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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똥이애비 Jun 14. 2024

자기 PR의 시대에 겸손은 없다.

"개구리가 밤마다 우는 이유"

  인간의 본능엔 권력욕과 인정욕구가 있다. 이 두 욕구는 인간이 모여 살면서 좀 더 사회적으로 원활한 관계를 유지하도록 돕는다. 그 관계 형성이 아마도 생존에 더욱 유리했을 테니 말이다. 이 생존 본능에 가까운 욕구들이 현재는 '자기 PR'이라는 명목으로 거침없이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 과거 우리나라엔 겸손이 미덕이던 시절이 있었다. 아무래도 유교 사상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지만, 누군가가 자신을 조금이라도 칭찬해 주면 "아니에요."라는 말이 먼저 나왔던 시대다. 인이 이룬 성과를 다른 이들에게 돌리며, 조용하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그런 모습이 잦았다.


  지금은 겸손의 모습이 사라진 지 오래다. 누구나 SNS를 통해 자신이 쓴 소비를 과시하고, 스스로를 하나의 상품으로 만들기 위해 애쓴다. 비로소 자기 PR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여기서 PR은 Public Relations의 약자로, 간단히 풀이하면 우리말로 홍보라는 뜻이 있다. 즉, 자기 PR은 자기 홍보와 같고, 누가 대신해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자기 스스로를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최근 길거리 공연 행사를 본 적이 있다. 지역 축제 비슷한 것이었는데, 일반인들이 무대에 설 수 있는 자리가 있었다. 깜짝 놀란 것은 유치원생 되는 어린아이부터 슬하에 그런 아이가 있을법한 아주머니까지 모두 뉴진스의 <Hype Boy>란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들을 핸드폰으로 촬영하고 있었다. 이 광경을 지커 보고 있던 나는 세대를 초월하는 '걸스 힙합' 문화에 한 번 놀랐고, 무대에 선 참가자들이 매력을 뽐내며 즐기는 모습에 적극적인 자기 PR을 몸소 느끼며 두 번 놀랐다.


  회사에서도 자기 PR은 두드러진다. 아무래도 경쟁이 심한 영역일수록 살아남기 위한 전략으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회사에는 다양한 자기 PR 현장을 목격할 수 있는데, 표적으로 성과 뽐내기가 있다. 개인이 맡은 일들은 각자가 다르지만, 그 일들에서 나온 성과를 내세우는 일은 동일하다. 어떻게든 포장해서 최대한 성과를 부풀리고, 이를 윗사람에게 인정받으면 승진가도를 달릴 수 있는 것이다. 자기 PR에선 과정이 그리 중요치 않다. 결과물만으로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건 회사에서는 최종학력을 내세우는데, 이는 석사나 박사학위가 있는 사람들이 사실상 학사 때보다 더 상위 학교에서 학위를 따게 되는 구조와 맞물린다. 하지만 학회나 연구모임에 참석하게 되면 학부를 어디 나왔는지를 따진다. 애초에 학창 시절에서부터 쌓아온 학업 능력을 평가하는 것이다.


  회사에서는 일로도 자기 PR을 하지만, 일 외적인 부분에서도 자기 PR이 이어진다. 운동은 꼭 골프와 테니스와 같이 고급 스포츠로 인식되는 종목만 거론된다. 걷기 운동이 건강 상 가장 유익함에도 상대적으로 이런 걷기나 등산과 같은 활동들은 잘 언급되지 않는다. 직장인들이 작디작은 월급에도 고급 스포츠에 목을 매는 이유는 조금이라도 높으신 분들과 친분을 쌓기 위한 전략이다. 결국 일은 사람을 통해 만들어지고, 돈은 사람을 통해 벌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회사에서는 본인이 골프와 테니스를 배우고 있다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알린다. 기회를 포착하기 위해서이다. 이 외에도 자신이 술을 얼마나 잘 마시는지도 자기 PR 포인트 중 하나다. 이는 본인이 술자리에서 상사의 비위를 얼마나 잘 맞출 수 있는지, 아직까지 대한민국에선 술로 사업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기에 그러한 사업 기회를 획득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 볼 수 있다. 회사에서 다양한 PR 활동들을 보고 있노라면, 경쟁에 뒤처지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는 개인의 노력들이 안쓰러울 정도이다.



  자기 PR은 겸손과는 상반되는 것으로 보인다. 겸손의 미덕을 내세우기에는 사회가 너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겸손은 뒤늦게 남들에 의해 '발견'됨으로써 그 빛을 발하는데, 사회가 이를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겸손은 때로 자기의 부족한 부분을 내세우기도 하고, 자신의 성과를 깎아내기도 한다. 물론 그 내공은 유지가 되고 있겠지만 말이다. 마치 꺼멓게 익어버린 바나나처럼 겉으로 보기엔 먹고 싶지 않게 생겼는데, 실제로 먹어보면 더 단 맛이 나는 것과 같다. 하지만 사회는 꺼멓게 익어버린 바나나를 믹서에 넣고 갈아버린다. 통째로 먹으면 왠지 속이 불편할 것만 같은 본능적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요즘엔 이러한 겸손들이 사회에 잘 보이지 않는다. 겸손해봤자 본인만 손해라는 걸 인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나 경쟁이 치열한 사회 시스템일수록 겸손의 힘은 발휘되지 못한다. 너무나 많은 경쟁자가 자기 PR을 통해 한번이라도 기회를 잡으려고 노력 중인데, 경쟁 사회에서는 위로 올라갈수록 기회가 더 적어진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겸손을 내세우는 사람은 굳이 경쟁에 참여하고 싶지 않거나, 애초에 경쟁에 뒤처지지 않을 다른 무기를 손에 쥐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결국 자기 PR의 시대에서는 겸손은 찾아볼 수가 없고, 무턱대고 겸손의 미덕을 강요할 수도 없다. 자기 PR을 얼마나 잘했는지에 따라 기회가 찾아오는 세상에서 우린 개구리의 울음소리를 시끄럽다고 탓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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