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우 Dec 25. 2022

노래를 잘하면..

어렸을 적부터 노래를 사랑했지만 처음으로 노래방에 가본 건 고1 때였다. 노래방 입문이 늦었던 이유는 노래방에 입장하는 순간부터 느끼는 혼자만의 쑥스러움을 이겨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내 지인 중 누구도 믿지 않을 말이지만 아무튼 그땐 무척 내성적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노래방 경험이 없을 때도 난 누구보다 노래를 잘할 자신이 있었다. 마치 동료들 몰래 매일 훈련을 하는 축구선수가 어느 날 사람들에게 엄청난 실력을 보여주는 드라마 같은 장면을 머릿속으로 그렸었다. 언젠가 친구들과 함께 노래방에 가는 날, 친구들의 성화에 못이기는 척 겨우 한 곡을 고른 다음 그 노랠 누구보다 잘 부를 계획이었다.


사실 이런 자신감에는 나름의 근거도 있었다. 가수 중 열에 아홉은 립싱크를 하던 20세기 말에 나는 바이브레이션까지 할 줄 아는 보기 드문 학생이었다. 당시만 해도 ‘바이브레이션’은 ‘고음’과 함께 동네 가수의 필수 요건이었다. 그래서인지 내가 노래를 마치면 그거 어떻게 하냐는 친구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공부’는 못해도 ‘축구’랑 ‘노래’를 잘하면 뭔가 있어 보였던 청소년 시기에 난 어느 정도 그게 되는 사람이었다. 노래방에 가면 언제나 친구들의 기분 좋은 관심도 따랐던 것 같다.     


노래를 잘해서 가장 좋은 점은 누가 뭐래도 이성 친구의 관심이었다. 물론 노래가 연애에 크게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엇비슷한 못난이들 사이에서 나를 돋보이게 만들 수 있는 건 노래뿐이었다.     

결과적으로 내 연애는 노래 덕을 본 적이 없다. 다만 좋아했던 새잎이라는 아이가 노래방에 가자고 했을 때 속으로 “드디어 그 날인가!” 생각하며 설레던 기억이 있다. 손이 저릴 정도로 마이크를 꽉 쥐고 정준일의 <말꼬리>를 불렀다. 지금까지도 그 때 만큼 정성스레 노래를 부른 적이 없다. 하지만 좋아하는 사람에게 내 정성을 들키는 건 촌스럽다는 믿음으로 과하지 않게 노래했다. 그 짧은 순간에도 노래에 관한 부분에서만큼은 균형 감각을 갖춘 나였다.


그렇게 첫 곡이 끝났고, 그날은 종일 새잎이가 불러달라는 곡만 불렀다. 행복한 노래였다. 당시 새잎이가 몰래 녹음해 준 노래들을 들어보면 중간중간 나눴던 대화가 들리는데 새삼 내가 약간 자연스러운 뚝딱이었나 싶다. 뚝.딱...뚝..딱.     


노래방에 간지도 어언 2년이 지났다. 코로나 이후로 노래방에 갈 수도, 같이 갈 사람도 없었다. 요즘 방역상황이 좋아지고 있으니 예전보다 덜 쑥스러운 버전의 <말꼬리>를 더 열심히 불러보고 싶다.      


“비는 오고- 너는 가려 하고- 내 마음 눅눅하게 잠기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