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내 마음과 상대의 거리

by 김인수 스테파노


선물에는 두 가지 마음이 있다. 하나는 건네는 사람의 마음이요, 다른 하나는 받는 사람의 마음이다. 오랜 시간 나는 ‘내가 감동한 것’을 나누는 데만 집중했다. 건네는 사람 마음에 제한된 상태로. 내가 느낀 그 울림이 상대도 느끼길 바랐다. 분명 느낄 거라 믿으며.


처음 선물로 건넨 것은 정채봉 작가의 《그대 뒷모습》이었다. 성인 동화라 부담 없이 읽을 수 있고, 감성적 결도 깊었다. 성인을 위한 동화, 성인이 되어가는 미성숙한 어른도 읽을 수 있는 동화. 반갑고 고마웠다.

이 동화를 읽는 이도 내가 느낀 감성을 건지길 희망했다. 즐거워할꺼야, 행복해할꺼야. 그리고 고마워할꺼야.

하지만 정작 돌아온 것은 정중한 미소였다. 짧은 “고맙습니다” 한마디뿐. 내 기대와는 조금 달랐지만, 크게 실망하지 않았다.


한참 뒤에는 신영복 선생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으로 책을 바꿔 건넸다. 여름날 체온 36.5도가 뜨거운 난로 같다는 비유, 잘못 그은 한 획이 다른 획으로 바로 잡힐 수 있다는 글. 생활이 달랐던 저자의 사람 냄새와 삶의 철학을 느꼈다. 그래서 선물했다. 상대도 이러한 문장으로 울림이 있기를. 그러나 결과는 모른다.


책 이후에 음악 CD 《내가 만든 꽃다발》도 선물했다. 김세원 성우의 낭송과 클래식이 어우러진 앨범이었다. 특히나 끊어질 듯 이어지는 피아노 선율은 성우의 낭송 시와 연결되어 꽤나 오랫동안 여운을 남겼고, 다수의 사람들에게 절판된 이 CD를 구입해 건네게 했다. 그러나 이 CD를 받는 이들의 감동은 나와 다른 짧은 감상평이었다. ‘내가 느낀 감동이 전달될 거야’라는 믿음은, 생각보다 쉽게 어긋났다.


돌이켜보면, 나는 오랫동안 선물을 내 관점에서만 판단했다. ‘좋았던 것’이 곧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상대의 반응은 늘 달랐다. 사람마다 느끼는 울림의 크기와 방식이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 참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결국 선물은 내 마음을 전하는 행위이면서 동시에 상대와의 간격을 확인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상대가 피곤하다면 좋은 수면 안대가, 배가 고프다면 따뜻한 빵 한 봉지가, 때로는 책 열 권보다 더 큰 울림이 될 수도 있다. 선물은 ‘내 감동의 복제’가 아니라, 상대의 필요와 자리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가끔 나의 마음에 꽂힌 책을 건넬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마음은 쉽게 바뀌지 않고, 내 감동을 나누고 싶은 고집 또한 쉽게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이제는, 상대의 반응을 조금 더 살피며 건네려 한다. 작은 배려와 관찰이 선물을 진짜로 선물답게 만드는 방법이라는 걸 깨달았으므로.


선물은 결국 내 느낌만 생각해서는 부족하다. 상대의 걸음을 살피고, 그가 설자리를 이해할 때 비로소, 선물은 그 의미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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