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용은 May 15. 2023

쌍봉사 일기 7/25(월):<제로투원>, <룬샷>

세상을 바꾸는 미친 생각들

오랜만에 이전에 썼던 일기를 다시 정리해서 올린다. 지금이랑은 거의 1년이라는 시간이 차이 나기에 지금의 생각이나 상황과는 많이 달라진 것도 있지만, 그때의 생각을 정리해서 올리는 건 그 나름대로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다 생각한다.



1

아침 공양

어제 아침엔 알람을 맞추지 않고도 6시 반에 일어나 아침을 먹었기에 어제 잘 때도 알람을 맞추지 않고 그냥 잤다. 그런데 일어나 보니 8시였다. 앞으론 그냥 알람 맞추고 자야겠다. 아침 공양시간은 한참 지났기에 그냥 참치캔 사둔 거라도 먹어야겠단 생각으로 참치캔을 가지고 공양간으로 갔다. 공양간엔 매일 계시는 할머님이 나를 보시더니 그냥 반찬이랑 밥 있으니 공양하고 가라 하셨지만, 괜한 일을 만들어 할머님을 귀찮게 만들까 봐 그냥 밥만 조금 퍼서 참치랑 먹었다. 참치 같은 고기는 오랜만에 먹는 거라 오히려 평소보다 배를 더 잘 채우고 돌아온 것 같다.




2

쌍봉사의 강아지들

20일에 방을 옮긴 이후로 현재의 방에서 지내면서 여기 마당에서 기르는 강아지 두 마리인 금강, 반야랑 좀 가까워졌다. 둘 중 한 마리는 노란 털을 가지고 있고, 다른 한 마리는 회색 털을 가지고 있다. 노란 털을 가진 친구가 암컷에 묶여있지 않고 풀려서 지내는데 이름이 뭔지는 모르겠다(나중에 알았는데 반야였다, 반야로 씀). 반야는 둘 중 유독 붙임성이 좋다. 처음 여기로 방을 옮겼을 땐 두 친구들 모두 겁이 많고 눈치를 많이 봐서 내가 가까이 걸어가면 슬금슬금 옆걸음으로 피했었다. 그러다 한번 가까이에서 쓰다듬어 주게 되었는데, 그 이후 반야의 행동이 너무 재밌다. 반야는 낮엔 언제나 스님들 쓰시는 건물 기단 위 구석에 있는 방석에 누워서 지내는데, 내가 마당으로 들어오면 내 눈치를 보다가 내가 가까이 간다 싶으면 방석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켜고는 내 쪽으로 조금씩 눈치 보면서 다가온다. 그리고 내가 가까운 곳에 앉으면 바로 옆에 와 앉아서는 쓰다듬어 달라고 계속 쳐다본다. 조금 앉아있으면 자기 발도 내 무릎 위에 올리며 거의 내 위에 드러눕는다. 그러다가 내가 몸을 일으켜 세워서 방 쪽으로 걸어가면 내 의도를 이해하고 다시 방석으로 돌아간다. 둘 다 정말 겁도 많지만 순하고 사람을 좋아하면서 눈치도 빨라서 가끔 보면 안쓰럽기도 하고 또 귀엽기도 하다.




3

제로투원, 어떤 일이 정말 세상을 바꿀까

어제부터 보던 <제로투원>을 다 보았다. 이 책을 읽으면 굉장히 두근거리는 듯한 뽕(?)이 차오른다. 어서 사회로 돌아가서 세상을 바꿀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책에서는 기존에 없던 새로운 걸 만들어야 한다는 얘길 반복해서 한다. 미친 생각을 하는 누군가가 세상을 바꾼다고 하는데, 책을 보면서 그런 미친 생각이란 게 무엇일까 계속 생각해 보았다. 나는 현재 지구에서 에너지 문제가 가장 심각하고 어려운 문제라 생각하고, 이에 대한 가장 확실한 해결방안이 핵융합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핵융합 발전의 상용화는 먼 미래의 일이라 여겨지기에 세계의 각 국가소속의 연구소나 여러 국가가 모여 만든 연구소에서 연구와 개발이 이뤄지고 있다.


민간에선 거의 관심을 가지지 않고 국가의 주도로 연구가 이뤄지기에 이 기술의 중요도에 비해서 민간의 많은 사람들이 연구에 참여하지 못하고 그 발전의 속도가 더딘 상태라 생각한다. 물론 핵물리 관련 연구자들은 세계 최고의 사람들이 이 분야에 참여해 있겠지만, 핵융합발전과 같은 거대 프로젝트에는 핵융합에 관한 연구자들 뿐 아니라 여러 공학 분야의 전문가들이 많이 필요할 것이다. 공공에서 주도하는 프로젝트에 민간의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이 쉽게 참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거대한 프로젝트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제로투원>에서 말하듯 미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공공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상용화만 성공하면 지구상 모든 산업 중 가장 거대한 산업으로 성장할게 확실한 핵융합 발전이야말로 인생에 한 번쯤 도전하고 성공을 위해 향후 수 십 년 인생을 투자할 만큼 모험적이고 흥미로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최근에 알아본 바로는 세계에서 다양한 핵융합 관련 스타트업들이 생겨나고 투자를 받고 있다고 한다. 특히 Commonwealth Fusion System이라는 회사가 조 단위의 금액을 투자받으며 토카막을 만들고 있다.]




4

아직은 내 것이 아닌 내 인생의 가치와 의미

<제로투원>을 다 보고 <룬샷>을 읽고 있다. 엊그제부터 <과학적 관리의 원칙>, <제로투원> 그리고 <룬샷>까지 계속 현실 속의 기술, 산업, 기업, 미래 이런 주제의 책들을 읽다 보니 나 개인에 대한 깊은 사고가 멀어져 간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성공'이라는 결과를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의 모습으로 상상하고, 그런 상황에서 내가 가질 생각과 말 같이 매우 결과주의적이면서 인생을 의미 있게 사는데 필요하지 않은 고민들이 머릿속에서 생겨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한다. 내가 책을 보며 했다고 하는(그리고 일기에 쓴) 생각들도 나의 내부 깊은 곳에서 생겨난 것이라기보다는 아직은 책을 읽고 그 생각들을 그냥 ‘배운'정도에 그쳐 있다는 생각이 든다.




5

모험의 끝에서 문명을 파괴하려는 시도

저번 7월 10일의 일기 7 항목에서 인간 문명 발전의 끝, 모험의 끝에 관해서 썼었다. 거기서 언급했던 네 사상들 중 마지막인, 스스로 문명을 파괴해 모험이 있던 시기로 되돌리려는 생각을 실제로 가진 사람의 얘기가 <제로투원>에 언급되어 있다. 언급된 범죄자는 실제로 현재의 시대를 더 이상 새로운 모험과 탐구가 남아있지 않은 시대로 정의 내렸고, 내가 썼던 그대로의 논리로 행동하였던 것이다. 시간이 흐른 미래의 어느 시기엔 우리 문명의 발전속도가 더뎌지는 순간들이 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순간들에 위의 범죄자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더욱 많이 생겨나고 이들이 실제로 사회에서 큰 목소리를 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6

룬샷의 1부, 두 가지 상태와 유효한 학습

⌜룬샷⌟을 읽고 있다. 이 책은 재밌는 주장과 일화가 많이 포함되어 있어 재밌게 잘 읽힌다. 시작은 다소 직관적이지 않은 ‘상 전이’라는 현상을 가져온다. ‘상 전이’에 빗대어 조직의 생리나 시스템에 대해서 얘기하는데, 요약하자면 조직은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진 두 ‘상태’의 조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상태는 모험가이자 예술가의 상태로 언뜻 보기에 말도 안 되는 미친 생각을 하고 이를 현실에 가져올 수 있도록 다른 조직과 사람들을 설득하고 움직이게 하는 ‘룬샷’ 조직이고, 다른 상태는 현재 조직이 가지고 있는 자산의 더 효율적인 활용과 운영에 초점을 맞추어 전체 조직이 안전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하는 ‘프랜차이즈’ 조직이다.


책에서 저자는 위 두 각각 상태의 조직에 지나치게 기울어지지 않도록 리더는 ‘룬샷’이나 ‘프랜차이즈’가 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얘기한다. 서로 다른 상태를 가진 조직을 회사 내에서 각각 존재하게 만들고 각각이 그 역할을 명확히 수행할 수 있도록 적절한 자원과 도구, 사람을 지원하고, 서로의 정보가 한데 섞여 물 흐르듯 교환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한다. 여기에 굳이 ‘상 전이’라는 개념이 없더라도 이야기를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는데 오히려 ‘상 전이’를 얘기해 조금 혼란이 되기도 한다.


이 책의 1부 마지막에서 저자는 어떠한 행위를 평가할 때 그 행위로 말미암은 ‘결과’에 독립적으로 행동 이전의 객관적 상황과 상황의 인식, 판단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함을 말한다. 각 조직이 과거의 실패나 성공으로부터 유효한 학습을 하기 위해서는 ‘성공’, ‘실패’ 여부가 아닌 그 과정에서의 판단 원리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이를 이후의 판단에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과라는 것은 많은 경우 운에 크게 좌우되기에 결과를 이용해 중간의 모든 판단과 과정을 평가한다면 잘못된 학습이 쌓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리더는 각 조직이 결과보다는 과정에서 학습을 할 수 있도록 시스템적인 사고를 하도록 이끌고 강조해야 한다는 말을 한다.




7

뉴턴도 거인의 어깨 위에 서 있었다

재밌게 읽었던 다른 대목도 하나 있는데, 뉴턴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간 뉴턴에 대한 나의 인식은 역사적 천재가 개인의 뛰어난 능력만으로 오로지 갈릴레이의 사고실험 위에서 역학, 미적분이라는 거대한 학문 영역의 기초를 탄생시켰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내가 그렇게 인식하고 있던 그런 뉴턴 또한 혼자만의 힘이 아닌, 당대 혹은 이전의 많은 이론가, 학자들의 가설과 아이디어들을 조합하고 그 속에 본인의 뛰어난 직관을 통합해 내 인류사에 위대한 학문적 성취를 이뤄냈다는 것이다. 심지어 더 나아가 그는 자신의 연구에 큰 영향을 끼친 주변의 과학자들의 이름과 그들의 업적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배제시키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나는 간혹 뉴턴 같은 사람의 존재와 그들의 발견에 대해서 연속된 인류사의 필연적인 흐름이 아니라 예측 불가능한, 예상할 수 없는 과학 및 인류사의 큰 특이점 중 하나로 인식했다. 그런데 이 책을 보며 그런 사람의 존재조차 사실 시간이 가며 인류의 지식과 생각의 축적 끝에 나타나는 현상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이런 위대한 발견은 인류의 거대한 진보의 속도에 맞춰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데, 왜 현대에는 이처럼 거대한 발견이 이전처럼 활발히 일어나지 않는 것일까란 생각이 든다. 과거에 비해 현대의 사회적 인센티브 구조가 이런 지식의 발전을 저해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 있는 것일까?


그리고 책 속에 중요하게 나오는 버니바부시라는 사람의 존재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이 사람의 이전까지만 해도 미국이 세계 기술의 리더가 아니었다는 것인데, 미국이란 존재가 지금 세계의 과학기술 분야에선 독보적인 리더로 인식되는데 그런 기간이 매우 짧았다는 사실이 새롭다. 더욱 신기한 건 그렇다면 버니바부시의 영향이 그토록 컸다는 책의 얘기가 맞다면, 뛰어난 운영자(리더) 한 명이 그 조직 혹은 국가 전체의 과학기술 발전에 줄 수 있는 영향이 이 정도나 된다는 것 또한 재밌는 사실이다.

작가의 이전글 쌍봉사 일기 7/24(일):몇몇 생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