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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비아 Sep 08. 2022

"우리 이만하면 잘 살아온 거야"

가족입니다만



자식 앞에서 작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 부모이던가,,


내게 자식은 사랑 ,,그 이상  달리 표현할 수 있는 단어의 한계를 느낀다

당연하다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돌이켜보면 곁에 있기에  늘 감사했고 친구였고 위로였다는 것이

맞는 말일 거다 나는 아들들의 성장을 보면서 늘 일기로 남겼고 비교하지 않으려 했고 

그저 바라만 보아도 예쁜 꽃을 보듯 행복했다


대학을 가면서 아들들은 타지로 거처를 옮겨 갔고 내 안의 작은 우울이 시작되었다

자꾸만 마음이 아리고 슬프고,, 한동안은 꽃이 피고 지는 줄도 모르게 캄캄했던 적도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내 걱정의 시작은 지끈지끈 두통과 아랫배가 사르르 아파오는 것이었다

남편과 자식만 바라보고 힘을 다 거기에 두니 그렇다며 친구들은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이젠 너도 여행 가고 친정에서 며칠 있다 오기도 하고 

남편 자식 그만 좀 떼 버려 이젠 좀 자유를 찾으라고"

너무 과하게 집중하다 보니,, 내 삶이 머물러 있을 때 느끼지 못한 외로움인가 싶기도 했다

이 녀석 둘은 친구가 1순위가 되고, 큰아들은 보아하니  얼마 전  여자 친구도 생긴 듯하다

어찌 보면 당연하고 순탄한 길이다 그렇게 되풀이하다 보면 익숙해지겠지

며칠 전 아들들이 온다고 미리 연락을 했다

일주일 전부터 청소며 장보기 음식 이불까지 세탁하고,,

남편은 무슨 손님이라도 오냐며 구시렁구시렁 도와주지 않을 거면 가만히 있으라고 말했더니

음식물쓰레기와 2층 애들 방은 본인이 하겠다면 

피식 웃는다



입맛에 맞는 반찬들을 썰고 끓이고 지지고 주방은 폭탄을 맞은 듯 처절하다

큰아들 좋아하는 열무물김치를 만들 요량으로 절여 비비고 오징어채 조림도 빨갛게 졸여두고

간장 찜닭 준비도 해두고 밑반찬을 만들었다

아이들 좋아하는 샌드위치도 즐건 마음으로  만들어 포장해 두었다 하루 종일 주방을 가로 지르며 왔다 갔다

온 몸이 흠뻑 젖는 듯 하다 그럼에도 피곤치 않다

한 때는 엄마인 내가 먹이고 입히고 책을 읽어주고  지금은 이 아이들이 내게 폰의 앱을 가르쳐 주고 맛집을 알려준다 정치를 논하며 나름의 연대의식도 생긴  녀석들,,이제 서서히 준비를 해야 하나  나이 들어간다는 것

두 아들이 무거운 가방을 소파에 던져두고 후다닥 내게 달려온다

와락 안긴 건 나다 요 녀석들 

"잘 지냈나, 아픈데 없지, 옷은 왜 이렇게 구겨졌니, 머리는 모자 써서 덥지?"

"살이 빠진 것 같네 얼굴이 왜 이렇게나 탔니?"

남편은 천천히 좀 말하라고 안부를 요란하게도 묻는다며 혀를 차는가 싶더니 본인도  좋은 듯 보인다

늘 현관에서 아이들을 기다리는 나



그러거나 말거나,, 쳇   잡았던 손을 놓지 않고 그저 바라보았다

연인도 이런 연인이 있냐며 남편은 얼른 인사를 끝내 주었으면 하는 눈치다

요기까지는 늘 좋다 며칠이 지나면 서로의 의견 차이가 좁혀지지 않아 분위기가 잠시  싸해지기도 한다



서로의 차이 다름의 차이 , 가족이지만 서로 다른 성향이라 상처를 주기도 한다

사소한 것에 작은 일 하나에 거대한 감정이 일면 

"아니 길더라도 아빠 말 끝까지 들어야지"

"아빠 우리 좀 쉬려는데 말씀이 너무 기니까 좀 짧게 하시면 좋잖아요"

"가끔씩 오니까 당연히 밀린 얘기가 많은 거지 너희가 자식이니까 그렇지 옆집 아들이면

  이렇게 얘기하겠니!"

아들이 말한다 이건 대화가 아니라고 아빠만 하시는 말씀이라고 일방적으로

"그럼 대화는 뭔데?

"그냥 편하게 밥 먹었니 안부 묻고 교훈이 아닌  아빠 친구분과 나누는 대화 있잖아요,

  무언가 교훈을 남기려고 하는 말이 아닌 일상의 대화"

'그래 그렇다 귀에 쏙 들온다'

그러면서 민망해 할 아빠를 배려 하는건지,,

  "아빠 존경합니다 아빠 같으신 분도 어디에 안 계시는  훌륭한 우리 아빠"



갑 자 기

"됐다 고마해라 때는 늦었다"

                                                 



남편은 늘 했던 말을 하고 또 하고 되돌려도 외울 만큼 눈치도 없고 정석대로 늘 가는 사람 

아들들이 보기엔 요즘 흔히들 말하는,,꼰대

                                  ENTJ

함께 하는 순간의 행복은 짧고 딱 여기까지인가,,

이야기 끝에 난 판사봉으로 마지막을 알리듯 늘 말의 마침표를 찍는다 이 또한 살아가는 이야기다

가족입니다만 


두 아들이 오물오물 ,쩝쩝 음식 씹어 먹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린다 더 달라고 그릇을 두 손으로 치켜 세운 모습도,, 반갑다 언제나 엄마 밥이 최고라며 엄치 척 해 주는 아들도 고맙다

집에 머무는 며칠 동안은 손 까딱 하지 마라, 밀린 잠도 늘어지게 자고 산책하고

내 품 안에서 흐트러져 있는 그대로 있기를,,

두 아들은 밤이 넘어서까지 별 중요치도 않은 얘기를 끝없이 나누고 있다  참 예쁜 밤 ,예쁜 아이들이다


    큰 아들 베트남 여행에서 찍은 사진(본인이 지은 사진명: 비상)


꽃이 피고 지고 눈이 내리고 녹고 바람이 거세게 불기도 하고 그렇게 아들들을 키우며 그 앞에 앉아 있는

우리 부부  인생이 뭐 있겠나 싶다

돌아서면 저무는 하루하루가 참 맛깔나게 맛있다 

여름이 서둘러 가지 않았으면,,2층 베란다에 널어 둔 가지와 고구마순을 바라본다



"우리 이만하면 잘 살아온 거야" 

늘 내게 위안이 되는 말로 사태를 진정시켜 주는 멘트,  나쁘지 않다 남편의 어수룩한 말투가 깊을 대로 깊은 여름 속으로 깊게 자리한다

음식도 가족도 내 마음에 가득하다  여름 저녁 볕이 저물어간다

담았던 마음 안에서 계절이 가고 잘 성장한 나무처럼 그늘에서 쉼도 누릴 수 있을 듯하다

향기롭게 닳도록,,


그냥 그냥 오늘은 그런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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