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이 넓은 사람, 얼굴이 넓은 사람

by 김인수 스테파노


살다 보면 그런 사람 있다. 어디를 가도 아는 사람이 있고, 누구를 이야기하든 “그 사람, 내가 잘 아는 사람인데”로 시작하는 사람. 이런 이를 통상 ‘발이 넓다’고 한다. 발이 넓다는 건, 부지런히 걸어온 사람이라고 읽어야 할까. 신발 문수가 큰 것을 의미하지 않으니. 모임이면 모임, 행사면 행사. 참석 명단에는 꼭 그 이름이 있고, 한두 번 자리를 빠지면 “그날은 어디 갔었어?” 하는 말이 따라붙는 존재. 그런 사람은 결혼식 참석, 장례식 조문, 또는 점심 약속을 위해 계단을 두 칸씩 뛰어오르는 사람으로 여긴다.

일본에선 같은 부류의 사람을 이렇게 말한단다. “얼굴이 넓은 사람(顔が広い人)”

참, 묘하다. 한국에서는 발로 관계를 만들고, 바다 건너 사는 그들은, 어쩌면 조상이 같을지도 모르는 그들은 얼굴로 관계를 이야기한다. 우리의 ‘발’은 관계의 확장이고, 그들의 ‘얼굴’은 관계의 깊이인 걸까.

얼굴이 넓은 사람은, 많이 만난 사람보다 오래 기억되는 사람이지 않을까 싶다. 그의 얼굴엔 수많은 인연의 흔적이 남아 있을 거다. 웃던 얼굴, 미안했던 눈빛, 다시 만나자던 약속의 미소. 그러한 표정들이 포토샵 사진 작업할 때 만들어진 층층의 레이어가 한 장으로 합쳐진 듯하다.

나는 어땠나. 명함 한 장 건네면 인맥이라 하고, 단톡방에 함께 있으면 ‘연결되어 있다’ 착각했다. 조직의 이름으로 쌓은 관계가 체면과 의무의 굴레로 변해있었다. 다행스럽게 퇴직한 뒤엔 그러함이 덜어졌다.

내 손에 들고 있던 명암은, 그로 인한 관계는 빠르게 변했다. 인간적인 온도는 뜨거운 국이 식듯 빠르게 식었다. ‘좋아요’ 한 번이면 안부를 대신하고, 읽지 않은 메시지 하나에 요동치는 마음을 닫아야 했다. 애써 무시했다. 너도 나도.

요즘은 마음이 넓은 사람이 그립다. 바늘 하나 꽂을 곳이 없는 만큼 아주 비좁은 내 가슴이라서 더 그러하다.

마음이 넓은 사람이라면 부지런하지 않아도 좋다. 한 사람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사람이라면 여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 비난보다 이해가 먼저 나오는 사람. 그런 이의 곁에서 편해지고 싶다. (문제는 한곳에서 쉬지 못하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돌아다녀야 하는 습성을 갖고 있다는 거.)

한때, 사람을 많이 알아야 세상 사는 데 도움이 된다고 믿었다. 그래서 약속은 지켜야 한다는 철칙을 신봉하며 한번 한 약속은 미루지 않았고, 모임이 있으면 늘 참석했다. 하지만 그 많은 만남 중 마음이 남은 만남은 몇 되지 않았다.

이제는 달리 생각한다. 발을 좁히고, 얼굴을 편안히 하고, 대신 마음을 넓히려 한다.

먼저 찾아가기보다 찾아올 때까지 기다려주는 일을 하려는데 온몸이 근질거려 견디기가 조금 벅차다.

그럼에도 말보다 표정을, 표정보다 눈빛을 읽는 일. 그 안에서 사람의 습성을, 그리고 온기를 배우고 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발자국에 기대어 걷고,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리며 하루를 보낸다. 신영복 교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있는 한 구절, 앞선 한 획을 뒤이은 한 획이 보완하듯 기대고 기대게 한다. 발의 넓이도, 얼굴의 폭도 더 이상 무게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따뜻한 마음으로 관계를 품는 일이 우선일 나이니.

갖고 있던 명함집을 버린 지 오래다. 핸드폰에 저장된 이들 중에 연락 없이도 잘 살 친구들을 제외하고 명함을 주고받았던 사람들의 연락처도 지운 지 오래다. 그래서 이름도 생각나지 않는 사람을 가끔 인스타에서 친구 추천으로 뜰 때 당혹스럽다. 알고리즘 참 무섭다는 생각에 소름 끼친다. 퇴직 후 그새 몇은 새롭게 전화번호를 저장했고 또 몇은 사라지는 리듬을 갖고 있다. 그런 중에 가끔 이름을 떠올리면 피식 웃거나, 씨익 웃을 수 있는 존재로 남아있어 마음이 따뜻해진다. 이것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발보다, 얼굴보다, 마음이 넓은 사람이 기억 속에 있고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을 잃지 않았으니. 요즘 익어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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