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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희영기행작가 Sep 15. 2024

[영남알프스 전설따라]삼강봉과 탑골샘 가마달계곡

자식은 번창하나 당대는 호식당한다는 명당

백운산 감태·삼강봉 두갈래 물줄기 스며드는
태화강 백리길의 숨겨둔 보물이라는 청정지역
가마바위·10개 소·6개 징검다리 아름다움에
열걸음 걸으면서 아홉번 이상 뒤돌아보게 돼

복안저수지 주 물길이 유입되는 곳에서 탑골로 이어지는 가매달계곡의 선녀탕. 

삼강봉은 낙동정맥이 경주 단석산을 지나 서서히 남동진하면서 그 맥(脈)을 이어받아 삼강봉에 넘겨주는 분기점 역할을 하는 곳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삼강봉은 호미기맥(虎尾岐脈)의 최고 높은 봉우리이기도 하다. 하늘에서 비가 떨어지면 세 방향으로 갈라져 흐르는 분수령이라 하여 삼강봉이라 부른다. 그 빗줄기는 울산의 태화강과 포항의 형산강에 닿고, 또 하나는 서북쪽 경주 산내 쪽으로 흘러 운문댐을 거쳐 낙동강에 이르게 된다. 이곳에서 오른쪽은 소호고개-단석산-영천 운주산으로 이어지고, 왼쪽은 백운산-고헌산-운문령으로 이어지는 낙동정맥이다. 삼강봉에서 백운산 감태봉까지는 10여분 거리에 있다.

태화강의 최장 발원지 탑골샘.

# 호미기맥(虎尾岐脈)

호미기맥(虎尾岐脈)은 낙동정맥 고현산(1034m)과 단석산(827m) 사이에 위치한 백운산(892m) 북쪽의 세번째 봉우리인 삼강봉(845m) 에서 동쪽으로 분기해서 천마산(620.5m)과 경부고속도로를 지나 치술령(致述嶺) 에서 북동진하여 포항의 호미곶(虎尾串)까지 이어지는 도상거리 98km인 산줄기이다. 백운산 분기봉(白雲山·845m), 천마산(天馬山·620.5m), 치술령(致述嶺·766.9m), 토함산(吐含山·745.1m). 삼봉산(三峰山·290.3m), 조항산(鳥項山·245m), 금오산(金鰲山·230.4m),  공개산(孔開山·213.8m), 우물재산(176m), 고금산(120m)으로 그중 백운산 분기봉이 845m로 제일 높다.

가매달계곡의 구이소.

삼강봉에서 이어지는 가매달계곡은 예로부터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곳이다. 신라 때에는 김유신 장군이 수련하는 곳이었으며, 1801년경 천주교 박해를 피해 숨어든 신자들이 이 골짜기 탑골에서 살기 시작했던 곳이기도 하다. 당시 탑곡 교우촌(1839~1983)은 경주, 밀양, 의성에서 피난 온 고령 박씨, 밀양 박씨, 반남 박씨 집안으로 이루어진 공동체였다. 이후 전성기에는 신자가 100명을 넘기도 하였다고 한다. 탑곡 공소는 예씨네 집안이 상선필로 옮겨가면서 상선필 공소의 발판이 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또한 한때는(일제초기까지) 호랑이가 자주 출몰하여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개나 가축 등을 물고 가는 일이 허다한 곳이기도 하였다.

가매달계곡의 가마바위.

# 태화강의 아마존(가매달계곡)


가매달계곡은 태화강의 아마존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곳이다. 백운산과 삼강봉, 천마산, 아미산 사이에 흘러내리는 물줄기는 복안저수지(미호못)에 흘러들었다가 대곡댐을 거처 사연댐, 태화강을 거처 동해에 이른다. 저수지 주 물길이 유입되는 곳에서 탑골로 이어지는 가매달계곡은 태화강 백리길이 숨겨둔 보물이라 할 수 있는 청정지역이다. 복안저수지가 마을 사람들의 간이 상수도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다소 출입이 통제된 탓도 있겠지만 영남알프스 산군에서 약간 벗어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저수지 오른쪽 길을 따라 아미산으로 오르는 갈림길 끝에서 50여m쯤 개울을 따라가다 보면 물가 쪽으로 약간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는 작은 바위가 있다. 이 바위를 마을 사람들은 가마바위라 부르는데, 색시를 태운 가마가 계곡물을 건너다가 미끄러져 색시가 빠져 죽었는데, 가마 속에 둔 요강을 닮은 소(沼)가 만들어졌다는 요강소를 비롯하여, 선녀가 목욕을 했던 선녀탕, 구렁이가 약이 올라 빠져 죽었다는 구이소, 계곡을 건너던 소금장수가 미끄러져 계곡물이 짠물로 변했다는 소금쟁이소를 비롯하여 열 개의 소(沼)와 여섯 개의 징검다리가 있다. 맑고 속살을 완전히 드러낸 물줄기가 연거푸 하얀 포말을 토해내며 뒷물이 앞물을 밀어내며 아래로 쉼 없이 흐른다. 아름다운 소를 만나면 저절로 발길이 멈추어진다. 감탄사도 절로 나온다. 

 매월당 김시습은 “아름다운 광경을 만나게 되면 주저앉아서 통곡을 했다"고 하며, 화담 서경덕은 “아름다운 경치를 보면 일어나서 춤을 추었다"고 하며, 허균의 스승인 손곡 이달은 술을 마시며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나는 어떠한가? 그냥 노래를 부르거나 휘파람을 불면서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며 걸어갈 뿐이다. 그러다가 좋은 반석과 소(沼)가 어우러진 멋진 풍광을 만나면 그저 한 이틀 이곳에 아무 생각 없이 머물다 가고 싶은 생각이 절로 날 뿐이다. 이렇게 천태만상인 자연과 한 몸이 되어 보기도 한다.


# 탑골과 태화강의 최장발원지 탑골샘


탑골은 탑이 굴러 내려온 골짜기라 하여 '탑골'이라는 지명이 붙었다. 탑골샘이 있는 곳에서 오른쪽 계곡을 따라 삼강봉 방면으로 오르면 제법 너른 공터를 발견할 수 있다. 지금은 온통 잡초들로 뒤덮여 있지만 오래전 절터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주변에는 아직도 당시 사용 했던 깨어진 토기(도자기)그릇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발원지의 학술적 요건은 '사시사철 물이 마르지 않는 지점' '물줄기의 시작점' '산술적으로 물줄기의 가장 긴 구간' 등을 충족해야 된다고 한다. 태화강의 상징적 발원지는 대개 3곳으로 알려져 있다. 고헌산의 용샘과 가지산 쌀바위, 탑골샘이다. 탑골샘은 태화강 최장거리 발원지(유로연장 47.54㎞)로 가지산 쌀바위(45.43㎞) 보다 2.11㎞가 더 긴 셈이다. 또한 사시사철 물이 마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태화강의 발원지 탑골샘이 빼놓을 수 없는 또 한 곳은 삼강봉에서 발원한 물줄기라는 사실이다. 현재 탑골샘이 있는 곳은 두 갈래의 물줄기가 흘러든 곳이다. 즉 백운산 감태봉과 삼강봉의 물줄기가 스며들어 이곳에 이른다. 


# 천주교와 불교가 공존하는 탑골


자연은 어떤 형상이든 기(氣)가 응집되어 있어야 지덕이 발동한다고 한다. 혈처를 에워싼 주변 산세가 사람이나 동물 등 특정 물형에 비유될 수 있을 때만 복(福)을 가져다준다. 그러므로 혈장을 이룬 터가 어떤 유형과 비슷한 모양인가를 중요시 보는데, 산지로 둘러싸여 바람이 양명하고 온화하게 모이는 곳 명당에 해당된다고 한다. 그래서 인지는 몰라도 백운산과 삼강봉이 품고 있는 산자락은 풍수지리학적으로 명당의 터가 있다고 하여 예로부터 무덤과 절이 많이 들어서 있다. 한때는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이곳에 숨어들어 교우촌을 이루며 살았고, 지금은 365사를 비롯하여 백운암, 구화사, 무량사, 불탑사 등 사찰이 불과 100~200여m 거리를 두고 서로 운집해 있다. 지금은 이곳이 부처님의 도량임을 짐작케 한다. 요즈음에도 풍수에 관심이 있는 지관들은 아미산과 천마산, 삼강봉 자락을 “고자 처갓집 드나들듯 다닌다"고 한다. 명당과 관련된 이야기가 다음과 같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풍천임씨 묘지

# 호식(虎食)과 명당(明堂)


백운산 자락 탑곡에는 풍천 임씨(豊川 任氏) 집안의 분묘 5기가 한곳에 있다. 원래 이곳은 내와리에 살고 있던 안동 권씨(安東權氏) 문중에서 묘를 쓰기 위하여 잡았던 터였으나 당시 유명한 지관이 “여기에 묘를 쓰면 후일에 반드시 큰 인재(人才)를 배출하게 되지만 당장은 하관(下官)과 동시에 어느 상주가 호식(虎食)을 피할 수 없다" 고 일러주자, 묘를 쓰지 못하고 포기했던 자리라 한다. 그 후 조선조 숙종 을미(1715) 1월 17일에 경주에 살고 있던 풍천 임씨 가문에서 진사를 지낸 임인중(任仁重)의 처 월성김씨(月城金氏) 묘를 그 자리에 쓰려고 하였는데, 이번에도 지관이 같은 말을 하자 임씨 문중에서는 묘를 쓰네. 못쓰네. 양론으로 갈려 한참이나 왈가왈부할 뿐 결정을 짓지 못하였다. 그러자 맏상주가 나서서 말하기를 “내가 호사를 당하더라도 우리 후손이 잘된다면 그것으로 족할 것이니 내 기꺼이 묘를 쓰겠다"고 주장했다. 상주의 고집에 따라 결국 그 자리에 관을 묻기로 하였으나, 지관의 지적을 의식하여 모두 긴장 속에서 하관 채비를 했다. 하지만, 운명은 피할 수 없는 것. 막 하관을 하자마자 갑자기 주위가 음산해지더니 난데없이 큰 호랑이 한 마리가 저만치 나타나 눈을 부릅뜬 채 노려보고 있었다. 이에 사람들은 기절초풍할 듯 놀라 떨었으나, 겨우 마음을 가라앉혀 상여의 홍줄로 주위를 둘러친 다음 중앙에 상주들을 모으고 나서 힘센 상여꾼들로 하여금 방패처럼 그들을 에워싸게 했다. 그 순간 천지가 진동하듯 포효하는 호랑이 울음소리를 듣자 모두가 혼비백산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는 가운데 호랑이는 장자인 맏상주를 순식간에 낚아채 가고 말았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모든 일이 다 끝난 뒤였다. 다만 사람들은 후손들이 잘되고, 출세를 위하여 한 몸을 기꺼이 바친 거룩한 뜻을 기리며, 희생당한 고인의 명복을 빌 뿐이었다. 세월은 흘러 그로부터 수십 년 뒤 손자 임옥(任玉)이 과거에 급제하여 호조정랑(戶曹正郞)을 거처 병조판서(兵曹判書)를 지냈다. 또 이 무렵 그 가문에 천석꾼의 부자가 나와 대를 이어가며 부귀영화를 누렸다 한다. 묫자리 아래에는 후손들의 묘를 또 들여, 모두 5기의 분묘가 조성되어 있다. 


 백운산과 삼강봉이 빚어낸 탑골과 가매달계곡 은 긴 세월이 숨겨둔 오지임이 틀림없다. 계곡 물살이 흘러가면서 발생하는 하얀 물보라에서 발생하는 음이온과 아무 근심 걱정 없이 자라나는 나무들이 내뿜는 피톤치드, 태화강의 최장 발원지 탑골샘, 천주교 성지로 알려진 탑곡 공소, 말이 짐을 싣고 고개를 넘어가다가 지쳐 넘어졌다는 가파른 말구부리길, 마당메기, 호미기맥이 허리를 튼 개미허리골, 모두가 이름이 정답고 아름다운 곳이다.  


조선 시대의 문장가인 김일손이 쓴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 오노라면 아름다운 여인과 헤어지는 것과 같아서 열 걸음을 걸어가면서 아홉 번을 뒤돌아봤다라는 구절처럼 탑골과 가매달계곡은 걷고 또 걸어도 정다운 곳으로 필자는 열 번을 돌아보아야 했다. 진희영 산악인·기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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