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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은 Aug 30. 2022

쌍봉사 일기 7/9(토): <의미 있는 삶을 위하여>

<의미 있는 삶을 위하여>, 나의 밑바닥 신념

일기는 하루의 중간중간에 계속 썼고, 시간이 지난 후 새로 쓸 땐 무조건 새 번호를 붙여 작성했다. 

그렇기에 이어지는 내용처럼 보이는 것도 단락이 나뉘어 있을 수 있다.




1

잠과 생활의 불편


어젯밤엔 잠을 설쳤다. 난 원래 잠에 잘 들지 못한다. 몸이 굉장히 피곤한 게 아닌 이상 머릿속에 이런저런 생각들에 빠져들거나 이상하게 화장실에 계속 가고 싶은 느낌을 받아 쉽게 몸에 힘을 풀고 편하게 누워있지 못한다. 게다가 어제 오전엔 계속 쏟아지는 졸음에 낮잠까지 많이 잤기에 어제는 더욱 잠에 들기 쉽지 않았다. 

며칠 더 있어보고 잠에 들기 너무 어려우면 병원을 한번 가든지 해야겠다. 결국 오늘 아침에 공양시간(6시 30분)에 맞춰 일어나지 못해 아침도 못 먹고 여덟 시 반까지 자버렸다. 슬프지만 어쩔 수 없이 점심까진 굶어야 한다. 아 그리고 샤워실도 화장실도 매우 불편하다. 어제 일기에서 언급했듯 샤워실이 세탁실과 공용이다 보니 너무 지저분하고 다른 사람들이 그냥 외부에서 신던 신발을 신고서 샤워실로 들어간다. 조금 속상한 마음이 들지만 다음에 그런 모습을 보면 부탁을 해 신발을 벗고 들어가 달라해야겠다.




2

밑바닥 신념


<의미 있는 삶을 위하여>에 나오는 밑바닥 신념이란 개념이 있다. 개인의 성장과정에서 상처나 결핍 등에 의해 생겨나는 ‘스스로에 대한 진실'이라고 한다. 자신도 모르게 내면의 깊숙이 자리 잡게 된 이것은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의식에서 떼어내 숨겨두었기에 평소에는 알아차리기 쉽지 않다. 하지만 이 ‘신념' 그대로 나의 부족한 부분이 드러날 때, 강한 마음의 거부반응이 나타난다 한다. 이로 인해 강박이 생겨나고 강박의 가면 위에서 사람들은 살아간다는 것이다. 이전에 군대에서 ‘두란노 아버지학교'를 통해 들었던 얘기와 상당히 맞닿는다. 내 내면의 가장 아래서 나를 지배하고 있는 밑바닥 신념은 무엇일까? 이 밑바닥 신념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이를 해결하려는 노력보다는 내가 가진 '신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포용해야 한다고 한다. 나의 밑바닥 신념이 무엇인지 제대로 바라보는 게 나의 강박과 가면을 벗기 위한 가장 중요한 일이라 생각된다.


뭘까 하나씩 생각나는 대로 써보자

내가 진정 원하는 건 얻을 수 없는 사람(나에 대한 신념이라기보단 결과에 대한 부분이다) → 내가 가진 좋은 것들을 갖출 자격이 안 되는 사람(앞의 생각 아래에는 이게 있다) → 남을 이끌 수 없는 사람(갑자기 자격이 안된다는 것에서 이런 생각이 따라온다)




3

내 평소 욕구와 동기에서 강박이 개입하는 건 아닌지 생각해보자.

그 강박으로 인해서 생기는 좋은 점/안 좋은 점을 판단하고, 그 근원의 밑바닥 신념을 파악해봐야겠다.




4

나의 밑바닥 신념


나의 밑바닥 신념이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위에 일기를 쓰다 보니 그간 생각지 못해본 신념이 나타난다. 

그것은


‘나는 평범한 사람이다.'


이다. 앞에 2에서 썼던 생각들의 끝에 이 신념이 있었다. 누구나 와 같이 어릴 때 나의 사고방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은 부모님들이다. 그와 함께 엄마가 자기 전 머리맡에서 읽어주던 위인전이 있었다. 이전에 ‘두란노 아버지학교'를 통해 비슷한 고민을 했었기에 내 가장 깊은 결핍과 상처에는 그간 아빠의 영향만을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질문을 꼬리에 물고 이어가니 엄마와 위인전 또한 나에게 다른 역할들을 맡아 내 밑바닥 신념을 만들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어릴 적 듣고 읽었던 위인전에는 큰 성과를 이뤄내고 기록된 위인들의 눈에 띄는 에피소드들이 많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위인들의 모습과는 달리 어린 나는 특별함을 이뤄낼 수 있을 거란 생각을 가지기 어려웠다. 내가 잘 해내는 분야들에서는 겸손에 대한 가르침으로 평범함에 대한 강조만을 들어야 했고, 내가 잘 해내지 못하는 분야에서는 격려와 응원보다는 조롱을 받았다. 어린 시절 나는 몸을 쓰거나 의사를 말로 명확히 전달하는 방법에 대해서 형제와 사촌들에 비해 능력이 떨어졌고, 그런 것들에 대해 아빠와 집안의 어른들에게 조롱이나 놀림을 받았다. 그에 반해 내가 매우 어린 나이부터 잘 해내던 수학과 같은 공부에서는 어떤 성과가 있어도 이런 걸 남들에게 뽐내서는 안 되며 남이 못하는 걸 업신여겨선 안된다는 훈육만을 엄마로부터 강조받아 들어야 했다. 그러다 보니 내가 꿈에 가지던 (다소 꾸며지고 각색된) 위인들의 탁월함에 비해 나의 평범함과 부족함만을 강조받으며 내 깊숙한 의식 아래에서 ‘나는 평범한 사람이다'라는 신념이 자라난 것 같다. 이후 삶에서도 이 평범함을 이기려는 강박을 가졌던 것이고, 또 간혹 평범함을 벗어나 뛰어난 성과를 얻더라도 그 결과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외부적인 것, 운에 의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5

밑바닥 신념의 발견 과정

이 ‘신념'을 알아차리게 된 과정은 이렇다.


<의미 있는 삶을 위하여>의 저자 알렉스 룽구는 자신이 배운 새로운 생각들을 책이나 세미나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하는 행위들의 목적, 그러니까 그의 평소 삶의 목적을 ‘(자신이 아닌) 인간의 의식 성장’에 둔다는 것이다. 이 내용을 보고 의식적으로 깊게 생각한 건 아니지만 그냥 문득 내가 알렉스 룽구와 같은 삶의 목적을 가지고 살 수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그러다 문득 나의 성장에 크게 기여한 새로운 생각들을 쉽게 남에게 알려주지 못한다는 짧은 순간의 본심이 속에서 일어났다. 그런 생각이 옳든 그르든 나를 관조해 내가 가진 강박이나 신념을 알기 위해 나는 왜 그런 생각을 하는가 계속해서 파헤쳐보았다. 먼저, 내가 가진 강점을 남들이 흡수해 똑같이 가진다면 내가 가진 소소한 뛰어남도 사라진다는 생각이 드러났다. 꼬리를 물고 그럼 왜 나는 남들보다 뛰어나야 하는 것인가 생각해보니 그 아래 ‘나는 평범한 사람이다'라는 신념이 있었고 이를 이겨내려 하는 강박의 위에 내가 남들보다 뛰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이다.




6

더위와 커피


여름은 덥다. 더운 데다 집에서 지내는 것과 달리 너무 적막하고 아무런 자극이 없어서 그런지 시원한 커피가 너무 생각난다. 어제 템플스테이 관장하는 팀장님께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공간에 대해 여쭤봤는데 따로 그런 공간이 준비되어 있지는 않다고 한다. 커피스틱을 내가 직접 챙겨 와서 공양간의 정수기를 이용해 마시면 된다고 하신다. 내가 아쉬워하니 조금 있다 팀장님이 커피 믹스 몇 개를 가져다주셨다. 그걸 어제 처음 마셨다. 그럼에도 에스프레소 음료가 주는 각성효과와 외부에 대한 자유를 갈망하는 마음에 차 타고 카페에 가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마시고 싶단 생각이 강하게 든다.




7

카페 12:05


그런 마음에 결국 차를 타고 지금 카페에 왔다. 아침을 못 먹어 너무 배가 고팠기에 처음에는 점심시간 이전에 나가 육식을 조금 할까 생각했다. 하지만 딱 내가 정말 추구하려는 정도의 편의 이외에 불필요한 편의나 자극은 멀리하기 위해 점심까지는 기다리기로 했다. 공양간에서 점심을 먹고 잠시 산책 삼아 조금 걷다가 나왔다. 차 타고 십여분 나와 카페에 앉으니 무엇보다도 에어컨 바람이 너무 시원하고 책상이 너무 편해서 좋다. 모처럼 편한 자세와 환경에서 일기를 쓰고 책을 보니 기분이 매우 좋아진다.




8

절에 돌아오는 길


카페에서는 2시간 정도 책을 보고 출발했다. 오는 길에 있는 하나로마트에서 인스턴트커피를 두 가지 사서 왔다. 운전을 해 오는 길은 처음 쌍봉사를 오던 길 그대로였는데 한적한 시골길이 너무 평화롭고 운전하는 내내 편안함이 느껴진다. <의미 있는 삶을 위하여>는 거의 다 읽었기에 다 읽고 나면 책에 대해 좀 더 써야겠다.




9

<의미 있는 삶을 위하여>의 후반부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삶을 위하여>는 뒷부분이 더욱 와닿고 배우는 게 많다.


그중 피해의식에 관한 내용은 특히 마음에 와닿는다. 오랫동안 다닌 회사를 그만두었을 때, 회사를 다닌 기간과 지금의 결과에 대해 피해의식이 하나도 없었다 하면 거짓말이다. 회사를 다닌 기간에 대해 나 스스로 평가를 해왔고, 거기서 나쁜 부분도 상당히 많이 있었다. 그리고 그 나쁜 평가가 있게 된 원인으로 다른 사람이나 상황을 탓하는 부분도 언제나 마음의 한편을 차지하고 있었다. 알렉스 룽구는 피해자의 역할로 남아있는 것이 자아의 편안함을 위해 인생에 대한 책임을 남에게로 떠맡기는 행위라 한다. 내가 인생의 주인이 되지 못함으로 인해 주도적으로 창조적인 일을 해 나가는 삶을 살 수 없게 되고 자아는 확장되지 않고 언제나 인생의 작은 부분만을 차지하게 된다. 그러면 피해자가 되어버린 자아와 함께 불행한 삶만을 살뿐이라 한다. 내 자아가 만들어낸 거짓된 세상이 아닌 진실된 세상을 바라보고, 이미 정해진 과거의 운명을 부정하거나 왜곡하지 말고 받아들여한다는 것을 그리고 인생의 책임과 목적을 나 스스로 만들어내 주도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최근의 깨달음을 여기서도 그대로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저자는 허무주의에 대해서도 얘기한다. 인생에 의미나 가치라는 것은 절대적인 실체가 아니라 나와 사회에서 부여하는 상대적인 실체이다. 지금까지의 인생을 되돌아봤더니 그간 사회에서 부여하던 가치가 의미 없는 것이었고 그걸 좇아오던 내 인생이 무의미하게 느껴진다고 허무에 빠질 필요가 없다. 어차피 의미와 가치는 부여하는 주체에 의한 상대적인 대상이며 의미 없음을 말한다는 건 그 반대에 의미 있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인생이란 대상도 나의 주관에 존재하는 대상이며 그 인생의 의미라는 것도 주관적인 대상으로 내가 부여하면 되는 것이다. 그 인생의 의미 역시 내가 부여한 주관적 대상임을 명확히 알면, 삶을 떠나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게 되고, 죽음의 순간에도 편하게 놓을 수 있다. 최근에 읽었던 <장자>나 니체의 책들, <금강경, 나는 이렇게 들었다> 등을 읽어도 비슷한 맥락의 다양한 통찰들이 있었다. 이 책에서도 저자의 철학? 생각?을 책 후반부에 읽을 수 있어서 책을 덮으니 많은 여운이 남는다.




10

<의미 있는 삶을 위하여>에 대해

<의미 있는 삶을 위하여>는 워크북 형식을 따른 느낌도 있다. 책을 보면 알렉스 룽구의 세미나에 참여하듯 그의 코치에 따라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정하고 자아확장의 길을 걸어볼 수 있다. 그리고 그런 과정 속에서 겪을 수 있는 일반적인 어려움들과 그것들을 이겨내는 방법, 그리고 그 근원의 사고 방향 또한 제시하고 있다. 자아확장의 전체 과정을 담고 있는 책이라 삶을 대하는 일반적인 자세와 철학적 사유와 같은 이야기도 포함되어있다. 읽는 사람에 따라서 일부 내용들은 다소 추상적으로 느낄 수 있을 듯 보이지만 저자의 생각을 열심히 따라가 보면 이런 부분도 추상적이기보다는 매우 현실적이고 일반적으로 빠질 수 있는 함정들에 대한 얘기라 생각한다.


나중에 내 삶의 목적을 정하고 행동을 시작할 시기가 올 텐데, 그때 인생의 속도에 맞춰 다시 이 책을 읽으며 따라가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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