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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희영기행작가 Jun 14. 2024

[영남알프스 전설따라]함화산 음곡폭포와 동미등 처녀무덤

부부는 아이 얻고 청춘남녀는 인연 만나는 '꽃을 품은 산'


<하양지 마을에서 바라본 함화산 경관. 양쪽 산 능선 사이 중간 움푹들어간 곳에 음곡폭포가 있다>

함화산(1107m)은 경상남도 밀양시 산내면 삼양리에 있는 산으로 일명 석동산(石洞山)이라 부르며, 운문산 정상 서쪽에 있는 산을 일컫는다. 기암과 절벽으로 이루어진 함화산은 북쪽에는 운문산, 동쪽에는 가지산, 서쪽에는 억산과 마주하면서 항상 수량이 풍부한 상운암계곡과 석골계곡을 품고 있어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정상에 서면 남쪽 건너편 빛덤이(경암·景岩)계곡에는 삼복더위에 얼음이 얼고 8월 초순부터 얼음이 녹기 시작하는 천연기념물 제224호인 얼음골이 있다. 가을철이면 천황산의 억새밭이 황금빛으로 물결치듯 출렁이고, 맞은편 우뚝 솟은 정승봉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다가온다. 또한 동쪽 가지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이 산 어디엔가 살고있는 거대한 용 한 마리가 가지산 정상을 향해 마치 용트림하듯 솟아오른다. 봄에는 진달래, 철쭉, 부드러운 산나물과 이름 모를 꽃들이 만발하고, 산 아래에는 당도가 높고 과즙이 풍부하며, 향기가 짙은 전국 최대 사과나무 단지라 할 수 있는 얼음골 사과가 탐스럽게 가을을 향해 자라고 있다.  

<함화산 음곡폭포-상단>

# 신혼부부에 아들·딸 성별 알려주는 '음곡폭포'


이 산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함화산(含花山)은 함(含)-머금을 함, 품을 함, 화(花)-꽃 화, 산(山)-뫼산이다. 즉 꽃을 품은 산이라는 뜻이다. 산이 높아 꽃봉오리가 피기 전에 시들고 만다해서 화망산(花忘山)이라 부르기도 한다. 산 남쪽 700m 지점에는 음곡폭포가 있다. 이 폭포는 흔히 볼 수 있는 폭포들과는 달리 바위 속으로 폭포가 형성돼 물줄기가 흐르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이 바위를 '보지방구'라 부른다. 듣기에 다소 민망스럽게 들리지만, 여성의 음부를 가리키는 이름으로 출산과 관련된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함화산 정상표지석>

이 마을에는 지금으로부터 약 180~200년 전에 청송 사씨(靑松 史氏)가 최초로 입향한 마을로 오래전부터 아들을 선호하는 풍습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었다고 한다. 당시 이 마을에 혼인을 한 신혼부부들은 폭포가 흐르는 바위를 찾아가 돌을 던진다는 것이다. 혼례를 치른 뒤 신랑 집 어른들은 신혼부부가 초야(初夜)를 치른 날 아침나절에  신랑과 신부를 마을 뒤 산(마을에서 약 900m거리임)에 올려보내 폭포가 흐르는 구멍 속으로 각자 돌 한 개씩을 던져 보라고 권했다고 한다. 돌을 던져 돌이 굴려 내려오면 딸을 낳고, 내려오지 아니하면 아들을 낳는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초야를 치른 신혼부부들은 열 달 후에 아들, 딸의 성별을 구분해 주는 영험한 바위라며 이 바위를 신비하게 여겨왔다고 한다. 

 이 마을에 거주하고 있는 한 어르신도 신혼부부 시절 전설대로 처음엔 돌을 던졌으나 돌이 굴러 내려와서 첫아이는 딸을 얻었고, 두 번째 돌은 굴러 내려오지 않아 아들을 얻었다고 한다.     

 음곡폭포는 이름 없는 무명폭포였고 마을사람들에 의해 그냥 바위 이름만 구전돼 내려오고 있었다. 근래 운문산을 오르는 일부 산꾼들에 의해 하양폭포로 불리고 있다. 하양마을 뒤편에 있으니 하양폭포로 불러도 되겠으나 이 마을 풍습을 고려해 음곡폭포로 부르는 것이 좋을 것 같다.(진희영 저'영남알프스폭포기행' 96쪽 수록) 음곡폭포는 2단 폭포인데 하단은 약 10m높이의 직폭(수직으로 떨어지는 폭포)이고, 상단은 20m 높이의 직폭과 와폭(비스듬하게 누운 형태로 떨어지는 폭포) 을 겸한 폭포로 평상시에는 굴 속에서 폭포수가 떨어지므로 장마철을 제외하곤 물줄기를 제대로 볼 수 없다. 여름철에는 폭포 주변에 무성한 풀이며, 이끼들이 자생하고 있어 신비로움을 더해준다. 


 마을 사람들은 여기에서 내려오는 물을 식수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인지는 몰라도 여성들은 음곡폭포에서 내려오는 물을 먹어 기가 세지면서 대체로 오래 장수를 하지만, 남정네들은 도리어 기가 빠져 수명이 짧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를 늘어놓기도 한다. 

<처녀무덤이 있는 동미등 경관- 소나무아래 볼록 솟아오른 곳이 처녀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 천생연분 점지해주는 '동미등 처녀무덤'


동미동처녀 무덤은 밀양 남명초등하교 서북방향 약 700m지점에 있다. 아주 오랜 옛날 어느 해 가을쯤에 얼음골 일대는 열흘에 걸쳐 계속 내린 비로 사방천지가 물바다가 되었다고 한다. 홍수는 열흘 동안 물이 불어나고 또 열흘 동안은 물이 빠지는데, 물이 빠지는 열흘이 될 때쯤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던 총각이 새경을 받아들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밤이 되자 물이 빠진 논두렁을 걸어 가는데, 논두렁 위에 아름다운 처녀가 누워 있었다. 처녀가 있는 곳으로 가까이 다가가자 처녀는 놀래는 기색도 없이 "날도 저물고 하니 오늘 여기서 저와 함께 자고 내일 아침에 물이 빠지면 가세요"라고 했다. 총각은 처녀와 함께 잠자리를 했다. 그리고 꿈을 꾸었는데,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처녀가 자신을 산꼭대기에 양지바른 곳에 묻어 주면 배필이 생길 것이라고 했다. 아차 싶어 총각이 일어나 보니 고약한 냄새가 나는 송장이 자기 옆에 누워 있었던 것이었다. 평상시에도 남들보다 담력이 컸던 총각은 처녀의 말대로 시신을 거둬 동미등 양지바른 곳에 묻어 주고 제사도 지내주었다. 세월은 흘러 그런 일이 있은 뒤 총각은 참한 처녀와 혼사가 이뤄져 장가를 가게 됐고, 아들, 딸을 여럿 낳고, 유복하게 잘 살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후 이 무덤에 가서 남몰래 치성을 드리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장가 못 간 총각이 처녀 무덤에 벌초를 하면 틀림없이 장가를 가게 되었고, 아이를 못 낳는 여자는 아이를 갖게 됐다고 한다. 그리하여 임자 없는 무덤에는 나이 많은 총각들이 서로 벌초를 하려고 벼르는 바람에 먼저 벌초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 5~6월 찾아오는 '홀딱벗고새' 소리

이야기를 채록하고 있는 동안 하양지 마을 어귀 어디선가 홀딱벗고새가 울어댄다. 홀딱벗고새는 공부는 하지 않고 게으름만 피우다가 세상을 떠난 스님들이 환생했다는 전설의 새로 전해져 내려온다. 


 '홀딱벗고' '홀딱벗고'

 이렇게 운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모심기 시작할 때쯤(5월~6월초)이 산 저 산을 오가며 울어대는 데 그 소리가 마치 '홀딱 벗고~ 홀딱 벗고~ '라고 들리기 때문입니다. 듣는 이에 따라 다소 다른 소리로 들리기도 하지만 '홀딱벗고' '홀딱벗고' 하고 울어대니 다소 에로틱한 소리로 들리기도 하다. 또한 이 마을에 사는 한 할머니는 '지집죽고~ 자식죽고~ 나혼자서~ 우째살꼬'라고 울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참선 중인 스님 귀엔 '머리 깎고, 빡빡 깎고'로 들린다. 


 홀딱벗고새는 검은등뻐꾸기(Indian Cuckoo)의 울음소리다. 이 새는 좀처럼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다. 우는 소리는 많이 듣지만, 모습을 보기 힘들다. 필자 역시 가지에 앉은 먼 모습과 나는 모습만 보았지 제대로 관찰하거나 사진을 찍은 적은 없다. 


# 빛덤이 : 경암(景岩) 얼음골 동북쪽에 있는 바위덤을 말한다. 바위면의 빛이 희게 되면 가뭄이 들고 검게 되면 비가 내린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 새경 

머슴살이 고용의 대가로 12월 동지를 전후로 일년치 봉급을 한꺼번에 받는데 이를 새경이라 한다. 대체로 힘이 세고 근면 성실한 큰 머슴(상일꾼)은 1달에 쌀 1가마로 환산해 측정하고, 풍년 때에는 연봉으로 쌀 13가마를 받았고, 작은 머슴은 쌀 8가마니를 받았다고 한다. 당시 논 1마지기(200평) 가격이 쌀 10가마니 가격이었다고 하니 머슴들이 새경으로 받는 가치가 논 한마지기였던 셈이다.



※ 이야기는 필자가 10여년전 밀양시 산내면 하양지에 3대째 살고 있는 김씨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글 임. 

※ 참고문헌 밀양지(密陽誌)  

진희영 산악인·기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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