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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희영기행작가 Jun 24. 2024

[영남알프스 전설따라] 대왕암 공원의 대왕암과 용굴

고기잡이 배 괴롭히던 고약한 용 마고할멈이 가둬버린 곳

남목 마골산 사는 할멈이 어부들의 원성을 듣고 돌과 흙으로 동굴 막아 해결 / 지금도 그 이야기 증명하듯 남쪽 해안선이 밀려들어가 

< 용굴의 모습 >

대왕암공원은 울산광역시 동구 일산 해수욕장과 인접한 곳에 있다. 바다를 배경으로 기암절벽과 수령이 백년을 훌쩍 넘긴 1만 5,000그루의 해송들이 하늘을 향해 솟아있고, 봄철이면 동백꽃과 벚꽃, 꽃무릇이 무리를 지어 피어나고, 곧이어 보라색 향연이 펼쳐지는 맥문동과 수국이 뒤를 잇는다.


    "그대들의 눈에 비치는 사물들이 순간마다 새롭기를, 현자란 바라보는 모든 것에 경탄하는 사람이다."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대왕암 공원은 바라보는 모든 것이 다 경탄하고 싶을 정도로 그 경관이 뛰어나다. 대왕암을 비롯한 용굴, 거북바위, 탕건바위, 할미바위 등 기암괴석들과 해안선을 따라 펼쳐지는 풍경은 자연의 신비함에 경탄할 따름이다. 


# 호국룡 됐다는 문무왕비의 전설


대왕암공원은 약 93만㎡ 넓이로 조선시대에는 말을 키우던 목장으로 쓰였다. 공원 내에는 1906년에 러·일전쟁 이후 일본이 설치한 울기등대가 있으며, 1962년 5월 14일부터 울기공원이라고 부르다가, 2004년 2월 24일 대왕암공원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울기(蔚崎)라는 말은 울산의 끝이라는 일본식 말이다. 뒤늦게라도 바꾼 것이 다행이다 싶다. 공원 내 명소로는 대왕암과 용굴, 바다 위를 걷는 출렁다리일 것이다. 이 밖에도 맨발걷기 산책로와 어린이 테마파크(대왕별 아이누리), 오토캠핑장이 있다. 또한 공원 동쪽 해안선을 따라 방어진 슬도(瑟島, 파도가 바위구멍을 스치면서 신비한 거문고 소리를 내는 곳)까지 이어지는 해안 산책로는 파도 소리를 벗삼아 걸을 수 있는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춘 해안 산책로라고 할 수 있다. 


# 승천하던 용 떨어졌다는 대왕바위


대왕암은 공원 동쪽 맨 끝에 바다로 나가 있으며 공원과는 다리(대왕교)로 연결돼 있다. 대왕암은 대왕바위가 줄어서 댕바위라 부르기도 하며 용이 승천(昇天)하다가 떨어졌다 해 용추암(龍墜巖)이라고도 부른다. 이곳은 문무왕의 왕비(자의왕후)가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는 용이 되겠다 해 바위섬 아래에 묻혔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문무왕은 재위 21년(681년)에 세상을 떠났는데, 죽은 뒤 화장을 해 동해에 묻으면 용이 돼 동해로 침입하는 왜구를 막겠다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문무왕은 늘 생전에 지의법사(智義法師)에게 "나는 세간의 영화를 싫어한 지 오래이며 죽은 후에는 나라를 지키는 용이 돼 불법을 받들고 나라를 지키겠소"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런 전차로 왕비도 임금을 따라 동해의 어느 바위섬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했을 것으로 추측되며, 그곳이 아마 신라의 변방인 댕바위산(大王巖山-옛날 울산의 끝인 등대가 있는 송림일대를 대양산(大洋山)라고 함)일 것으로 이 지역 사람들에 의해 조심스럽게 구전되고 있다. 이는 삼국을 통일한 신라의 문무왕이 묻힌 경주 봉길리 해안의 대왕암에서 파생돼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 대왕암과 대왕교 > 

# 남북으로 물길 뚫린 천연 동굴 용굴


대왕암공원 내 용굴은 본래 남북으로 물길이 뚫려 있는 천연 동굴로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아주 오랜 옛날 동굴 안에는 청룡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이 용은 성질이 사납고 게을러서 자신은 절대 먹이를 사냥하지 않고, 동굴 앞을 지나가는 배를 낚아채 그 고기를 빼앗아 배를 채웠다고 전해진다. 어부들의 피해는 날로 늘어갔고, 하물며 배를 뒤집기도 해 사람을 해치기도 했다. 어부들은 못된 용을 달래기 위해 용왕제를 지내며 닭, 돼지 등을 재물로 바치며 달래 보려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결국 못된 용의 원성은 마을에서 마을로 퍼져나가게 됐다. 그러던 어느 날 남목의 마골산에 사는 마귀할멈(마고(麻姑)를 일컫는다. 마고는 세상의 지형지물을 창조한 여신의 이름이다. 거인 창조 여신의 이름은 지역에 따라 마고할미, 노고할미, 개양할미, 서구할미, 겡구할머니, 설문대할망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지만 산, 섬, 하천, 돌, 다리, 성곽 등 지형지물을 창조하는 여신의 성격은 대동소이하다)의 귀에도 못된 용이 고기를 잡아 돌아오는 배를 뒤집어 고기를 낚아채 가는가 하면, 급기야 사람의 목숨을 해친다는 소문이 들어가게 됐다. 


마귀할멈은 마골산 꼭대기에 올라, 해질 무렵 방어진 바다를 바라보니 과연 듣던대로 고기를 잡은 배가 굴 앞을 지나가자 배를 습격해, 고기를 빼앗아 굴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목격했다. 참다못한 마귀할멈은 자신이 두르고 있던 앞치마에 마골산의 돌과 흙을 담아 남쪽의 동굴 입구를 막아버렸다. 


그때의 전설을 뒷받침이라도 하듯이 남쪽(용디이 전망대)부근은 해안선이 안쪽으로 밀려 들어간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못된 용은 동굴에 갇히게 됐는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아 어부들은 안심하고 고기잡이를 하게 됐다.   

< 대왕암에서 바라본 울기등대와 대왕암공원 송림 >

# 수령 백년 넘은 1만5천여 그루 송림이 곧 쉼터


얼마 전 인기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촬영 배경이 된 경남 창원시 북부리 팽나무 한 그루가 전국적인 관심을 받은 적이 있다. 6월의 태양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수령이 백년을 훌쩍 넘긴 1만5,000여 그루의 송림이 커다란 쉼터를 만들어 일상에서 지친 우리의 몸과 마음을 가만히 보듬는다. 시원한 파도 소리를 벗 삼아 공원을 걸을 수 있는 이 기쁨! 이해인 님의 '바다의 일기' 시 한편을 연상케 한다.  


바다 일기  / 이해인


늘 푸르게 살라 한다

수평선을 바라보며

내 굽은 마음을 곧게

흰 모래를 밟으며

내 굳은 마음을 부드럽게

바위를 바라보며

내 약한 마음을 든든하게

그리고

파도처럼 출렁이는 마음


대왕암 출렁다리.

송림에서 뿜어져 나오는 시원한 바람과 수평선 넘어 밀려오는 파도소리는 우리에게 건강한 에너지를 가져다준다. 최근에 만들어진 대왕암공원 내 출렁다리도 빼놓을 수 없는 명소다. 2021년 7월 개장 후 현재까지 무료로 운영되고 있다. 바다 위를 가로지르는 출렁다리는 양 끝단의 높이가 42.5m, 길이 303m, 폭 1.5m, 높이 27m로 중간 지지대 역할을 하는 다리 기둥이 없는 무주탑(無主塔) 현수교 형태로 만든 것이 특징이다. 특히 바닥이 뚫린 철망으로 이루어져 있어 바다 위를 걸어가는 짜릿함은 전국에서 최고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바다 위에 서면 호수처럼 느껴지는 일산해수욕장의 모습과 등대가 보이는 민섬, 그리고 바다 건너에 현대중공업이 보인다. 출렁다리는 현재 일방통행만 허용되고 있다. 


대왕암공원은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춘 명소임이 틀림이 없다. 남근바위, 장구터, 낙화암, 수루방, 삼신바우, 상근(相近)바우, 포수들, 고동섬 등 아름다운 경치가 더욱 그러하다. 대왕교로 연결 돼있는 대왕암은 6,000만~7,000만년 전 중생대 백악기 말에 생성됐다고 한다. 대왕암 넘어 수평선으로 떠오르는 아침 햇빛은 장엄하고 찬란하다. 1만5,000그루의 송림에서 뿜어져 나오는 무한한 산소와 아름다운 경관들. 바닷길을 따라 걸으면 해안선에 와닿는 하얀 물보라, 뱃고동, 갈매기 울음소리가 아름다운 곳. 가슴이 뻥 뚫린다. 곧 이런 것들이 아름다움의 극치가 아닐까.  


*참고문헌

·울산 지명사 - 울산문화원

·용굴에 대한이야기는 필자가 1990년경 일산동(고늘개) 故 일송 김병희 선생님으로부터 채록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작성한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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