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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연 May 10. 2023

21세기 액션의 이정표일까, 액션영화 최후의 유산일까

<존 윅 4>가 남긴 액션들, 그리고...

  액션스타와 액션영화는 멸종위기에 직면했다. 이는 때마침 영화라는 매체의 위기와 맞물려 있기도 하다. 배우가 액션영화가 구현한 세계에 완연하게 스며들기 위해서는 육체를 단련해야 하고 상대방과 합을 맞춰야 하는 수고스러움을 거쳐야 한다. 이제는 마감기한이 정해져있는 상품을 찍어내듯 제작하는 영화산업에서 액션영화는 많은 시간이 필요한, 그렇지만 흥행을 완벽하게 보장할 수는 없는 장르가 되었다. 이제 배우가 육체를 단련해야 할 시간은 카메라 기술로 보완하고 위험한 상황연출은 CGI와 대역으로 완벽하게 대체되는 듯 하다. 그러나 관객들은 체감하고 있을 것이다. 진짜 위기에 처한 것 같은 상황, 잔기술 없이 자신의 신체로 직접 액션을 펼치는 배우들, 그걸 숨김없이 담아내는 영화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걸.



액션영화의 기근이 이어질 무렵, 존 윅의 등장은 썩 반가운 것이었다.



  B급 킬러액션의 흔한 컨셉으로 시작된 <존 윅>의 세계관은 키아누 리브스의 액션 연기, 그리고 오래동안 영화계에서 액션연기와 스턴트 지도를 해왔던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졌고 관객들의 지지를 받았다. 이 영화를 흥행시켰던건 시종일관 카메라를 흔들어대는 핸드헬드와 셰이키캠 방식을 거부하고 배우들의 스턴트를 흔들림없이 담아두며 '진짜 액션'을 지향하는 진정성에 있었다. 허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시리즈의 인기를 끌게 만든건 게임의 주인공처럼, 혹은 먼치킨 소설물의 주인공처럼 아무런 걱정 없이 적들을 도륙하는 '존 윅'이라는 전지전능한 캐릭터의 매력 덕분이기도 하다. 육체를 활용해 인간적인 위태로움을 몸소 구현하는 액션영화에서 가장 비인간적인 캐릭터가 인기를 끄는건 꽤나 모순적이다.

  킬러 세계에서 전설적인 인물 존 윅은 은퇴했지만 모종의 사건을 겪고 다시 이 세계로 복귀했다. 아무런 적수도 없을 것 같은 이 전설적인 킬러의 상대는 다름아닌 세계의 룰이다. 그는 킬러 세계의 룰에서 벗어나려다가 여러 번 위기를 겪는다. 결국 룰을 위반하는 존 윅은 케케묵은, 하지만 오래된 룰을 다시 꺼내오면서 킬러세계로부터 자유를 찾기 위해 분투한다.



무리하게 세계를 확장시키려던 3편과 달리, <존 윅 4>는 세계관을 정돈하는 쪽에 가깝다




  <존윅 4>는 영화 역사에 획을 그었던 액션들을 집대성한다. 영화에서 존 윅을 연기하는 키아누 리브스의 대사는 고작 380단어에 불과하다. 그가 영화에서 자신의 캐릭터를 보여줄 수 있는건 액션, 즉 대사 없이 몸을 활용한 연기 뿐이다. 이는 영화 역사에 이름을 남긴 액션의 대가 버스터 키튼을 향한 오마주이다. 여기에 존 윅의 액션의 근본인 일본 유술, 8,90년대 무협영화, 서부극을 한데 모아 다채로운 액션 시퀀스를 엮어냈다. 사나다 히로유키와 견자단을 캐스팅한 것도 배우들이 일본과 중국의 액션을 대표하는 인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다양한 장르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은 액션 시퀀스들이 쉴틈없이 나열되지만, 결국 영화의 클라이막스는 서부극이다. 타국의 다양한 레퍼런스들을 짜깁기하며 그 자체만으로도 특유의 스타일로 내세웠던 영화의 마지막은 꽤나 미국적이다. (짧은 역사를 지닌 미국의 유일한 액션 혹은 장르가 서부극이기 때문일 것이다.)

  절대 쓰러지지 않을 것 같던 존 윅은 이번 시리즈에서 유독 지친 모습을 보인다. 세계의 룰을 거역하고 자유롭고자 하는 존 윅은 사크레쾨르 성당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라가야만 한다. 이 장면은 흡사 신이 제시한 규율을 거부한 시시포스가 반드시 올라가야 할 언덕처럼 보인다. 그는 쏟아지는 적들을 상대하면서 힘겹게 계단을 오르다가도 적의 발길질에 계단 맨 아래로 굴러떨어진다. 킬러 세계의 룰과 지속적으로 싸워왔던 존윅 시리즈의 요약과도 같은 씬이다. 그는 끝내 계단을 올라 자신의 운명을 거스르고자 한다. 그리고 그는 그만의 방식으로 킬러세계에서 퇴장한다.



  액션영화 역사의 집대성과 같던 존 윅의 퇴장은 앞서 말한 것처럼 멸종 위기에 처한 액션영화의 죽음처럼 보이기도 한다. 마치 블루스크린과 카메라기술로 진짜 육체연기를 찍는걸 중단한 영화계에서 설 자리를 잃은 아날로그 액션이 장렬히 산화하는 것만 같다. 허나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산다'는 존 윅의 대사처럼, 진짜 육체로 발휘하는 진짜 액션은 위기에 순간 죽음을 선택함으로서 신화로 남으려는 선택을 한다. 무리하게 확장한 세계관을 수습하고 멋들어진 마침표를 찍는 놀라운 선택이다. 이제 이 시리즈는 21세기 액션영화의 신화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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