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똥이애비 May 21. 2024

경력직 면접을 보았다.

"경력이지만 신입처럼!"

  어느 날 회사 후배에게서 연락이 왔다.


"과장님, 경쟁사에서 과장님 하고 동일한 직무 공고 올라왔는데 지원해 보세요."


최근 친했던 후배가 이직하고, 회사도 점점 기울어지는 것처럼 느껴져서 공허함과 상실감이 공존하고 있던 내겐 뭔가 탈출구처럼 보였다.


'그래, 한번 해보자.'


급하게 경력을 정리하고 이력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만으로 11년을 일한 내용들을 정리하려니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리고 생각보다 내가 많은 일을 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회사가 날 개처럼 부려먹었었구나...'


이력서에는 실패한 기록보단 성공한 기록들을 작성했다. 성과 위주로 작성하여 완성된 이력서는 나름 보기 좋고 그럴듯했다. 마지막으로 자기소개서 문항을 채워 넣었는데, 입사 동기를 묻는 질문으로 500자 내로 작성해야만 했다. 사실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도 그리 나쁘지는 않은데, 산업 전망보다는 회사 운영 정책 상 지금처럼 유지되기는 힘들어 보였다. 특히나 내가 자리하고 있는 직무는 점차 입지가 좁아지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다른 경쟁사로의 이직까지도 고려하게 된 것인데, 이 상황을 사실대로 작성하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자소서가 아닌 자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내 힘으로만 경쟁사를 찬양하는 허구의 내용들을 작성하기가 어려워 Chat GPT에게 도움을 구했다. 경쟁사 정보와 내 이력, 그리고 지원하는 직무를 미리 입력한 뒤 500자 내외로 요약해 달라고 하니 아주 깔끔하게 풀어 내주었다. 그대로 복사, 붙여 넣기를 하여 어색한 문장만 일부 수정했다. 이로써 모든 지원서 작성이 완료되었고, 최종 제출 버튼을 눌렀다.



  일주일이 지나고 문자가 왔다. 서류에 합격했으니 온라인으로 인성검사를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주말에 아내에게 부탁해서 아이를 잠시 돌봐달라고 한 뒤, 혼자만의 시간을 냈다. 메일로 온 인성검사 링크를 클릭하여 안내를 확인한 뒤 검사를 시작했다. 20-30분이면 끝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문항이 엄청 많았다. 게다가 비슷한 질문의 연속들이어서 내가 이전에 뭘 체크했는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냥 솔직한 나의 생각들로 빠르게 찍고 넘어갔다. 시간제한도 있어서 깊게 고민할 시간조차 없긴 했었다. 이렇게 했는데도 전체 문항을 체크하는데 거의 1시간 반 정도가 소요되었고, 내 등 뒤로는 땀이 흐르고 있었다. 생각보다 집중해서 하다 보니 검사가 끝나고 피로도가 확 밀려왔다. 잠시 소파에 누워 생각했다.


'여기서 떨어지면, 내가 인성이 부족하다는 말인가?'


신입 공채를 준비했을 때 이후로 십여 년 만에 인성검사를 치르고 나니 꽤나 피곤했다. 나이 먹어서 이직 준비하는 것도 쉽지는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마도 40대가 되면 이직은  더 어려워질 것이었고, 나에겐 이번이 거의 마지막 이직 기회가 될 것이라 어렴풋이 생각되었다.


  거의 일주일이 좀 더 지나고, 인성검사 합격 문자를 받았다. 동시에 면접 일정을 알려주었는데, 단 한 번의 면접으로 최종 합격을 판가름할 예정이었다. 날짜도 지정되어서 왔는데, 변경이 불가능하니 일정에 맞추라는 식으로 안내되어 있었다. 경력직 면접을 보는 사람들은 대부분 직장을 다니고 있어서 보통은 일정 조정을 해주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잘 나가는 기업이라 그런지 그런 조율을 해주지 않는 것이었다. 아쉬운 건 지원자들이니, 회사가 통보한 일정을 어떻게든 맞춰야만 했다. 회사에는 어린이집 행사가 있다고 둘러대고 면접일에 맞춰 연차를 내었다. 아까운 휴가 하나가 면접으로 날아가 아쉬운 마음도 있었지만, 최종 합격만 한다면 최고의 투자가 될 거라 여겼다.


  면접일까지 대략 열흘 정도가 남아있었고, 회사 일과 육아를 하는 틈틈이 제출한 이력서를 다시 한번 점검하고 예상 질문들에 대한 답변을 나름대로 구색을 갖춰 준비했다. 히나 가장 중요한 '퇴직 사유'에 대해서는 성장의 관점으로 풀어가고자 했다. 경력직도 1분 자기소개가 있다고 해서 십여 년의 경력을 짧게 요약하였고, 나머지 항목들은 그동안 내가 일해 온 것들에서 이뤄낸 성과 위주로 준비했다. 지원할 회사의 홈페이지와 최신 뉴스들을 읽으며 회사 동향을 파악해 놓고, 블라인드 앱을 통해 지원할 회사의 현직자가 느끼는 회사 생활들을 모니터링했다. 어딜 가나 그렇듯 현직자가 하는 회사 불만들은 거의 비슷했다. 아마도 한국에 있는 모든 회사들의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면접일이 되었다. 9시 반에 면접 일정이 잡혀있기 때문에 거의 출근하는 시간과 동일한 시간에 일어나서 준비했다. 정장은 입고 오지 말라고 해서 내가 가진 옷 중 가장 깔끔한 갈색 셔츠를 입었다. 차를 타고 면접 장소로 갔는데 대략 50분 정도 걸렸다. 이 정도면 다닐만하다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회사에 주차하면 안 된다고 해서 역 근처 공영주차장에 차를 주차해 놓고 면접 보는 회사까지 걸어갔다. 면접 보는 지원자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고 생각되었다. 출근 시간이라 직원들이 회사로 바삐 걸어가고 있었고, 나도 그 틈에 끼어 마치 이 회사 구성원인 양 빠르게 걸어갔다.


  면접 대기장소에는 나밖에 없었다. 아마도 내가 1번이고 다른 경쟁 인원들은 시간에 맞춰서 차례로 올 것이었다. 인사팀의 안내를 받아 들어간 면접 장소에는 3명의 면접관이 있었다. 회사 짬밥을 근거로 해서 봤을 때 가장 왼쪽의 젊은 사람은 인사팀 담당자 일 것이고, 중간은 임원, 오른쪽 끝은 실무 팀장일 것으로 유추되었다. 가장 중요한 인물은 중간에 앉아 있는 임원일테고, 그에게 가장 잘 보여야 할 것이었다. 맞은편 의자에 앉아 면접관들을 당당히 바라보았다. 곧이어 준비된 1분 자기소개를 시작으로 면접 전형이 펼쳐졌다. 역시나 질문들은 내가 예상했던 범위에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주로 경력 위주의 질문들이어서 쉽게 답할 수 있었고, 살짝 내 성과를 녹여 과시하고자 노력했다. 결국은 자기 PR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답변을 내가 성과 낸 이력 위주로 유도했다. 이 외에도 예상치 못한 질문들이 있었다.


"희망연봉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여 주셨는데, 어느 정도 정보를 기반으로 작성된 것인가요?"

"지금 지원한 직무가 아니라, 다른 직무에 배정되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야근이나 주말 출근도 가능하신가요?"

"퇴근을 하면 주로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시나요?"

"공인 영어 성적이 없는데, 본인이 생각하는 영어 실력은 어느 정도 수준인가요?"

"앞으로의 커리어를 어떤 식으로 발전시킬 예정이신가요?"


미리 준비된 답변은 아니었지만 평소 생각하고 있었던 내용들을 풀어서 답변하였고, 무난하게 넘어가는 듯한 분위기였다. 거의 한 시간이 가까운 시간 동안 질문과 답변의 공방전이 벌어졌고, 나름대로 잘 방어하며 마무리되었다고 생각했다.


  면접을 마치고 대기실에 있는 짐을 챙기려고 들어가니 두 명의 지원자가 앉아 있었다. 나의 경쟁 상대였다. 과연 이들을 꺾고 내가 최종 합격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준비했고 성실히 전형에 임했으니 후회는 없다. 이젠 운에 모든 걸 맡겨보는 수밖에. 물론 이후에도 연봉 협상 과정과 최종 계약서 싸인이 남았지만, 이때부터는 지원자인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이므로 최종 합격까지만 일단 기대하며 기다려 보기로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팀장님은 왜 그렇게까지 하시는 거예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