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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연 Jun 30. 2023

디즈니-픽사의 뻔하지만 순수한 가족주의

<엘리멘탈>이 포옹하려는 것은?

  픽사의 <엘리멘탈>을 보고 연상되는건 디즈니의 <주토피아>다. 흔히 '인종의 용광로'라고도 부르는 미국의 현실과 이상을 초식-육식동물들이 공존하는 도시로 은유했던 <주토피아>는 미국의 다인종 특성을 원소로 은유하고 있는 엘리멘트 시티가 주무대인 <엘리멘탈>과 유사한 지점이 많다. 여기에 불 원소이자 주인공인 엠버의 부모가 엘리멘트 시티로 이주하여 불 원소들의 게토를 형성하는 이야기를 덧대어 미국사회의 한 축을 차지하는 이민자들의 애환까지 묘사한다. (특히 아슈파가 운영하는 가게는 대개 아시아 이민자들이 편의점과 세탁소 같은 편의시설을 운영하는 시대적 특징에서 기인한 설정이다.) 물론 아시아인들의 디아스포라임을 확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민자 2세대인 피터 손 감독이 작품 속 원소들에게 이런 설정을 해 둔 건 단순히 다양한 이민자들이 지닌 보편성만을 의식한 건 아닐 것이다.



앰버의 가게는 미국의 한인들이 운영하는 편의시설을 연상시킨다.





  어느새부턴가 디즈니의 운영방침을 따르는 픽사에게 더이상 2000년대 후반- 2010년대 초반의 창의적인 작품을 바라는건 어려울 것이다. 픽사는 이야기의 소재만큼은 늘 참신했었고 이를 구현하는 CG 기술 또한 진일보하고는 있지만, 코로나 이후 개봉한 작품들은 다소 실망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물론 영화의 마술적인 순간들을 넘보기도 했던 <업>, 무성영화의 마력을 이식한 <월-E> 같은 작품을 매번 기대하는건 욕심일지도 모른다.


  디즈니의 '방침'상 픽사가 세상의 차별, 이민자에게 따르는 시선, 자본계급의 간극 같은 심각한 이야기를 건드리는건 쉽지 않을 것이다. <엘리멘탈>은 원소(인종) 차별과 편견, 이민자 세대 안의 희생과 부담, 그리고 종을 초월하는 사랑을 다룬다. 이 이야기들은 디즈니가 늘상 해오던 원론적인 이상이다. 작품 속 세계에는 악한 존재가 없고, 그들에게 닥친 현실적 지점들은 깊게 언급되지 않거나 우연한 사건으로 해소된다. (웨이드 가족의 저녁식사에 초대된 엠버가 인종차별적 발언을 흘려듣거나 중산층-서민층 간 문화적 이질감을 뭉뚱그린다는 점이 그렇다.) 종종 디즈니-픽사가 가족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점을 비판하는 의견을 보곤 한다. 자가반복을 향한 비판은 이해할 만 하나, 불확정성이 불안으로 퍼져가는 시대적 우울감에서 가족이야말로 개인을 안심시킬 수 있는 가장 최소단위의 공동체임은 분명하기에 이 영화의 가족주의는 수긍이 간다.





튀어나오는 자본계급 간 차이와 오해들은 픽사의 순수한 선의로 그럭저럭 해소된다.





  <엘리멘탈>은 디즈니와 픽사가 최근 몇 년간 동어반복적으로 보였던 종을 초월한 사랑, 세대 간 오해와 화해를 이야기한다. 이는 현실적 문제들을 직시하지 않는 순수한 아집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허나 때로는 그 순수함이 인종과 세대를 하나로 엮을 수 있는 화합의 시발점이 되기도 한다. 불(분노)과 물(눈물)은 상극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손을 잡고 함께 나아갈 수 있는 존재임을 묘사하는 영화의 순수함은 지겹지만 감동을 주기에는 충분하다. 지겨운 그 말들은 삶의 이치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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