 투자받게 된다.


드럼을 치는 어린 '데미언 샤젤(왼쪽)' / 키보드를 좋아하는 '저스틴 허위츠(오른쪽)'



 <라라랜드>를 제작하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한 자본으로 제작을 미루게 되었다. 그리고 2009년 <가이 앤 매들린 온 어 파크벤치>로 데뷔하였고, 5년 후(2014년) <위플래쉬>로 세상에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위플래쉬> 역시, 아무도 영화 제작에 선뜻 나서지 않았지만, 2013년 선댄스 영화제에 입상하게 되면서 제작비를 지원받았고, 이를 통해 드디어 개봉을 하게 된다.


 <위플래쉬>의 성공 이후, <클로버필드 10번지>의 각본을 집필하였고, 이후 자신이 구상한 <라라랜드>를 공개할 수 있게 되었다. <라라랜드>를 통해서 '데미언 샤젤'은 최연소 아카데미 감독상 수상자가 되었고. 각종 시상식에서 후보에 올라가고 수상을 하게 된다. 


 이후, 닐 암스트롱의 전기 영화 <퍼스트맨>을 제작하였고, 1920~1930년대의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넘어가는 할리우드를 배경으로 그린 <바빌론>을 제작, 개봉하게 된다.


 ( + 23년 4월 5일 기준, <바빌론>의 손익분기점은 2억 5천만 불. 순제작비는 7800만 불. 개봉 첫 주 오프닝 성적은 360 민불. 흥행에는 실패한 모습.)


https://deadline.com/2022/12/babylon-box-office-bombs-brad-pitt-margot-robbie-1235207013/






왜 제목은 바빌론(Babylon)?


 왜 영화의 제목이 바빌론일까?


 이에 대해서 얘기하기 전에, 바빌론이 무엇인지를 알아보자.


 기원전 2000년대 수메르인과 아카드인의 여러 도시들이 한창 이전투구를 벌이던 시절, 셈족의 일파인 아모리인은 기원전 1894년경 바빌론을 세우고 (바빌론 제1 왕조) 이윽고 메소포타미아의 정치, 산업의 중심지로 성장시켰다. 이후 도시국가 바빌론이 확장된 영토 국가 바빌로니아 제1제국이 되어 활발한 정복 활동을 하여, 마침내 메소포타미아 전역을 석권하는 대국이 되었다. 이후, 함무라비 대왕 등 명군들에 의해 번영이 계속되면서 바빌론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세계의 수도'의 명성을 얻게 되었다.


 하지만, 바빌론을 말할 때 주로 사용되는 의미는 성경에 나오는 내용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한다. 

자기 나라를 멸망시킨 바빌로니아에 대해 나쁜 감정을 가지고 있는 유대인들에 의해 탐욕과 죄악으로 가득 찬 악의 도시, 복마전 등과 같은 이미지로 서구 세계에 많이 알려져 있다.

대표적인 것이 구약성경의 시편 137편으로, 화자가 바빌론에 약탈을 당해 노예로 끌려가서 예루살렘과 시온을 그리며 한탄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이 중 8절과 9절은 "파괴자 바빌론아, 네가 우리에게 입힌 해악을 그대로 갚아주는 사람에게 행운이 있을지라. 네 어린것들을 잡아다가 바위에 메어치는 사람에게 행운이 있을지라."라는 상당히 노골적인 저주 문구들이 적혀있다. 


 그리고 바빌론을 이야기할 때, 바벨탑도 같이 이야기를 하는데, 히브리 신화에서는 거인족인 네피림이 바벨탑을 건설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구약성경에서도 바벨탑에 대한 언급이 있다.



 온 세상이 한 가지 말을 쓰고 있었다. 물론 낱말도 같았다. 사람들은 동쪽으로 옮아 오다가 시날 지방 한 들판에 이르러 거기 자리를 잡고는 의논하였다. "어서 벽돌을 빚어 불에 단단히 구워내자." 이리하여 사람들은 돌 대신에 벽돌을 쓰고, 흙 대신에 역청을 쓰게 되었다. 또 사람들은 의논하였다. "어서 도시를 세우고 그 가운데 꼭대기가 하늘에 닿게 탑을 쌓아 우리 이름을 날려 사방으로 흩어지지 않도록 하자." 야훼께서 땅에 내려오시어 사람들이 이렇게 세운 도시와 탑을 보시고 생각하셨다. "사람들이 한 종족이라 말이 같아서 안 되겠구나. 이것은 사람들이 하려는 일의 시작에 지나지 않겠지. 앞으로 하려고만 하면 못할 일이 없겠구나. 당장 땅에 내려가서 사람들이 쓰는 말을 뒤섞어 놓아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해야겠다." 야훼께서는 사람들을 거기에서 온 땅으로 흩으셨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도시를 세우던 일을 그만두었다. 야훼께서 온 세상의 말을 거기에서 뒤섞어 놓아 사람들을 흩으셨다고 해서 그 도시의 이름을 바벨이라고 불렀다.


- 창세기 11장 1-9절 -



 이처럼, 탐욕과 오만에 빠진 바빌론 제국이 하늘에 닿을 바벨탑을 쌓았고, 이에 노한 신이 그들의 언어를 분열시켰다. 이로 인해, 바벨탑 건설에 차질이 생겨 언어가 통하지 않자 바빌론인들은 탑을 무너뜨리고 스스로 몰락했다고 알려져 있다.


대 피터르 브뤼헐의 바벨탑



이처럼 바빌론은 '화려하고 찬란했던 순간 이후의 몰락'을 의미한다.


 영화 <바빌론>에서도 화려하고 찬란했던 할리우드의 무성영화들이 몰락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또한, 무성영화라는 유행이 지나가고 소리가 들어간 유성영화가 새로 만들어지는 과도기 속에 있는 사람들(배우, 제작자 등)의 모습을 그린 영화이다.


 이와 같은 점에서 '데미언 샤젤' 감독은 제목을 <바빌론>이라고 지은 것이 아닐까.






왜 주인공은 '브래드 피트'도 아니고, '마고 로비'도 아닌, '디에고 칼바'일까?


 <바빌론>을 보지 않고, 출연진만 보게 되면 주연급 배우들로 '브래드 피트'와 '마고 로비'가 나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알 수 있는 것은 이 두 배우가 우리의 시선을 따라가는 것이 아닌, '디에고 칼바'의 시선을 따라가게 된다. <바빌론>을 보기 전까지는 완전히 처음 보는 멕시코 출신의 남자 배우를 <바빌론>에 중심에 두고, 관람객의 시선으로 설정한 것은 어떠한 이유 때문일까?


'디에고 칼바'


 감독이 생각하는 <바빌론>을 통해서 보여주고 싶은 메시지에 '할리우드에 속해 있지 않은' 사람의 시선이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브래드 피트'는 과거 할리우드의 큰 획을 그은 캐릭터('잭 콘래드')로 묘사하고 있고, '마고 로비'는 현재 할리우드의 큰 획을 긋고 싶어 하는 캐릭터('넬리 라로이')로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이와 대비되는 '디에고 칼바(매니)'는 '할리우드 밖 시선을 가지며 영화를 동경하는' 인물로 제격이기 때문에 이 배우의 시선으로 보는 이들을 이끌어갔던 것이 아닐까 싶다. 


( + '데미언 샤젤'감독은 관객이 배우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지 않은 배우가 필요했고, 이에 '디에고 칼바'를 캐스팅했다고 한다.) 






'소리가 없는' 영화에서 '소리가 있는' 영화로, 끊임없이 변해가는 시대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바빌론>은 영화에 소리가 생기기 시작한 과도기 시점(1926년~1932년)을 배경으로 잡고 있다.


 '잭 콘래드'는 무성 영화의 스타이다. 하지만, 유성 영화로 넘어가면서 자신의 인기가 점점 시들어간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떻게든 변하는 시대의 적응하려고 하지만, 시대에 따라가지 못한다. 더군다나 '잭 콘래드의 몰락'이라는 기사를 발견하고, 이에 분노하며 기사를 작성한 '엘리노어'를 찾아간다. 

MGM에 직접 방문해 '엘리노어'에게 '잭 콘래드'는 "당신은 바퀴벌레"라며 비판하지만, '엘리노어'는 "나 같은 기자들은 바퀴벌레처럼 음지에서 살아남지만, 너는 몰락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반박했다. 이에 말을 잃은 '잭 콘래드'에게 '엘리노어'는 한 마디의 위로를 건넨다.


"당신이 죽어도 당신이 나오는 영화를 재생시키는 순간, 당신은 그 안에서 몇 번이고 살아날 거예요. 50년 후에 태어날 아이들에게도 친구 같은 존재가 되겠죠."


 '엘리노어'에게 들은 말 이후, '잭 콘래드'는 많은 생각이 바뀐 것 같았다. 많은 톱스타 배우들이 '쓰레기 같은' 영화라고 비난하며 거절한 영화에 평소의 '잭 콘래드'라면 똑같이 캐스팅을 거절했겠지만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렇게 자신의 자존감을 지키려고 발버둥을 치던 '잭 콘래드'는 어떻게 생각을 바꾸게 된 것일까.


'엘리노어'와 '잭 콘래드'


 세상은 빠르게 변한다. 

그렇기에, 영원히 최고라는 위치를 지킬 수는 없다. 굳이 최고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변화하는 세상에 부딪혀 배우면서 적응해 나가야 생존할 수 있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생각들을 계속해서 바꾸는 것이 굉장히 어렵지만, 정점에 위치한 사람들은 더욱더 자신의 생각을 바꿈으로써 변하는 것들이 굉장히 많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크게 성공한 사람들이 오히려 더 자신의 것을 지키고 싶어 하는 성향을 가지게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기존의 도화지 배경이 흰색이었던 것이 파란색으로 바뀌면, 도화지에 그려진 그림의 색깔도 변화하는 도화지의 색깔에 맞춰서 변화해야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변화하는 세상을 따라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새로운 기술을 계속해서 습득하고 적용해 보고, 새롭게 나타난 문화를 겪어보고 이를 받아들이고, 앞으로는 세상이 어떻게 더 변화할지 예측해보기도 한다. 우리의 이러한 노력들이 급격하게 바뀌는 지금의 세상 속을 살아가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정신없고 난잡해 보이는 엔딩 몽타주 씬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https://www.youtube.com/watch?v=LI6TR5Wd28A

<바빌론> 엔딩 몽타주 씬 (출처 : Movieclips)


 처음 <바빌론>의 엔딩 몽타주 신을 보았을 때, 굉장히 정신이 없었다. 갑작스럽게 많은 장면들이 교차편집으로 빠르게 뒤섞인다. 심지어, <바빌론> 장면들이 빨간색 / 파란색 / 초록색으로 칠해진 장면들과 물에 퍼지는 잉크들의 향연은 눈에 굉장한 피로감을 주었다. 처음에는 그저 눈이 아프고, 감독이 어떻게 끝내야 할지 방향성을 잡지 못해 예술적인 느낌을 위해 억지로 만든 느낌이었다. 하지만, 2-3번 장면을 보게 되니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장면이었다. 


 몽타주 씬에 처음 부분에는 영화를 만드는 과정을 보여준다. 촬영을 위해서 카메라를 켜고, 찍을 위치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이렇게 찍은 영상들을 필름으로 만들어 자르고 염색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후에, 영화 역사에 중요한 사건들을 나열식으로 보여준다. 활동 사진을 알리게 된 1878년 <움직이는 말>부터 3D를 부활시킨 2009년 <아바타>까지 영화사에서 기술적인 혁신을 일으킨 수십 편의 영화들을 굉장히 짧은 컷 단위로 끊어 몽타주로 합쳐서 보여준다.


(몽타주 속 나오는 영화들을 잘 정리해 준 사이트이다.)

https://blog.naver.com/PostView.naver?blogId=ohys83&logNo=223014003326


 이후, <바빌론>에 나오는 장면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영상의 색깔을 입힐 때 사용하는 빨간색 / 파란색 / 초록색의 물감들로 도배된 <바빌론>의 장면들을 빠른 컷 편집으로 보여주고, 이를 보고 눈물을 흘리는 '매니(디에고 칼바)'의 모습을 통해 영화사의 과정들을 폭발시킨다. 곱씹어보면 볼수록, 영화 엔딩 장면 중에서 손꼽을만한 작품이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왜 마지막에 <바빌론> 장면을 넣은 것일까. 기승전결을 위해 <바빌론>의 장면으로 마무리했다고도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굳이 마지막에 넣은 이유는 현재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보았던(과거), 보고 있는(현재), 그리고 앞으로 보게 될(미래) 많은 영화들이 영화사의 측면에서 위대한 기념이 되었던 옛 작품들처럼 영화사의 연장선으로 이어나갈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 역시, 몇 십 년이 지난 세대들이 보았을 때 어떠한 생각과 감정들이 나타날지 궁금하다. 여러모로 참 어렵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싶더라도 몇 년이 지난 후, 생각날 영화라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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