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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론즈실버 Jun 05. 2023

#24. 남루한 제게, 이런 기회를 주시다뇨

6월 5일까지 교보문고에는 없지만, 우리 집엔 있는 책.

내 브런치가 한창 문전성시를 이루던 때가 있었다. 볼리가 다음 메인이 걸린 덕분이었는데, 예상치도 못했기에 더욱 강력한 보람이었다. 그날은 일하다가도 짜증 난다 싶으면 (거의 한 시간에 다섯 번 이상이란 뜻이다) '지금 방문자수는 몇일까?' 하며 통계 버튼을 시도 때도 없이 눌렀다.


조회수와 라이킷 알람 사이에, 눈을 의심하게 하는 내용이 있었다.

무슨 제안.... 이요? 제게요?


사기인가?. 인스타에서 이름 모를 이가 이런 DM을 보냈다면 십중팔구 <20분 만에 이천만 원 버는 부업>이라던가, 분명 누군가를 <도용한 듯한 계정>이었기에, 눈을 가늘게 뜨고 의심했다. 그런데 웬걸? 책 리뷰어가 되어달라는 제안이었다.


15년 전, 민음사 소설 전집을 사기 위해 밤 11시에 홈쇼핑을 보며 눈 빛내던 여자의 딸로서, 이런 건 놓칠 수 없었다. 책을 주신다길래, 냉큼, 혹여나 선착순일까 봐 헐레벌떡 신청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반신반의였다.




그리고 진짜 책이 왔다!


사실, '읽어야만 하는 책'은 대학교 전공서적 이후론 정말 간만이어서, [해야 하는 일]처럼 부담스럽기도 했고 후에 독후감을 써야 한다는 게 조금은, 걱정스럽기도 했다. 영업 못해서 영업팀에서 뛰쳐나오는 나인데... 귀한 기회를 주셨는데, 이 책을, 영업할 수 있을까. 괜히 받는다 했나?


잠시 고민도 했지만, 내용이 좋다면, 이런 걱정 굳이 사서 할 필요 없을 테니, 우선은 그저 읽어 봤다.




시를 한동안 좀 멀리했다. 그 공백이 주는 여백을 기꺼이 감당할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 시집 안에서 가장 많은 건, 새로운 단어, 음률도 아닌 흰 공백이어서 덕분에 한 문장, 한 문장을 꼭꼭 씹을 수 있다.


그래서 여유가 없으면 시를 읽을 수 없다고 생각해 왔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이 책은, 셰르파 같았다. 시와 친하지 않은 사람에겐, 시와는 이렇게 친해지는 거라고 가르쳐주고,

시와 안면을 조금이라도 튼 사람들에겐, 요즘 시 한번 읽어보면 어떻겠냐고 속삭인다.


 덕분에, 나도 오래간만에 다른 시집을 잡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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