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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방인 Nov 08. 2024

뉴욕 안 흑백 요리사

맨해튼 안의 주방이란 전쟁터 

내가 1년간 지낸 곳은 맨해튼에 위치한 프랑스 레스토랑이었다. 일하는 직원이 50명 남짓으로 작지 않은 규모였다. 이곳에는 뉴욕에서 나고 자란 이부터, 미국 시골에서 꿈을 찾고자 뉴욕을 찾아온 친구, 멕시코, 우크라이나등 다양한 에서 온 사람들, 나처럼 학생 신분으로 사람들 까지 각지, 각국에서 모인 사람들로 한 팀을 꾸리고 있다. 


처음 입사할 당시 난 레스토랑에서 유일한 동양인이었다. 게다가 고된 업무 특성상 남자 직원이 월등히 많아 요리 파티엔 나 포함 고작 2명의 여자 직원이 있었다. 그마저도 나는 오후 출근, 다른 여자 직원은 오전 출근이라 인사만 나누는 게 고작이었다. 처음엔 어색한 환경에서 낯가림이 심했다. 처음 직장에, 첫 동료에, 영어를 써야 하는 환경에 놓여 있으니 누가 말만 걸어도 얼굴이 빨갛게 홍당무가 되기 일쑤였다. 한국에서도 적지 않게 영어를 써왔지만 현지의 영어는 거기에 1.5배속을 해놓듯 자막 없는 영어 영화를 보는 것처럼 따라가기 급급 했다. '제발 누가 여기 스크립트 좀 뛰어줘!' 속으로 되뇌며 알아듣지 못할 땐 사람 좋은 웃음으로 허허 웃으며 상황을 넘어가곤 했다. 


초반엔 가드망제를 담당하며 cold dish와 soup을 담당했었다. 내 몸통의 반만 한 통에 가득 담긴 수프가 있었는데. 오전 오후 타임을 교대하며 새로운 수프를 다시 옮겨야 했다. 엄청난 크기의 통에 담긴 액체의 무게를 감당한 적 있는가? 큰 통을 들겠다고 기합을 넣고 들어서다 허리가 삐끗한 적이 여러 번이다. 통을 옮겨 담을 땐 후드득 떨어지는 수프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옷에 잔뜩 튀기기는 비일비재였다. 제대로 허리가 삔 날엔 집에서 벽에 손을 기대고 샤워를 하며 '운동을 더 해야 해..'하고 다짐했다. 헬스장에 가하는 운동 덕인지, 수프로 단련된 팔 근육 덕인지 시간이 갈수록 수월히 들어 올렸다. 공짜 헬스장 인 레스토랑!


하루에 많으면 디너 예약자 수만 200명 이상에 날씨 좋은 날이면 워크인으로 오는 손님까지 더해져 감당하느라 주방에선 그야말로 매일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주방 안 쩌렁쩌렁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Ordering One stake and salmon!" "Yes Chef!!!" 바로 더 큰 소리가 뒤따라 온다. 주방 안은 하루종일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셰프가 앞에서 들어온 주문을 외치면 동료들은 확인했다는 의미로 더 크게 외친다. 메뉴 확인을 하기 위해서도 있지만 쉽게 지치기 쉬운 주방 안에서 파이팅 넘치게 소리치며 함께 힘을 내잔 뜻도 담겨있다. 


스테이크와 햄버거 패티


한여름날엔 에어컨은 장식이었다. 뜨거운 불 안에선 에어컨과 선풍기 모두 고철덩이에 불과했다. 뜨거운 불 앞에서 계속 스테이크를 구워내고, 생선을 구우며 튄 기름으로 팔은 화상 자국으로 범벅이 되었다. 모자를 쓴 채 땀은 계속 흘러 여름철 이마엔 항상 땀띠가 자리 잡아 있었다. 이미 팔에 성한 곳에 없는 동료들은 처음 화상을 입었을 때 연고를 챙겨주며 이제 시작이라며 웃곤 했다. 시간이 지나선 나도 셀프 타투를 했다며 장난스레 팔에 화상 자국을 내보이곤 했다.  


뉴욕뿐만 아니라 어느 곳이든 주방 일은 쉽진 않다. 하지만 타지에서 부족한 언어를 극복해 가며 일하기는 더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이겨내며 즐겁게 일할 수 있던 건 동료들의 도움이 컸다. 다정한 카리스마를 가진 헤드셰프는 가끔 의기투합을 하고 시작하자며 주문받기 전 다 같이 팔 굽혀 펴기를 하곤 했다. 불 앞에서 일할만큼 시뻘게진 얼굴에 웃으며 그날 시작할 에너지를 얻었다. 한 명은 항상 장난기 어린 웃음으로 활력을 주던 친구가 있었다. 지칠 만도 한 상황에서 갑자기 엉뚱한 춤을 추거나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어 분위기를 풀어주곤 했다. 이 밖에도 직원들이 더워 유독 지친 날 슬쩍 아이스크림을  가져다주며 열 좀 식히라던 페이스트리 팀과 서빙팀, 묵묵히 옆 사람 일을 도와주던 동료들은 뉴욕에서 만난 값진 인연들이었다. 




한 번은 셰프가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가져와 한 명씩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카메라 앞에 서니 왠지 쑥스러워 멋쩍게 서 있는 내 모습과, 다들 자신만의 개성을 담은 포즈로 한 장씩 찍어나갔다. 셰프는 한 벽면에 우리의 사진을 붙여놓더니 즐거운 듯 웃어 보였다. 또 크리스마스나 핼러윈 같은 날엔 머리띠를 구해와 다 같이 쓰고 요리하곤 했다. 요리사는 기념일을 즐기지 못한다. 웃고 떠드는 즐거운 날을 위해 사람들을 위한 요리를 주방 안에서 만든다. 이런 우리를 위해 주방 안에서 작은 기념일을 우리만의 방식으로 보내곤 했다. 이럴 때도 어김없이 사진을 찍었고 남긴 사진을 보면서 즐거웠던 추억을 떠올리고 활력을 얻어나갔다. 맨해튼 안에 한 프랑스 레스토랑에서의 시간은 나를 더 단단하고 넓은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함께 주방 안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각자 나라로, 다른 직장으로 흩어진 지금이지만 마음속에 같은 추억은 언제나 함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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