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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똥이애비 Jun 05. 2024

정말 다들 열심히 살고 있구나

"생존을 위한 발악"

  1년 여만에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났다. 사실 이것도 한 친구의 결혼식에서 만난 이후로 처음 본 것이니, 일부러 시간을 내어 만나게 된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점점 나이를 먹어갈수록 시간은 더욱 빠르게 흐른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가 체감할 수 있었다. 나를 포함해서 모이게 된 네 명의 친구는 모두 가정이 있다. 나와 한 친구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이 한 명 있고, 나머지 두 명의 친구는 아직 아이가 없다. 가정이 있으니 주말에 만나기는 더욱 어려운 실정이라, 우린 평일 저녁에 시간을 맞춰 보았다. 모두들 퇴근을 하고 중간쯤 모일 수 있는 장소는 역시나 강남이었다. 어릴 땐 다들 한 동네에 살았는데, 지금은 서로 뿔뿔이 흩어져 있다. 다행인 건 모두가 공대를 졸업하였지만 지방으로 완전히 터를 옮기지 않고, 수도권에 모여 있다는 사실이다.



  네 명의 친구들이 다 모였을 때 우리는 삼겹살에 소주를 곁들였다. 그리고 한 명씩 근황을 풀어놓고 있었다. 가장 최근에 결혼한 친구의 근황이 가장 관심이 높았다. 그 친구는 1년 여 보낸 신혼생활의 소감을 결혼 선배들인 우리에게 하나씩 꺼내놓고 있었다. 간략히 요약하면 친구의 소감은 이러했다.


"좋긴 좋은데, 사소한 것 하나까지 계속 부딪쳐."


생각해 보니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결혼 8년 차인 우리 부부가 신혼 때 겪어온 과정 중 하나였다. 서로 비슷하다고 만났는데, 실제 살아보니 각자의 30여 년의 삶끼리 끊임없이 부딪치는 상황 말이다. 그 뾰족한 톱니바퀴를 서로 한쪽씩 맞추어 가고 있지만 그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한 30년을 같이 살면 톱니바퀴가 모두 맞물려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을까. 나는 친구에게 그렇게 싸우면서 맞춰가는 거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실제로 그러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친구들도 결혼 선배이지만 딱히 뾰족한 수는 없었다. 그저 내 답변에 공감할 뿐이었다.



  이렇게 각자 개인 삶의 근황들을 이야기하다가 자연스레 회사 이야기가 오갔다. 이제 회사 다닌 지 십 년이 넘은 과장들이기에 회사 얘기들은 익숙했다. 사람 일하는 게 거기서 거기이기 때문이다. 단지 회사를 일찍 때려치우고 나온 한 친구의 근황은 여전히 회사를 다니고 있는 세 명의 친구와는 달랐다. 이 친구는 도저히 회사 체질이 아니라고 판단하여, 일찍이 술장사를 했다. 몇 년 전 그 친구 술집에서 모임도 하고 했었는데, 최근에 장사가 잘 안 되어 정리했다는 소식을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그러고 나서는 기계 가공하는 일을 배우기 위해 학원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 갑자기 술 장사하다가 기계 가공 일을 하기로 했다는 다이내믹한 이 친구의 얘기들은 우리들의 궁금증을 더욱 자아냈다. 몇 가지 알아낸 사실은 정부에서 취업 지원금이 나와 학원을 거의 공짜로 다니고 있다는 것과 이 일을 배우고 나서 장인어른의 회사로 들어갈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의 처갓집이 사업을 하고 있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생각보다 여유로운 삶을 살고 있는 듯했다. 그 친구가 이렇게 회사를 때려치우고 여러 가지 도전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든든한 후원자가 있었기 때문이리라.


  이런 후원자가 없는 나 포함 나머지 세 명의 친구는 열심히 회사를 다녀야만 했다. 회사를 그만두는 순간 생계의 위협이 즉각적으로 찾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두들 회사만 믿고 있지는 않은 듯했다. 얘기를 들어보니 회사 일 외에도 여러 가지 부수적인 활동들을 병행하고 있었다. 한 친구는 몇 년간 모아 왔던 SK하이닉스 주식을 결혼 자금으로 쓰기 위해 모두 팔았던 걸 이제 와서 후회하고 있었는데, 최근 새롭게 모아갈 종목들을 찾고 있었다. 다른 친구는 전기차 시대가 한 풀 꺾이고 AI 시대가 부흥하고 있으니 AI 관련주들을 모아보라고 조언했지만, 이미 많이 올라버린 주식들이라 선뜻 투자하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그래도 부동산 투자보단 주식 투자에 열을 올리고 있는 걸 보니, 부동산 시장이 한 풀 꺾이긴 한 모양이었다. 몇 년 전에 모였을 땐 부동산 열풍으로 집 얘기밖에 하지 않았는데, 이젠 누군가가 집을 사고 판 얘기들은 쏙 들어가 자취를 감추었다.


  다른 한 친구는 최근 AI를 활용하여 유튜브 쇼츠를 시작했다가 생각보다 늘지 않는 조회수와 구독자 수를 보고는 접었다고 했다. 주변에서 유튜브 쇼츠나 블로그, 인스타와 같은 SNS 활동으로 사람들을 모아 돈을 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너도 나도 뛰어들지만, 생각보다 반응이 금방 오지 않아 직장 다니면서 끈기 있게 지속하기는 어려운 모양이었다. 또한 직장 출퇴근 길에는 책을 읽고 있는데 자기 계발과 경제 서적을 주로 보고 있다고 했다. 고등학교 때는 책 한 권 읽지 않던 애가 한 달에 두, 세 권씩 읽고 있다는 소식에 내심 놀랐다. 심지어는 주말에 짬을 내어 러닝 대회도 참석한다고 했다. 기록에 욕심이 나서 틈만 나면 밖으로 나와 뛰는 연습을 하고 있고, 조금씩 기록을 단축하는  것에 재미를 느끼고 있다고 했다.



  정말 다들 열심히 살고 있었다. 물론 나도 이들과 다르지 않다. 주식 열풍에 뛰어들었고, 꾸준히 책도 읽고 있으며, 유튜브도 했었고, 일주일에 두, 세 번 정도 헬스장에 다니고 있다. 직장인이라면 공감하겠지만, 회사를 다니고 가정을 꾸리면서 여러 가지 활동들은 한다는 게 쉽지는 않다. 그럼에도 우리 모두가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친구들은 왜 이렇게까지 많은 부분에 관심을 두고 있을까. 심화된 능력주의 경쟁 사회 속에서 개인들이 회사만 다녀서는 경쟁에 뒤쳐질까 두려운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사회 구조적으로 회사만 다녀서는 생계를 유지하기가 힘들어서 일 수도 있다. 특히나 아이가 있는 외벌이 가정에서 물려받은 게 없는 가장이 가장 취약할 것이다. 이러니 맞벌이가 당연시되고, 맞벌이로 여유가 없으니 아이를 더 이상 낳지  않게 되는 사회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사회는 회사를 다니는 직장인의 입맛에 맞게 쉬이 변화하지 못하고, 이러한 느린 사회 변화 속에서 개인들은 생존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우리는 이런 씁쓸함을 한 잔의 소주로 달래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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