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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포 Jan 13. 2023

가지 않은 길

나는, 이동희

 어제와 똑같은 하루. 오늘과 똑같을 내일. 한 번쯤은 들어 봤을만한, 또 한 번쯤은 느꼈을만한 이야기입니다. 일어나서 학교에 가고, 학교에 가서 수업을 듣고, 친구들과 밥을 먹고, 다시 수업을 듣고, 과제를 하다가 집에 오면 자고 어제처럼 일어나고. 이런 일과들이 아마 우리들의 '정형화된' 하루일겁니다. 그러나 쳇바퀴 속에서도 매일 달라지는 건 있습니다. 컨디션. 컨디션이라고 표현하면 정확할까요? 예를 들면 "숙취가 너무 심하니 뛰지 말아야겠다. 오늘은 허리가 아프니 무거운 건 들지 말아야겠다." 같은 가벼운 변화들을 느낍니다. 저도 매일 한 가지를 확인합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시하고 지나갈만한 자그마한 변화지만요. 저는 일어나서 한 발짝 한 발짝 걸으며 오른쪽 발목을 느낍니다.

 제 오른발에는 큰 화상이 있습니다. 어렸을 때, 아마 4살 때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날은 평범한 밤이었습니다. 아버지는 타 지역에서 일을 하셨기에 집에 안 계셨고, 일을 마치고 오신 어머니께서 시험 기간인 누나의 공부를 봐주고 있었습니다. 저녁 시간이 조금 지났을 무렵, 저는 허기를 느꼈습니다. 마침 식탁에 식은 라면이 남아있어서 꼬물꼬물 의자 위로 올라가 라면으로 허기를 달랬습니다. 식탁 의자 옆의 작은 기계는 삼을 달이고 있었습니다. 저는 의자에서 내려오면서 그 기계에 발을 퐁당 담그고 말았습니다. 삼을 달이던 물은, 다리도 달인 물이 되었고, 저는 펑! 하고 눈물을 쏟았습니다.

 어두운 밤. 어쩔 줄 모르던 엄마. 급히 달려온 외할머니. 차에 대야를 싣고, 대야에는 얼음 물을 담고, 발을 얼음 물에 담그고, 저는 울고. 그렇게 저희 셋은 새까만 밤을 별빛과 헤드 라이터 불빛에 의존한 채 많은 병원을 돌아다녔습니다. 많은 병원이라는 단어에서 유추하실 수 있듯, 시골에는 저를 받아줄 수 있는 곳이 많이 없었습니다. 엄마는 더 당황했고, 할머니는 더 놀랐고, 저는 더 세차게 울고 다시 차는 달리고. 그러기를 반복하다 겨우 한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안 그래도 하얀 피부지만, 몇 달간 감아야 했던 붕대는 이질적으로 하얬고, 붕대를 풀고 난 다리는 붉었습니다.

 붕대를 풀고 난 후에도, 붉은 흉터들은 발목을 이리저리 움직이지 못하게 했습니다. 두꺼워진 살은 일반적인 가동 범위만큼 못 움직이도록 피부를 당겼거든요. 흉터는 발목만 잡은 게 아녔습니다. 저는 흉터가 부끄러워 이리저리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친구들이 나가서 놀자 해도 괜찮아 나는 안이 좋아.', '모두가 뛰놀던 어린이집 체육시간에도 괜찮아요 저는 앉아있는 게 편해요.' 등의 일상들이 반복되다 보니 자연스레 실내에서 할 수 있는 일들에 흥미가 생겼습니다. 또 재미를 느낄수록 실외 활동과는 멀어져 갔습니다. 그렇게 저는 정적인 삶을 즐기는 사람으로 자랐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가슴에 새겨진 흉터인 줄 알았던 상처도 점점 사라져가며 몇 가지 사실을 알았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저보다, 저는 바깥을 좋아하며,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에 두근거렸고, 변화를 기대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사소하지만 커다란 깨달음은 저에게 새로운 고민거리를 안겨 주었습니다."내가 싫어했던 것은, 내가 싫어한 게 아니라, 싫어한다고 착각을 했던 게 아닐까?" "만약 화상을 입지 않았더라면, 나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들의 답이 궁금해졌습니다. 다치지 않은 가능 세계의 이동희는 체육인이 되어있을 수도 있고, 이런저런 다양한 가능성을 그릴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공상입니다. 저조차 모르는 저의 모습이니까요. 하지만 만약 누군가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간다면, 과거를 바꿀 거야?"라고 묻는다면, 아마 '아니'라고 답할 것 같습니다.

 물론, 화상 때문에 저 뿐만이 아니라 제 가족들도 많이 힘들어했고, 지금도 일어나서 오른쪽 발목의 감각으로 걸음을 조절합니다. 괜찮은 날에는 거침없이, 비실비실 자칫 계단에서 넘어질 것 같은 날에는 조심스레 한 발짝 한 발짝하고 걸음걸이를 매일 바꿉니다. 그러나 결국 지금의 저를 이루는 건 화상 자국이 있는 저입니다. 어렸을 때의, 또 큰 사건이기에 저를 구성하는 대부분의 요소가 화상으로부터 파생되었습니다. 약간 테세우스의 배 같네요. 이동희라는 커다란 이름으로 제가 카테고리 되어있다 해도, 저 또한 하나의 개념으로서 이동희를 꾸며줍니다. 그래서 아마 화상이 없는 이동희는 저와 이름만 같을 뿐 완전히 다른 사람일 것 같습니다. 물론 조금의 반골 기질도 있습니다. 커다란 흉터가 없는 삶은 대다수의 이들의 보편적 이야기지만, 저는 조금 엇나간 이야기들을 사랑하니까요. 굳이 따지자면 가지 않는 길이 어울리는 겪지 않는 화상입니다. 숲속의 가지 못했던 길로 가슴에 남기는 게 나의 삶을 더 완전하게 만들어 줄 겁니다.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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