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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은 Sep 06. 2022

쌍봉사 일기 7/17~18:<코스모스>

지식과 탐험, 스마트폰이 없는 환경

이틀의 일기가 내용이 많지 않아 하나의 글에 올린다.



7/17 일요일


1

아내와의 통화

어제 또 아내와 길게 통화를 했다. 전화요금이 상당히 많이 나올 것 같다. 아내에게 통화 무제한으로 요금제를 바꿔달라 해야겠다. 아내가 자면서 가위에 눌렸다 말하며 무서웠던 얘기를 전화로 해주었다. 나도 엊그제 있었던 이야기를 해 주며 공포와 같은 감정을 어떻게 다스릴 수 있었는지 알려주었다. 이런저런 더 많은 얘기들을 1시간 넘게 하였는데 다른 얘기들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2

하루의 이야기, 읽는 책들

오늘은 화들짝 아침에 깼는데 6시 반이라 아침을 먹을 수 있었다. 아침부터 밖에 기계소리가 엄청 시끄럽게 들려 공사를 하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 예초 작업 중이었다.


<죄와 벌>은 다 봤기에 아침엔 칸트의 책 <학문으로 등장할 수 있는 미래의 모든 형이상학에 관한 서설>을 읽는데, 가독성도 떨어지고 내용에 흥미도 느끼기 어려워 계속 멍 때리게 되었다. 책을 읽는 중에 갑자기 누군가 방문을 거칠게 두드리기에 조금 불편해서 언짢게 대답하며 문을 여니, 팀장님이 왜 전화를 안 받냐며 화를 내신다. 내가 폰을 거의 안 쓰다 보니 보지 못했나 보다. 예초작업 때문에 차를 다른 곳으로 빼줘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차를 옮겨두고 계속 칸트의 책을 읽는데 오후까지 읽어도 도저히 흥미가 생기지 않아 그냥 덮어버렸다. 그리고 <코스모스>를 펴서 보기 시작했다. 과학교양서적임에도 매우 감성적인 책인데 그 속에 들어있는 우주와 진보에 관한 이야기가 장엄하고 아름다워 절로 마음이 동하며 재밌게 읽고 있다.





7/18 월요일


1

아침, 아기 고양이

어제 아내와 통화를 하고, <코스모스>의 읽고 있던 챕터까지만 다 보고 자야지 하다가 조금 늦은 시간에 자버렸다. 결국 아침에 늦게 일어나서 아침도 거른 데다 비도 계속 와서 한동안 멍하니 의욕 없이 앉아있었다. 그러다 ‘굳이 이렇게 침울하게 앉아있을 필요가 있나' 싶어서 곧바로 움직여 씻으러 갔다. 씻고 고양이에게 가 보았다. 이제는 내가 사료 준다는 사실을 아는 건지 아침에 내가 오면 상자 밑에 숨어 날 보면서 울음소리를 계속 낸다. 사료를 부어서 가까이 가져다 놓고 뒤로 빠지니 곧바로 나와서는 사료를 먹는다. 내가 조금만 움직여도 계속 신경 쓰며 눈치보기에 그냥 그릇 자체를 상자에 넣어주고 방으로 돌아왔다. 언제쯤이면 경계심이 사라질까?




2

날파리

절 주변에는 벌레가 정말 많다. 그중에서 가장 싫은 게 날파리다. 내가 방에서 나와 조금만 걸어도 날파리가 얼굴 주변을 날아다니며 귓가에서 소리를 내는 통에 산책할 때 너무 거슬린다. 왜 날파리는 사람의 얼굴 주변을 맴도는 걸까? 샴푸 향 같은 것들이 날파리를 꼬이게 하는 걸까?




3

<코스모스>, 탐험

현재까지 읽은 <코스모스> 내용의 대부분은 이미 원래 알던 내용이다. 아마 <코스모스> 자체가 워낙 잘 알려져 있다 보니 그 속의 내용도 다양한 매체를 통해 이미 많이 알려진 것이겠지 생각한다. 이미 아는 내용이 많지만 책의 이야기 흐름을 따라가면 굉장히 아름답고 감동적으로 느껴진다. 현재까지 읽은 내용 중에는 특히 케플러의 이야기가 나에겐 가장 감동적으로 느껴졌다. 과학자가 자신이 살아가는 세상의 밝혀지지 않은 지식들을 죽기 전 모두 알아낼 수 없다는 한계를 느끼지만, 그럼에도 조금이라도 세상의 지식을 넓히고자 하는 그들의 욕망과 갈구가 나는 정말 아름답게 느껴진다.


새로운 지식을 향한 탐구 또한 미지의 세계를 향하는 탐험과 같은 게 아닐까 한다. 이미 알려진 지식을 공부하는 것보다 누구도 알지 못하는 숨어있는 지식을 미지의 동굴에서 캐내어 그것이 진짜 아름다운 보석임을 알아내는 순간들이 더 큰 경이로움을 준다. 나는 새로운 지식과 세상을 밝혀가는 탐험이 좋은 사람인 것 같다. 다시 한번 예전에 썼던 모험의 끝에 관한 일기가 떠오른다.




4

가라앉는 의욕

오늘은 하루 종일 비가 오고 있다. 아침을 못 먹고 점심 저녁 모두 식단이 조금 부실했기에 앉아서 책 보는 게 힘들게 느껴진다. 상념들을 잘 다스린다 해도 환경과 상황이 주는 영향은 무시하지 못하겠다. 그러고 보니 어제도 하루의 활력이 낮고 의욕이 없어서인지 일기도 거의 쓰지 못했다. 어떤 이유로 이렇게 마음이 영향을 받는 걸까? 날씨의 영향도 있을 테고, 어제 폰을 잠금 해두었던 앱 ‘fami safe’의 잠금 기능이 조금 풀렸는데 그 틈에 폰을 통해 이것저것 좀 보고 영향을 받은 것도 있을까? 모르겠다.


위에도 썼는데, 절에 올 때 옛날 폰을 가지고 fami safe 앱을 설치해 전화, 지도 기능을 제외하고는 모두 잠가두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다른 앱들을 켜도 약 1~2분간 앱이 구동되다가 조금 늦게서야 fami safe가 기능을 잠가버린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로 인해 인터넷도 노력하면 할 수 있게 되었다. 나의 목표에 대한 집중에 있어서 스마트폰이 주는 방해가 매우 크다는 걸 다시 한번 느낀다.




5

<코스모스>와 우주의 종말

<코스모스>의 뒷부분을 읽고 있다. 역시나 우주의 최후에 관한 얘기도 있다. 난 어린 시절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서 잠을 못 이룬 때가 많았다. 그러다 어느 정도 해답을 찾고서 죽음의 문제를 잊고 지냈지만, 학생 시절 과학적 사실들을 알아가며 우주의 종말에 대한 두려움이 이전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완전히 대체했다. 내가 만약 죽더라도 내가 끼친 영향, 내가 좋아하는 세상과 이야기들이 어떻게든 전해지고 유지되며 내가 살았던 영향이 세상에 조금이라도 남아있다면 내 삶의 의미가 있다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우주는 결국 셀 수 없는 시간이 흐른 후에는 그 어떤 정보도 남지 않고 모든 게 끝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어떤 것에도 의미를 가질 수 없고 허무하다 생각했었다. 요즘 들어 이런 생각을 극복하고 내 삶의 올바른 의미를 세우며 허무에서 벗어났다 생각했는데, 책에서 또 한 번 이런 결말을 읽으니까 다시금 작게나마 기존의 허무함이 속에서 일어난다. 물론 아직 내 삶의 목적을 제대로 세우진 않았기에 앞서 말한 극복도 완전한 상태는 아니다. 그럼에도 다시 허무가 속에서 조금 생겨나는 걸 보면 의식 아래의 더 깊은 나의 변화는 시간이 걸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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