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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연 Apr 18. 2023

영화는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습니다. 다만,

<파벨만스>가 말하는 영화의 두렵고 매혹적인 사실들

  스티븐 스필버그에게 영화는 아른거리는 꿈을 포착하는 작업이자 이를 재현하는 노동이다. 그리고 그 꿈은 마냥 달콤하지도, 혹은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공포로만 점철되지 않는다. 여기에는 소위 거장으로서의 사유가 종종 깃들어 있기도 하지만, 스필버그는 <BFG(한국개봉명 '마이 리틀 자이언트')>, <레디 플레이어 원>,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통해 영화는 결국 꿈에 불과할 뿐, 현실보다 중요할 수는 없다고 거듭 언급하였다. 그가 연출한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 가상현실세계 '오아시스'를 창조한 할러웨이는 'Reality is real.'을 강조한다. 이는 아무리 사람들을 매료시킬 무언가를 창조하여도, 그것이 사람들이 각자의 진짜 인생보다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걸, 누군가에겐 다소 꼰대스러운 말을 기어이 내뱉고야 만다. 감히 추측해 보건대 그는 이 말의 진정성과 설득력을 얻기 위해 자신의 유년시절을 토대로 <파벨만스>를 찍은 것이 아닐까.



첫 영화를 조우하는 순간. 샘의 눈은 하얀 빛무리에서 공포와 아름다움을 목격한다.



  영화 속 샘이 처음으로 영화를 만든 계기는 바로 두려움이다. 샘은 <지상 최대의 쇼>의 기차 충돌 씬을 보고 악몽을 꾼다. 그리고 그 장면에 사로잡혀 집에서 영화 속 장면을 유사하게 재현하고 필름으로 담아둔다. 이는 무서운 꿈을 눈 앞에 똑같이 만들어 상황을 완벽히 통제해 붙들어 둔다는 점에서 공포를 통제하는 작업처럼 보인다. 그에게 영화를 찍는다는건 삶의 두려움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과도 같았다. 그러나 이 믿음은 자신의 가족들을 촬영하면서 무참히 부서진다. 평소대로라면 발견하지 못했을 인생의 비극적인 순간을 카메라는 기어이 포착해 버렸다. 여기서 샘은 영화를 찍으면서 누릴 수 있는 통제욕은 역설적으로 보여주어야 하는 장면을 취사선택하는 막중한 책임감도 짊어져야 한다는걸 깨닫는다.

  자신이 창조하는 '가짜'는 상상과 통제욕을 쏟아낼 수 있는 오락이지만, 카메라가 기록하는 모든 순간들이 가짜인 것은 아니다. 샘은 전쟁영화를 찍으면서 배우에게 동료를 지키지 못해 슬픔에 잠긴 연기를 하라고 지시한다. 상황은 가짜이지만 연기하는 배우의 감정은 진짜인 것이다. <마이 리틀 자이언트>에서 꿈의 소리를 채집하는 거인의 대사를 다시 떠올렸다. "난 좋은 소리, 나쁜 소릴 다 듣는다. 아주 아주 나쁜 소리도... 모든 비밀스런 속삭임도 다 듣는다." 영화를 매혹적인 빛줄기로 여러 번 묘사했던 스필버그는 영화가 결코 즐겁고 행복한 꿈만을 수집하는게 아닌, 현실의 비극적인 순간들도 담을 수밖에 없음을 명시한다.




<파벨만스>에서 영화는 곧 가족의 삶과 뗄래야 뗼 수 없는 관계다.



  <파벨만스>는 영화감독의 성장이야기, 나아가 영화감독으로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은 가족에 있음을 말하는 가족영화이기도 하다. 하지만 적어도 내게 <파벨만스>는 인생의 대부분을 영화라는 매체와 떨어지지 않았던 한 예술가가 남기는 진심어린 지침서처럼 느껴진다. 미국 영화역사의 일부와 시간을 겹쳐 보냈던 노장은 영화의 기술적 발전은 물론 영화를 찍는 행위의 위험성을 동시에 기록해 둔다. 여기에는 편집의 윤리와 함께 거장 존 포드의 조언을 위트 있게 전승하려는 위대한 결말이 있다. 존 포드는 '지평선을 가운데보다 살짝 위로, 혹은 아래로 잡으면 영화는 흥미로워진다'고 샘에게 말했다. 이는 카메라에 담기는 피사체를 카메라의 시점으로 굴복시키느냐 혹은 우러러 보이게 할 것인지를 선택하라는 말이다. 스필버그는 줄곧 흔들림없이 유려하게 촬영하던 카메라를 흔들림을 감수하면서까지 앵글을 바로잡으며 인간을 우러러 볼 것을 선택했다.


  줄곧 흥미로운 사건을 장르물로 만들어왔던 그는 사건보다는 그 사건에 놓인 인간을 주목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걸 알았던 걸까. 영화라는 예술의 거대한 질문에 스필버그는 마침내 자신의 삶까지 빛으로 투사하며 자신만의 답을 내렸다. 그리고 그 답은 관객을 기어이 설득시키고야 만다. 그가 만들어온 매혹적인 꿈을 보고 자랐다는 사실이 큰 행운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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