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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은 Aug 30. 2022

쌍봉사 일기 7/8(금): 템플스테이

<금강경, 나는 이렇게 들었다>, <의미 있는 삶을 위하여>

7월 7일부터 8월 6일까지 절에서 지냈던 한 달간 썼던 일기를 컴퓨터로 옮기고 문장을 가다듬어 가능한 매일 하나씩 올리려 한다. 주로 절에서 읽은 책 내용, 책을 읽으며 한 생각, 절에서의 생활, 절에서 만난 새끼 고양이 이야기 등이 포함되어있다.

절에서는 7월 7일부터 지냈지만 이 글이 첫 일기다.



쌍봉사 대웅전과 담벼락 너머에 내가 지내던 방이 있는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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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부터 한 달간 혼자서 절에서 지내게 되었다. 

내가 왜 절에서 한 달을 지낼 생각을 했는지 먼저 써야 할 것 같다.


지난 9월, 거의 7년을 다닌 회사를 그만두었다. 처음 세워진 직후부터 내가 많은 역할을 맡으며 나와 함께 성장한 회사였다. 이전까지의 나는 삶의 명확한 목표가 없어 주도적인 삶을 살지 못하였다. 수동적으로 상황이 주어지면, 그때 놓여있는 선택지 중 괜찮은 선택들만 하며 살아왔다. 그런 생각에 나는 1년의 시간을 할애해 명확한 인생의 목표를 가지고 주도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한 고민을 하기로 결정하였다. 1년의 기간 동안 가장 먼저 많은 책들을 읽어보기로 하고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막상 이런 시간을 가지는 동안이지만 마음먹은 것처럼 시간을 보낼 수가 없었다. 먼저, 원래의 익숙한 생활방식을 따르다 보니 다양한 사회의 자극들로 인해 정적이고 정신적인 시간을 깊게 가지기가 어려웠다. 거기에 더해 아직 기존의 삶을 대하는 태도를 완전히 버리지 못했고, 그에 따라서 몇 가지 일을 맡다 보니 시간을 계속 뺏기게 되었다. 그렇게 여러 달간 책 몇 권을 읽고 아내와 긴 여행도 다녀온 뒤 올해 5월, 생각의 큰 변화 없이 조급한 마음만을 가지게 되었다. 나 스스로가 동의할 수 있는 명확한 생각과 인생의 목적을 갖지 못한 채, 이전의 나 그대로 사업을 시작하려 주변 사람들을 만나고 얘기들을 나누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렇게 사람들을 만나며 대화를 하면서 또 그중 특히 한 친구와의 대화 중 다시금 변하지 않은 나 스스로를 알게 되었다. 다소간의 절망을 느끼고서 다시금 삶의 중심을 외부적인 일에서 내부적인 고민으로 옮겨왔다. 이번엔 더 명확한 동기와 목표의식으로 내 속의 직접적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먼저 가장 의문이 되던 '나 스스로가 동의하는 인생의 목적은 어떻게 탄생하는 것이며’, ‘열정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인지’에 대해 책뿐 아니라 여러 경로로 해답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인터넷을 통해 비슷한 고민을 하는 현대의 사람들의 질문과 답변들을 찾아보기도 하고, 가까운 사람들 중 특별히 열정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물어보며 각 질문에 대한 스스로 납득 가능한 명확한 해답들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 해답에 따라 인생의 목적을 설정하기 위해 먼저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들이 무엇인지 탐색하였다. 처음에는 내 과거 경험들 속에서 내가 진실하게 느꼈던 감정을 되돌아봄으로써 내 과거 속에 중요하게 여기던 가치가 무엇인지 탐색을 먼저 하였다. 탐색을 하고 내 가치를 되돌아보는 중 옆에 있던 친구와의 대화를 통해 이 방법의 한계도 생각하게 되었다. 내 과거의 경험은 현재의 나를 만든 것이고, 이 과거를 되돌아보고 나의 가치를 설정하는 것은 같은 삶을 두 번 살아보고 내 가치를 결정하는 것이기에 원래 가지던 가치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지금 나는 아무런 제약 없이 지내고 있기에 현실의 간섭 없이 어떤 가치관이든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시기이다. 그렇게에 평소에도 할 수 있는 위의 방법만이 아닌 과거에 살았던 많은 사람들의 경험과 생각을 간접적으로 얻기 위해서, 그리고 나의 인생의 가장 중요한 가치들을 설정하는데 이들을 활용하기 위해서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결국 돌고 돌아 작년 9월부터 반년이 넘게 책을 계속 읽어오고 있지만 이 이후부터는 목표도 더 명확해지고 그것이 나의 내면에 확고히 자리 잡아서 이전에 비해서 책을 읽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그리고 책의 내용도 내 생각의 간섭 없이 있는 그대로 잘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내 삶의 패턴에서는 책을 읽는 시간과 혼자서 깊은 사고를 하는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생각했다. 내 생활에서 스마트폰 사용, 영상 시청, 게임, 술자리 등 많은 일상 활동들이 너무 자극이 강하고 피드백 주기가 빠르다 보니 정적으로 깊게 명상하거나 사고하는 행위 자체가 너무 어려웠다. 책을 보며 많은 생각과 경험을 왜곡 없이 받아들이고 나의 생각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중간중간 깊은 명상이나 사색이 필요하다 생각하고 있었기에 이런 상황을 바꾸고 싶었다. 그래서 어느 친구와 대화를 하며 내 고민을 말하다가 사회의 자극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을 수 있는 절에 들어가면 어떨까 얘기가 나오게 되었고, 며칠 안에 정보를 찾아보고 이를 실행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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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일기에 앞서 어제의 일기부터 먼저

7/7 목요일

아침 일찍부터 아내랑 함께 차를 타고 집을 떠났다. 며칠 전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정보를 따라 쌍봉사라는 절에 전화를 통해 한 달간의 템플스테이를 신청했었다. 오늘이 그 템플스테이 시작일이라 쌍봉사가 있는 전남 화순으로 아내와 함께 출발한 것이다. 템플스테이는 나 혼자 하기로 했지만 한 달이라는 긴 시간 동안 떨어져 지내야 하기에 화순까지 가는 길을 아내도 따라 나왔다. 결혼한 남자가 한 달이나 집을 나와 절에서 지낸다는 것도 괜찮다고 하는 데다 화순까지 가는 먼 길도 따라와 혼자서 집까지 돌아가겠다고 한다. 그렇게 일찍부터 서울을 출발해 여유롭게 광주까지 도착했다. 전날부터 햄버거를 먹고 싶었기에 광주의 버거킹에 가서 점심을 먹고, 내가 원래 사용하던 휴대폰을 아내에게 전해주고 헤어졌다. 아내는 버스를 타고 서울로 가고 나는 차를 운전해 그대로 화순의 쌍봉사로 향했다. 원래 3시까지 가기로 하고 여유롭게 출발했지만 아직 운전도 미숙하고 광주도 들른다고 조금 늦어 4시가 되어야 도착했다.


도착하고 본 쌍봉사의 첫인상은 한 마디로 매우 적막했다. 정말 조용하고 주변에 산과 밭, 작은 개울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야트막한 산들로 둘러싸인 쌍봉사는 가까운 마을도 없이 정말 적막했다. 나 홀로 책 보고 명상을 하기에는 정말 최적의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차를 하고서 절 내부로 들어오니 그런 인상이 더 강하게 느껴졌다. 사찰 내에 사람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높은 목탑 주변으로 새들만 눈에 들어왔다. 절의 종무소 주변에서 직원분들을 만나고 간단한 서류를 작성하고 얘기 나누며 안내를 받은 후 짐을 방으로 옮겼다. 절 생활을 위해서 내가 신경 쓰지 않은 것들까지 아내가 정말 정성스레 짐에 싸 주어 짐이 조금 많았다. 절에서 한 달간 읽을 책 두 박스와 생활용품들을 포함한 짐들을 옮겨 놓고 나니 땀이 정말 많이 났다. 방은 더웠고 샤워실은 방 밖의 공용 샤워실을 써야 했는데 세탁실과 함께 쓰는 공간이라 약간 지저분해 보였다. 곧 있으면 저녁시간이었기에 샤워는 미루고 땀을 흘린 상태로 앉아 책을 읽었다.


오후 5시 반이 되어 저녁을 먹으러 갔는데 저녁시간도 상상보다 너무 한산했다. 불 꺼진 어둡고 넓은 공양간 한 구석에만 불이 켜져 있었고 스님 한 분을 포함해 젊은 남자 둘이 거기서 밥을 먹고 있었다. 나도 조용히 앉아 밥을 먹은 후 방에서 계속 책을 보면서 있는데, 6시 반이 되니 예불 시간이 되어서인지 경전 읊는 소리와 목탁 두드리는 소리가 절을 채웠다. 나의 생활에 이런 소리가 가까이서 울려 퍼지니 낯설지만 맑은 소리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템플스테이로 지내는 몇몇의 젊은 사람들이 예불에 참석한 듯 보였다. 나도 한 번쯤 예불에 참석해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책을 보며 시간이 지나서 샤워를 하고 자리 정리를 마친 후 책을 보다 (취침시간인) 10시가 되기 전 자리에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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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오늘의 일기를 시작

어제오늘은 <금강경, 나는 이렇게 들었다>라는 책을 보았다. 책 내용은 오쇼 라즈니쉬(아마 어떤 수행자? 스승? 같은 사람인 듯)가 금강경에 관한 강의를 그 제자들에게 하는 내용이다. 책에서 말하기로 금강경은 붓다의 제자 아난다가 그의 스승이 나눈 얘기들을 전한 것이라 한다. 앞부분에 나오는 얘기 중 재밌었던 게 금강경은 “나는 이렇게 들었다"로 시작한다고 한다. 일반적인 경전을 생각하면 조금 특이한 시작이라고 한다. 보통의 경전은 “들었다"가 아니라 주로 “누구는 이렇게 말씀하셨다"라는 표현을 쓴다는 것이다. 붓다의 가장 가까운 제자조차 그가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단정 짓고 이해했다 말하기보단 단지 자신은 이렇게 들었을 뿐이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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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중간에 자주 나오는 얘기가 붓다 스스로는 철학자가 아니라 의사라고 했다 한다. 니체가 스스로 철학자가 아니라 심리학자라고 책에 많이 적어뒀는데 재밌게 서로 겹쳐 보인다. 붓다가 스스로 의사라고 한 이유는 자신이 제자들에게 새로운 진리와 깨달음을 직접 알려주는 게 아니라 이미 존재하고 있는 진리와 깨달음을 제자들 스스로가 볼 수 있도록 감긴 눈을 뜨고 닫힌 귀를 열게 해 주기 때문이라 한다. 그 진리와 깨달음을 바로 보려 하는 걸 가로막는 마음을 걷어내야 한다는 얘기를 한다. 진리를 보게 된다면 그것을 거부하거나 밀어낼 수 없다고 하는데 그것이 진리가 가지는 힘이라 그런다. 그렇기에 자아와 마음은 그 진리가 나에게 오는 것, 진리를 그대로 바라보는 것을 본능적으로 거부한다고 한다. 새로운 세상을 두려움 없이 받아들여서 세상에 너와 내가 나뉜 것 없고 세상과 분리된 나라는 존재가 없는 더 나아가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진리와 깨달음을 보라고 한다. 기존의 세계와 가치관을 완전히 버려야 알게 되는 세상이라니 그런 삶의 방향을 아직 나는 추구하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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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에서의 이틀째다. 일찍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책을 보고 있으니 너무 졸리다. 원래 집에서 지내던 때라면 몸을 깨우는 좀 더 활동적인 행위를 하거나 커피를 마실 텐데, 절에서는 애초에 할 것이 그다지 없다. 자극도 없고 고요하고 먹거나 마실 것 또한 없기에 잠을 쫓아내는 게 쉽지 않다. 내가 절에 오기 전 잠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는데 약간은 안일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낮에는 기온이 올라 상당히 더운데 에어컨이 없고, 또 좌식 생활을 하는데 낮은 식탁을 책상으로 써서 허리랑 목이 매우 불편하다. 여기의 환경 중 많은 부분이 나의 수행(?)과 명상을 방해하지만 그럼에도 사회에 있는 것과 비교해 불필요한 여러 자극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훨씬 큰 도움이 된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지금의 고요함을 충분히 즐기고 활용하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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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 나는 이렇게 들었다>를 다 읽고 이제는 <의미 있는 삶을 위하여>를 읽고 있다. 책의 초반부에 여럿 생각해 볼 만한 이야기들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지금 일기에 쓰고 싶은 내용이 하나 있다. 최근 들어 많이 느낀 것인데, 어떤 진실,  원칙, 생각들을 내가 얻게 된다 해도 이런 것이 내 평소의 생각에 자리 잡고 진정한 내 것이 되려면 직접적인 경험 속에서 실천이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책들을 보고 사람들의 생각을 들으며 새로운 생각들을 내 속에 많이 가지게 되었다 생각하다가도 아직은 평소의 행동에서 자연스레 행동하지 않거니와 이런 새로운 생각들이 나의 내면에서 정확하게 검증되지 않은 가설같이 느껴져 현실의 삶과는 거리가 있게 느껴진다. 새로운 원칙이나 생각이 자연스러운 나의 행동이나 무의식에 녹아들기 전 까지는 이성을 통해 기억하고 의도적으로 실천/활용하려 노력해야 한다. 이런 실천의 경험들을 통해야만 나의 의식 아래 깊게 이런 것들이 자리 잡을 수 있다. 때문에 언제나 나의 새로운 생각들을 정리해두고 이성으로 붙들고서 평소에 검증하고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나의 의식 발전에 중요한 요소라 생각된다.


혹시나 경험에 의한 실천과 검증이 아닌 관조나 명상과 같은 정신의 깊은 단계에서의 사고로도 나의 것이 아닌 새로운 생각들이 내 것이 되도록 할 수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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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 있는 삶을 위하여>를 보니 내가 최근 들어 주변 사람들에게 많이 얘기하던 생각들과 비슷한 글들이 많이 쓰여있다. 평소 내가 책의 내용에 비해 훨씬 모자란 깊이로 맥락 없이 얘기했기에 나를 되돌아보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나를 관찰하면서 내 인생에 중요한 질문들에 집중한 채 그 답을 고민하는 명상의 시간이 일상에서도 꼭 필요하단 내용이 또 공감이 많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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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 있는 삶을 위하여>의 절반 정도까지 읽었는데, 내용을 보면 지난 여러 달 동안 내가 계속 의문을 갖던 질문들에 대한 깔끔한 해답들이 매우 잘 담겨있다. 내가 앞서 찾았다는 해답을 잘 포함하고 있어서 내가 이 책을 조금 더 일찍 볼 수 있었다면 좋았겠다 생각이 든다. 그래도 과거의 내가 이 책을 봤어도 지금처럼 잘 읽을 수 있었을까 의문이 든다.

이제 세 번째 장인 “실행 단계” 부분을 보는데, 내가 그간 잘 못하던 많은 것들에 대해 얘기한다. 특히 ‘행동에 대한 오해’에 관한 부분은 나를 저격하는 수준으로 나에게 정말 잘 들어맞는 이야기로 보인다. 문장 중 하나만 써본다.

자아확장 기준을 세울 때는 ‘하고 싶어도' 되지만 행동 단계에 와서는 ‘해야’ 합니다.
행동하고 싶은가? 행동할 것인가?

또한 ‘의지력’, ‘동기부여’의 무의미함에 대해서도 얘기한다. 어떻게 동기부여를 얻을까, 의지력을 어떻게 키워야 할까를 고민하던 때가 있었던 나에게는 또 조금 아프게 내용들이 와닿는다. 이 책은 내가 절에서 나간 후 인생의 가치와 목적을 정하는 기간에 한번 더 보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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