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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en Teller Oct 24. 2024

경단녀 재취업에서 사장이 되기까지

10시부터 4시까지 엄마들이 좋아할 구인공고

"언니 오늘 시간 돼요?" 12층에 사는 건우엄마가 묻는다.

"어 왜 무슨 일 있어?"

"태영이가 또 건우 괴롭혔어요. 어제 관장님한테 전화가 왔는데..."


사안이 사안인지라 앞뒤 따질 것 없다. 싱크대 안에 산더미 같이 쌓인 그릇들과 세탁기 돌려놓고 나온 건 일단 뒷전으로 하고 슬리퍼에 카디건 하나 걸친 채로 카페로 향한다.

옆 테이블에는 또 같은 유치원 엄마들이다. 나중에 같이 브런치 먹으러 가잖다.


'지난번에도 일 있다고 안 된다고 했는데.. 그래 같이 먹지 뭐. 금방 오면 시간 될 거야. '

카페이서 제법 떨어진 유명한 브런치 가게에 간다. 

아침 일찍부터 오픈하는 이 가게는 아이들 보내고 난 엄마들로 늘 가득 차 있다. 이른 시간에 식사에 커피까지 해결가능한 장소가 잘 없으니 엄마들이 모여들 수밖에. 겨우 한 테이블 자리 잡아 주문하려는 찰나 전화벨이 울린다. 이럴 때만 전화하는 이 인간. ‘꼭 내가 어디 나오면 전화하더라.’


"어 자기야, 아니 잠깐 뭐 사러 나왔어, 자긴 밥 먹었어? 어 저녁에 보자~"


왜 거짓말 한 거지? 아줌마들이랑 밥 먹었다고 하는 거 눈치 주는 사람도 아닌데 왜 난 거짓말을 하고 있나 모르겠다만. 일단 그렇게 넘어가는 게 편해졌다.

늘 비슷한 레퍼토리지만 섬세하게 다른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자랑도 있고 속상함도 있고 아이들 학원이 어쩌고 선생님이 저쩌고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멈출 생각이 없다. 

“잉? 벌써 3시네? 빨리 일어나자.”

겨우 시간 맞췄다. 노란 승합차가 우리 아파트 분수대 앞에 딱 멈춤과 동시에 세이브!

학원 차에서 내린 큰아이와 둘째 어린이집에 들러 늘 가는 아파트 놀이터로 향한다. 비 안 오면 놀이터! 국룰 아닌가. 에너지 빼고 집에 들어가야지 하루가 쉽다. 자연스럽게 핸드폰 앱을 켠다. 워크넷.

자주 들락거린다. 내가 100만 원만 벌어도 대출금은 갚을 텐데 하는 마음에.. 둘째도 어린이집 적응했으니 매일 눈에 불을 켜고 일을 찾는 중이다.

‘어? 시간 너무 괜찮은데? 10시부터 4시까지 근무면 둘째 보내고 나서 둘째 받을 수도 있는 시간이네.‘

앞뒤 따질 것 없다. 바로 입사지원 클릭.


다음날 벨소리가 울린다. 신랑인 줄 알았더니 신랑이 아니고 모르는 번호다.

이번 주에 면접 보잔다. “앗싸! 집에서도 가까워서 딱인데?”

오랜만에 머리도 감고 조신하게 차려입었다. 오랜만에 신은 단화가 불편하지만 참아본다.  매장 주변 분위기를 살피기 위해 미리 도착해 근처를 서성거리다 약속된 면접 시간 맞춰 매장에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최대한 해맑게 웃어보려고 하지만 입꼬리가 떨린다. 남녀 사장님 두 분이 계셨다.


‘둘이 부부인가 보데? 뭐 인상은 괜찮네, 이렇게 작은 매장에 사장이 뭐 둘씩이나 있지?’


"우리가 하는 일은 노인장기요양보험이라고 들어봤죠? 어르신들이 이용하는 복지용구 매장이에요. 전동침대 대여나 휠체어 대여 요실금팬티 같은 거... 대부분 어르신들을 상대하는 일이에요.  많이 어려운 일은 없을 거예요. “

40분가량 업무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나니 더 하고 싶어졌다. 매장은 늘 혼자 근무하고 편의점같이 손님이 많이 들락거리는 가게도 아니고 손님 오시면 친절히 응대하면 되는 일이었기에! 사장님 눈치 안 봐도 되는!!

 '와우 너무 괜찮은데???

그랬던 면접을 마치고 달려가듯 전화기 버튼을 눌렀다. 내 면접을 누구보다 응원하고 궁금해할 사람, 남편에게 가장 먼저 알리고 싶었다. 합격은 의심치 않았다. 마음에도 안 드는 사람과 이렇게 오랫동안 면접을 할리가 없지 않은가. 결과는 뻔하다, 역시 사람 볼줄 안다. 

그런데, 연락이 없다. 

합격을 축하드린다는 둥, 좋은 인연을 쌓아가자는 둥의 핑크빛 문자를 기다리고 기다렸건만 며칠이 지나도 감감 무소식이다. 분명히 마음에 든다고 했었는데, 월요일에 전화 준다고 했었는데, 그렇게 확신에 가득 찼으면서, 울리지 않는 전화기에 마음이 쪼그라든다. 

성격 급한 아줌마는 월요일 오후 6시가 되어서는 더 참지 못하고 전화한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다리에 힘이 없어서 식탁에 앉았다. 

"네? 다음 주 월요일부터요? 네 감사합니다. "

그럴 줄 알았어. 역시 사람 볼 줄 아는구먼 후훗




오전 9시 50분  띡띡띡띡 비밀번호 누르고 매장 들어가 환기시킨다. 믹스커피 한잔 타 컴퓨터 전원버튼 누르고 켜지는 동안 밀대에 물티슈 한 장 끼워 매장 청소를 한다. 10평 남짓 작은 가게라 금방 끝난다. 이래라저래라 잔소리하는 사람이 없다. 전화로 또는 업무 톡 방에서 주는 업무 안 빼먹고 처리하면 된다.

10개월 차 이제는 제법 일이 손에 익었다. 커피 한잔 하러 들리시는 손님들도 생겼다.

3시 57분 컴퓨터 화면 창을 하나하나 정성스레 닫는다. 4시 정각 땡 하자마자 컴퓨터 전원을 끄고 퇴근한다.

눈치 안 보니 너~~~ 무 좋다.


오늘은 월요일 줌회의 하는 날이다. 

“이제 일도 손에 익었는데 지점하나 맡아서 해보면 어때?”

“네? 제가요? 저 돈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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