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여덟의 나이에도 난 아직까지 방황 중이다. 내가 진짜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모르겠으니 말이다. 아니, 좋아하는 일은 대강 알고 있지만, 그게 지금의 생계를 곧바로 유지시켜 줄지를 모르겠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말한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그 일을 대중들이 좋아해 주면 성공하는 것이라고. 나는 어렸을 때부터 게임을 좋아했다. 게임을 하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게다가 현실보다는 가상에서 훨씬 더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가슴 뛰게 만들었다. 하지만 자꾸만 현실의 삶과 부딪쳤다. 부모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제 그만 현실로 나오라고. 난 게임을 좋아했지만 말 잘 듣는 학생이었기에... 중간에 그만두었고 다시 현실로 돌아갔다.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일 한 가지를 잃었다고 생각했다. 최근에 다시 게임을 해봤다. 최근 핸드폰 앱으로 출시된 게임 중 가장 인기가 높은 <나 혼자만 레벨업>이라는 게임이었다. 그러나 며칠간 하다가 흥미가 떨어져서 그만두었다. 서른여덟의 나에겐 현실이 더 게임 같아서 진짜 게임은 이젠 더 이상 재미가 없었다.
다시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생각해 보았다. 아 맞다. 지금까지도 꾸준히 하고 있는 '운동'이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태권도를 5년 간 다니며 체력을 길렀고, 학교에서 체육대회를 하면 난 항상 반 대표 중 한 명이었다. 이어달리기, 농구, 핸드볼, 축구 등 종목에 상관없이 출전했었다. 대학교에서는 2년간 테니스 동아리 활동을 했었고, 군대에서 헬스를 배워 전역을 하고도 지금까지 10년이 넘게 헬스를 했다. 운동은 정말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하는 좋아하는 일 중 하나였다. 그런데 이 운동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취미 이상의 무언가를 보여줄 수 있을까. 직업으로 하려면 운동선수가 될 생각을 했어야 했지만, 그만큼의 실력이 있는 건 아니었다. 트레이너가 될 수도 있었겠지만, 관련된 자격증을 준비할 여력이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나온 대학 전공을 살려 취업을 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때 당시에는 그게 제일 안정적인 길이라 여겼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 따위는 사치에 불과했다.
'그래,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물론 좋아하는 일로 돈도 많이 벌면 좋겠지만, 좋아했던 일이 일로 하면 싫어질 수도 있는 거고... 막상 좋아하는 일을 했지만, 돈벌이가 안될 수도 있는 거잖아? 그냥 현실적으로 내 전공에 맞는 일을 찾아서 그 일을 직업으로 삼는 게 가장 효율적일 거야.'
그렇게 내 일을 찾았고, 지금까지 10년이 넘게 일하고 있다. 나는 재료공학을 전공했다. 왜 재료공학을 전공했냐고? 원래는 화학공학과를 가고 싶었지만 인기가 너무 높았다. 대학교 1학년 때 딴 학점으로 갈 수 있는 곳 중 화학공학과와 가장 비슷하지만 인기가 별로 없는 전공이 재료공학과였다. 여기서 과의 인기란 취업이 잘 되는 학과였다. 그만큼 재료공학과를 나오면 취업이 순탄하지만은 않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겨우 전공 학점을 취득한 뒤 관련 전공으로 겨우 취업에 성공했다. 나는 그저 학사만 졸업해서 공장에서 일하는 재료 엔지니어가 되고자 했지만, 과분하게도 어쩌다 보니 연구소에서 일하는 재료 연구원이 되었다.
그렇게 전공에 맞는 일을 찾아 지금까지도 일하고 있다. 그런데 무슨 불만이 있냐고? 글쎄... 불만이라기보다는 매너리즘에 빠졌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욕심?이라고 해야 할까.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큰 불만은 없었고, 스스로 계속 파고들 수 있는 몰입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10년 넘게 그렇게 할 수는 없지 않나. 일은 일대로 하면서 눈을 잠시 돌려본 것이라고 봐야겠다. 아니, 동기는 확실히 있었다. 회사를 이렇게 계속 다녀도 경제적 자유는커녕 내 집 한 채 사기도 버거워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래, 좀 더 '노력'해보자. 그렇게 시도하다 보면 혹시 나에게도 '성공'이라는 게 눈앞에 펼쳐질지도 모르지.'
그렇게 난 회사를 다니면서 내가 좋아할 만한 일들을 찾아 헤맸고, 그 일을 부업으로 삼고자 했다. 부업을 통해 수익을 계속 올리면 남들보다 더 빠르게 경제적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거란 생각이었다.
'좋아. 일단 성공한 사람들이 말했던 독서와 글쓰기를 해보자. 나도 성공할 거니까... 분야는 역시나 '자기 계발'이다!'
그렇게 한동안 열심히 쓰고 읽었다. 그러다 보니 좋은 기회로 내 이름으로 된 책도 내었다. 작고 소중한 부수입이 생겼다. 이런 식으로만 가면 되겠거니 생각했지만, 좀 더 욕심을 내보기로 했다.
'읽고 쓰기와 더불어서 말하기를 해보는 거야. 맞아, 생각해 보니까 목소리 좋단 소리도 자주 들었잖아? 책 낸 수익금으로 성우 학원을 끊어보자.'
그렇게 몇 달간 성우학원을 다녔다. 그리고는 유튜브를 시작했다. 처음엔 흥미롭게 시작했지만, 원하는 만큼의 피드백이 없자 점차 지치기 시작했다. 특히나 이것저것 벌리고만 있는 꼴을 가만히 지켜보던 아내가 정곡을 찔렀다.
"언제까지 방황할 거야? 이젠 정신 좀 차리지?"
'아, 맞아. 난 서른여덟이고 아내와 다섯 살 난 딸이 있는 12년 차 직장인이지? 그동안 난 뭘 하고 있었던 거야...'
그렇다. 나의 본업은 재료 연구원이자, 한 집안의 가장이자 아빠였다. 이것에만 몰입하기에도 나의 하루는 꽉 채워져 있었다. 여기서 무언가 샛길을 만들면 만들수록 몰입은 흐트러지고, 심하면 탈이 날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니, 탈이 났었다. 스트레스로 인한 급성 위염 증세가 돌도 씹어먹던 내게 찾아왔었던 것이다. 지금도 사실 이 증세가 여전히 날 괴롭히고 있다.
'그래, 정리하자.'
성우학원과 유튜브를 그만두었다. 내겐 가장 사치스러운 활동이었기 때문이고, 막상 해보니 그저 난 이따금 목소리 좋다는 소리를 듣는 일반인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글쓰기 활동도 아직 마무리 짓지 못한 연재들이 눈에 아른거렸지만, 잠시 중단하기로 했다. 그리고 가끔씩 생각이 떠오르는 글들만 끄적였다. 이 외에 독서와 운동은 포기할 수 없었다. 독서는 마음의 양식이었고, 운동은 몸의 양식이었다. 본업이 흐트러지지 않을 수준으로 독서와 운동은 병행하기로 했다.
돌고 돌아 결국 다시 난 본업으로 왔다. 이 과정에 대략 2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그 시간을 허비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좋은 경험이었고, 좋은 깨달음을 얻었다. 지금 직업으로 하고 있는 일은 결국 내가 선택한 일이기도 하고, 세상이 내게 준 소명이기도 한 일이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치명적인 문제점이 발견되지 않는다면, 충실히 임하여 내 일에서 나름의 성취를 찾는 것이 가장 확실한 전략이다. 스스로 그런 성공을 이루었다고 생각한 뒤에 눈을 돌려도 늦지 않을 것이다. 그때는 내가 무엇을 하든 문제 될 게 없다. 내 본업을 완성해 놓았기 때문이다. 여러분도 현재 그리고 있는 그림이 무엇이든 그 그림이 완성될 때까지 몰입해 보는 게 어떨까. 그 그림이 완성된 뒤에 충분히 감상하고, 다른 그림을 시도해 보면 좀 더 여유로운 작업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