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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연 May 15. 2023

선천적 얼간이들의 사랑이 세상을 구한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3>가 남긴 것

  엔드게임 사가 이후 MCU는 줄곧 '멀티버스'라는 거대서사에 사로잡혀 있었다. 절대악 타노스가 소멸했으니 새로운 캐릭터들이 등장해 활동할 당위성이 사라졌고, 이는 곧 관객들이 새로운 작품을 기다리며 감상해야 할 이유도 사라지게 만든다. 이에 마블스튜디오는 '멀티버스'라는 만능도구를 꺼내들었다. 영웅들은 언제든 멀티버스라는 명목하에 다른 배우로 대체할 수 있게 되었고, 동일한 영웅들을 다른 차원의 영웅이라고 설명하며 같은 화면에 출연시킬 수 있게 되었다. 그야말로 만능도구이지만 그걸 활용하려던 결과는 흥행적으로도, 관객들의 반응으로도 모두 처참했다.



만능도구였던 '멀티버스'는 오히려 MCU에 독이 되었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3> 에서 가장 눈여겨 보이는 점은 바로 멀티버스에 얽매이지 않고 멤버들에게만 집중한다는 점이다. 타노스와의 전쟁이 끝난 후의 이야기를 다루는 이번 영화는 멤버들 각자가 갖고 있던 문제 혹은 결핍을 보여준다. 스타로드는 가모라와의 이별을 수긍하지 못해 방황한다. 로켓은 불현듯 떠오르는 과거의 기억을 더듬고 있고, 그루트와 드랙스, 맨티스는 그들이 머무는 노웨어 행성을 재건하느라 멤버들을 제대로 돌보기에 벅차다. 크레글린은 욘두에게 물려받은 화살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해 애를 먹고 있다.

  전편부터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우정으로 엮인 대안가족 서사로 읽어내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들 개인의 사연을 면밀히 관찰하고 이를 하나로 엮는 작업은 3편까지 오고 나서야 이루어진다. (1편이 멤버들을 소개함과 동시에 인피니트 스톤을 노출시켜야 했고, 2편은 지나치게 스타로드의 비하인드에만 집중했다는 점을 생각해 보자.) 시리즈의 마지막을 장식할 이번 영화에는 멀티버스가 들어갈 틈이 없다. 이는 시리즈를 이끌었던 제임스 건 감독의 마지막 MCU 작품이기에 그들의 끝맺음을 확실히 하고 싶었던 점도 있을 것이다. 덕분에 <가오갤 3>는 '정상성'이라는 단어와는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멤버들을 기어이 사랑받는 가족으로 엮어냈고, 시리즈의 끝을 멋지게 갈무리했다.






  가오갤 시리즈를 빼곡히 채우고 있는 우스꽝스럽고 지극히 개인적이라 공감하기도 어려운 유머들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 생각했다. 유머는 곧 방어기제다. 평범하지 않고 심지어 얼빠져 보이기까지 하는 가디언즈 멤버들은 시도때도 없이 헛소리에 가까운 유머를 늘여놓는다. 하지만 그들을 일일이 들여다 보면 집단의 소수자이거나 세상에 소외받고 있는 존재들이다. 이들은 다수에 스며들지 못하는, 세상의 편견과 개인의 트라우마로부터 평생을 싸워야 한다. 이는 고통을 수반한다. 그러니 농담을 쉬지 않는다. 이 선천적 얼간이들은 시종일관 투닥거리며 싸움을 멈추지 않지만 서로를 가장 먼저 챙기는 끈끈한 가족이 되고야 말았다. 그들의 아픔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제임스 건은 가오갤 시리즈로 두 가지를 증명했다. 첫 번째는 마블의 성공요인은 거대한 서사가 아닌, 그 세계에 살아가는 캐릭터들의 매력이라는 점이다. 유독 가오갤 시리즈가 MCU와는 동떨어진 독립된 시리즈였다는 점을 돌이켜 보자. <가오갤 3> 또한 마찬가지다. 멀티버스에 구속되지 않은 이 영화는 캐릭터들의 사연에 집중하고 그들의 매력에 귀를 기울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관객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또 하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가 세상에 공개되기 전의 반응은 '마블의 첫 실패가 될 영화', '아무도 이 캐릭터들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을 것' 같은 혹평들이 주를 이뤘었다. 태생도 다르고 언어도 다른 전과자들로 구성된 집단에게 관심을 가질거라고는 그 누구도 쉽게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비극으로 점철된 과거를 안고 살아가는 이 미워할 수 없는 얼간이들을 이제는 다수가 좋아한다. '정상성'이라는 기준에 매몰되어 타인의 아름다움을 쉬이 발견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제임스 건은 이 시리즈를 통해 결점 투성이 존재들조차도 사랑받을 수 있음을 증명했다. 세상에 홀로 놓여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 당신은 스스로를 쓰레기처럼 여기겠지만(creep),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이 뻔한 말을, 제임스 건은 뻔하지 않게 만들었다. 세계를 향한 사랑으로 가득채운, 아름다운 마무리다.




행복하렴.


덧,

이 모든 건 존재의 결점을 특별한 매력으로 바라보게 하는 사랑이 있기에 가능하다.

사랑이 세상을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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