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의 새로운 시도 : 올해 계획은 술과 함께

"또 다른 길이 있다는 걸 배운 자리"

by 똥이애비

팀장이 또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원래 연초에 워크숍은 각자의 올해 계획을 작성하고 회의실을 빌려 그곳에서 한 명씩 발표를 했었다. 각자의 업무 계획을 팀장과 다른 팀원들에게 공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팀장의 피드백이 있고, 목표를 일부 수정하기도 하는 진지한 자리다. 하지만 팀장이 이번엔 좀 다르게 기획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회사 외부에 파티룸 공간을 대여해서 저녁을 먹고 술을 마시는 동시에 업무 계획을 공유하자는 계획이다. 툭 터놓고 자유롭게 업무에 대한 피드백을 나누길 바라는 의도이다. 팀장이 이 아이디어를 처음 공표했을 때 팀원들의 반응은 아주 극명하게 갈렸다. 나를 포함한 긍정의 반응을 보인 팀원들은 다음과 같은 의견이었다.


"새로운 시도라 재미있을 것 같아요!"

"어차피 신년회도 해야 하니까 묶어서 한 번에 끝낼 수 있으니 더 좋네요."

"일 얘기를 술 마시며 허심탄회하게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요."

"딱딱하게 진행되지 않고, 자유롭고 부드러운 분위기로 업무 계획을 발표할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러나 부정적 반응을 보인 팀원들의 의견은 이와 매우 상반된 것이었다.


"꼭 술을 마시며 일 얘기를 해야 하나요? 커피 마시면서도 충분히 가능할 것 같은데요."

"회식은 회식대로 하고, 일 얘기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올해 업무 계획을 발표하는 중요한 자리인데, 너무 흐지부지 되지 않을까요?"

"그냥 술판만 벌어질 것 같아요..."


이렇게 반반으로 의견이 갈린다면 팀장은 부정적 의견을 감싸 안으며 새로운 시도를 밀고 나갈 열정적 인물이고, 결국 그렇게 되었다. 심지어 다음 날 부담이 되지 않도록 금요일로 날짜를 잡았다. 술을 마실 수 있는 회사 근처 파티룸을 예약했고, 각자 먹고 싶은 술을 한 병씩 들고 오도록 했다. 신년워크숍 기념 현수막을 제작했고, 팀원들에게 올해의 팀 슬로건을 모집했다. 생각보다 규모가 커진 신년 회식자리였다.



워크숍 당일. 오후 5시까지 모든 업무를 끝내고 예약해 둔 근처 파티룸으로 이동했다. 먼저 와 있던 운영 위원들은 현수막을 걸어놓고 술잔과 배달음식을 준비해 두고 있었다. 중앙엔 빔프로젝트를 통해 워크숍 일정이 띄워져 있었다. 구석에 기타와 피아노와 마이크 등 악기들이 있는 것을 보았을 때 음악 합주를 하는 공간으로도 활용이 가능한 듯싶었다. 모두가 모이자 각자가 가져온 술에 대해 한 명씩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운 시간 중 하나였는데, 각자가 가져온 술이 너무나 다양했다. 원래는 한 병씩만 들고 오는 것으로 했는데, 나 같은 경우는 작년에 좋은 고과를 받아 기념으로 세 병의 술을 준비했다.


"개인적으로 축하할 일도 있고 팀도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은 것 같아서, 저는 세 병의 술을 준비했습니다. 하나는 축하주로 가장 인기 있는 샴페인 중 하나인 '모엣 샹동'이고, 그다음은 레드 와인 중에서 가장 잘 팔리는 '1865'입니다. 마지막으로는 술자리에서 진하게 마무리할 수 있는 위스키인 '조니워커 더블블랙'입니다. 오늘 맘껏 취해 보시죠!"


다른 이들도 각각의 술을 한 병씩 준비했는데, 예거밤을 만들어 마실 수 있는 '예거 마이스터'를 가져온 이도 있었고, 산토리 하이볼을 마실 수 있는 '산토리 위스키'를 가져온 이도 있었다. 급하게 편의점에서 가장 비싼 샴페인을 사 온 이도 있었고, 장인어른이 선물해 준 귀한 '도라지 담금주'를 가져온 이도 있었다. 끝까지 이 행사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한 명은 무것도 가져오지 않았다. 술은 아니더라도 자신이 마실 음료조차 없었다. 팀장은 아무렇지 않은 듯 넘겼지만, 사회생활에서 본인만 그렇게 자기 의사를 끝내 고집하는 것이 그리 보기 좋진 않았다. 어쨌든 나머지 인원들은 샴페인으로 첫 잔을 채우고 건배를 하며, 올해도 팀의 성과를 위해 열심히 달려보자는 의지를 다졌다. 일단 저녁 시간이라 배달된 음식을 먹으며 배를 채웠는데 치킨, 피자, 족발, 회 등 다양한 음식들이 차려져 있었고, 술도 워낙 다양하게 많아서 푸짐하게 먹고 마실 수 있었다.



먹고 즐기는 사이 팀장이 앞에 나서서 마이크를 쥐며 행사를 진행했다. 먼저 팀원들이 작성한 올해의 팀 슬로건 후보를 소개하며, 각 팀원들의 투표를 통해 팀의 대표 슬로건을 정하기로 했다. 나도 다섯 가지 정도 슬로건을 지원했는데, ChatGPT에게 여섯 번 정도 거듭 물어본 결과물들이었다. 원들은 각각 마음에 드는 후보에 세 개씩 투표하도록 했고, 결국 내가 제안한 슬로건 중 하나가 선정되었다. 상품은 스타벅스 5만 원 상품권이었다. 나의 소감은 다음과 같았다.


"ChatGPT가 차려준 밥상에 숟가락만 얹었을 뿐입니다. Chat GPT에게 모든 영광을 돌리고, 저는 이 상품권으로 커피를 잘 사 마시도록 하겠습니다."


누군가는 심혈을 기울여 고민했는데, Chat GPT에게 졌다며 억울해하기도 했다. 이게 바로 미래에 벌어질 일의 축소판이라며 그를 놀리는 이도 있었다.



이제 막내부터 한 명씩 나와서 본인의 업무 계획을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5분 발표, 5분 질의응답이었지만, 주어진 시간에서 자유롭게 업무 얘기들이 오갔다. 술에 거나하게 취한 우리들은 농담 반, 진담 반의 경계를 오가며 일 얘기에도 웃고 떠들 수 있었다. 마치 대학교 MT에서 연애 얘기를 나누듯 흥미로운 관심과 과도한 참견 같은 조언들이 함께 어우러졌다. 팀장은 거듭 이런 행사에 모두들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잘 따라와 줘서 고맙다는 말을 했다. 내 차례가 왔을 때도 후배들과 워낙 허물없이 지내던 터라 별로 질문이 없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내가 맡은 일에 많은 관심을 주었고 질문이 쏟아졌다.


"올해도 굉장히 많은 일을 하시게 될 텐데, 이 모든 업무를 잘 마무리할 수 있으신가요?"

"논문을 올해 두 편이나 내신다고 계획되어 있는데, 세부 주제가 뭔가요?"

"아직도 대학원에 가고 싶은 꿈이 있나요?"

"함께 일하는 후임과의 관계는 좋다고 생각하시나요?"


술에 취해 횡설수설했지만, 최대한 정성 들여 답하고자 노력했다. 내가 지나가면서 말하던 것들도 이들은 기억해 두었다가 내가 정말로 해내는지를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말의 무게를 조금 더 감당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올해 내가 얘기한 계획들이 성과로 달성될 수 있도록 나름대로 역할을 다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팀장이 올해의 고과체계를 설명해 주었고 공통업무들을 분배하였다. 팀의 업무 방향성을 포괄적으로 제시하였으며, 팀원들의 날카로운 질문들에 답해야 했다. 모든 행사는 이렇게 마무리되었고, 팀원들은 자연스레 파티룸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술을 나눠 마시고 무리 지어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노래방 기계까지 있어서 신나게 노래를 부르는 이들도 있었다. 다음날이 주말이라 일정이 있거나, 술을 마시지 않는 인원들은 일찍이 자리를 떴다. 나는 무척이나 즐기고 있었지만, 이들에겐 이 자리가 곤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팀장이 새로운 시도에 열정적이고, 심지어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니 말이다. 최대한 팀장의 의도에 맞춰주는 것이 사회생활일 것이다. 누군가는 이게 아첨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고과권자인 팀장의 눈에 드는 것은 결코 나에게 나쁠 것이 없다. 특히나 내가 따르고 인정하는 팀장일수록 더욱 그렇다. 이번 기획도 그의 손에서 시작된 새로운 도전이었고,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고 있었으며, 우리 팀원들은 일을 추진하는 또 다른 길이 있다는 걸 자연스레 배우고 있었다. 팀장은 술에 취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조 과장이 팀장 되면 힘들겠다. 내가 이렇게 만들어 놨으니까 그 이상을 보여줘야 할거 아냐. 하하하."


이 말에는 다양한 의미들이 담겨 있었고, 기분 좋으면서도 부담이 느껴져 양가의 감정이 동시에 드는 그런 무시무시한 말이었다. 과연 내가 팀장이 되면, 지금의 팀장 이상으로 팀을 이끌어갈 수 있을까. 벌써 내가 엉겁결에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모습에 술에 취해 제정신이 아니라고 여겼다.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 허튼 고민을 지우고, 다시금 지금 이 자리를 최대한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그게 지금 할 수 있는 나의 최선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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