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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은 Sep 01. 2022

쌍봉사 일기 7/13(수):생각의 시작점, 플라톤

머리 비움, 플라톤의 <국가>, 아기 고양이

1

잠, 머리 비우기, 생각의 시작점


가장 먼저 잠에 관해서 쓰고 싶다. 절에 온 첫날은 피곤함에 금방 잠들었지만, 그다음 날부터는 매일이 잠과의 싸움이었다. 사회에서 지낼 때에 비해 취침시간이 이른 데다 평소에도 언제나 잠들기 힘들어했었기 때문이다. 평소 잠자리에 누우면 수많은 생각과 상상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져, 언제나 잠에 드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이럴 때 생각 없이 볼 수 있는 유튜브 영상들을 보며 잠에 들곤 했는데, 여기서는 그렇게 영상도 볼 수 없기에 더욱 잠들기 어려웠다. 며칠을 그렇게 보냈는데, 어제저녁 생각지 못한 새로운 생각을 얻고 잠도 편하게 잘 수 있었다.


플라톤의 <국가>를 보고 있었는데, 내용도 재미가 떨어지는 데다 시간이 늦어 점점 집중력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러다 책과는 관계없는 이런저런 생각과 욕망에 의한 상상들이 계속 이어져 도저히 책에 집중할 수 없었고, 이런 생각과 상상을 끊어내고자 여러 노력을 했다. 책을 덮고 (늦은 밤에) 여러 차례 산책을 다녀왔지만, 여전히 생각들을 끊어내지 못했다. 그러다가 그제 스님께서 알려주신 명상법이 생각나 가만히 앉아 호흡에 집중하며, 나한테서 어떻게 생각들이 생겨나는지 바라보았다. 그렇게 바라보니 앞서 꼬리를 물고 이어지던 생각들이란 게, 처음에는 매우 사소하고 희미한 생각의 파편에서 시작되는 걸 알 수 있었다. 의식적으로 이런 생각의 시작을 바라보지 않는 경우, 희미한 생각의 파편이 무의식 중에 연쇄적으로 다른 생각으로 이어져 결국 구체적인 이미지나 논리적인 사고까지 연결되었다. 하지만 명상을 통해 생각을 비우고, 이런 생각의 파편이 생겨나는 순간을 인지하고, 탄생한 생각이 발전하기 전에 의식적으로 명확히 바라보고 흘려보내면, 내가 원하지 않는 생각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런 명상의 시간을 갖고 나니, 지난 1~2시간 동안이 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고 책을 볼 수 없게 만들던 생각들이 깔끔히 사라졌다. 명상 이후에 책을 보면서 이런 편안함을 강하게 느끼게 되었고, 조금 더 생각을 해 보니, 잠을 방해하는 많은 생각들도 이와 같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결국 머릿속을 떠도는 복잡한 생각도 내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것이고 내가 집착이나 증오로 이를 붙잡고 있던 것이며, 그걸 편히 바라보고 보내줄 수 있는 것 또한 내 의식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다시 책을 보다가 취침시간이 되어 누웠다. 몸에 힘을 풀고 짧은 명상을 통해 생각을 비우고 나니 최근 며칠과는 달리 곧바로 깊은 잠에 빠져들 수 있었다.




2

아기 고양이


앞에서도 썼듯이 나는 손을 씻거나 볼일을 봐야 할 때, 방에서 나와 신발을 신고 건물 몇을 지나 떨어져 있는 공중화장실로 가야 한다. 그 화장실 옆에는 자갈밭이 있고, 거기엔 절의 직원분들이 타시는 차 한두 대가 언제나 주차되어있다. 자갈밭에서 방으로 오는 방향의 반대편에는 담벼락이 있고, 그 중간에 입구가 있어 차와 사람이 지나갈 수 있다. 입구를 지나면 담벼락을 따라 길이 위아래로 이어져 있고, 담벼락의 반대편엔 대나무들이 서 있는데, 그 아래에 작은 개울이 지난다.


얼마 전 화장실을 나와 대나무 길을 따라 절 밖으로 나가려다 입구의 담벼락 옆 짐 더미(?) 위에 엄청 작은 동물 하나가 앉아있는 걸 발견했다. 그 동물은 입구로 걸어가던 나를 경계하며 움찔하였고, 그 움직임에 나는 그 동물을 알아채게 되었다. 처음에는 다람쥐인가 싶었는데, 조금 가까이 가서 자세히 보니 작은 아기 고양이였다. 고양이가 너무 작고 귀여워서 조금 보고 있었다. 혹시나 교감을 할 수 있을까 싶어 서 있는 자리 그대로에서 살짝 무릎을 구부렸는데, 순식간에 짐 더미 사이로 숨어버렸다.


어제 해가 저물어갈 때쯤, 화장실을 나와 방으로 향하다가 그 고양이가 갑자기 생각나서 그 고양이가 앉아있던 짐 더미를 되돌아봤다. 그런데 역시나 뭔가 작은 물체가 거기 있었고, 자세히 바라보니 그 고양이가 나를 경계하며 계속 보고 있는 걸 알아챌 수 있었다. 잠시 고양이를 바라보고 있다가 고양이 눈꺼풀이 내려가길래 가까이 가지 않고 그냥 방으로 돌아왔다.


어젯밤 잡생각을 없애기 위해 산책할 때마다 거길 들르고, 오늘 점심 전까지 몇 번을 가봤지만 한 번도 고양이를 보지 못했다. 그러다 점심을 먹고 절 밖으로 나와 천천히 산책을 하고 있었다. 절 주변에는 차와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는 한적한 도로가 있다. 도로를 따라 절 앞을 걸어가고 있는데, 사자교 지나서 내가 서있는 곳 조금 멀리 도로 위에 작은 고양이가 누워있는 게 보였다. 걸어가며 고양이 쪽으로 가는데 미동도 없고 가까이 갔을 때 몸 주변에 파리들과 개미들이 많이 붙어있는 게 이미 죽은 상태였다. 이 길은 차도 거의 다니지 않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조금 의아하다. 시체의 상태가 거의 온전한 걸 보면 차가 아니라 다른 동물에게 물려 죽었을지도 모르겠다. 이 죽은 고양이가 내가 봤던 그 고양이인지 모르겠다.




3

플라톤 <국가> 읽기


플라톤의 <국가>는 초반부에 정의에 대해 논하는 부분이 정말 읽기 힘들었다. 그래도 최대한 마음을 열고 책이 전하려는 얘기를 받아들이려 노력하며 읽어갔다. 뒷부분에서 지식과 선의 이데아에 관한 얘기들이 나오는데, 플라톤 스스로의 철학과 사상 그리고 그에 대한 독창적인 비유들이 나와서 흥미가 간다. 플라톤이 말하려는 내용을 최대한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가며 읽고 있다. 아직 내용이 머리에 명확하게 스며들진 않는데 좀 더 마음을 비우고 읽어가야겠다.




4

플라톤 <국가>와 정치체제


<국가>에서 여러 정치체제를 비교하는 부분을 보고 있다. 우리가 흔히 나누는 독재정-과두정-민주정의 구분과 달리 본인만의 방식으로 구분한다. 그중 민주정을 여러 형태의 과두정에 비해 더 열등한 정치체제로 여기는 듯 말한다. 민주정의 자유와 평등에 말미암은 다양성과 화려함의 장점은 인정하지만 동시에 지나친 자유로 인한 무절제함에 대해 그리고, 체제를 이끄는 사회 전체가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가치'의 부재로 인해 판단 기준이나 사유가 얕을 수밖에 없음을 지적한다. 가령 스파르타를 예로 든 명예 중심의 과두정은 재판과 같은 사회의 결정 과정에서 ‘더 명예로운' 판단을 내리면 되기에 모두가 어떤 것이 '더 명예로운' 선택인지만 논하면 된다. 그렇기에 모두가 같은 기준으로 고민하게 되고 의사결정에 깊은 고민을 쉽게 나눌 수 있으며, ‘명예'라는 기준으로 모두가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소수 지배체계라고 책에서 이름 지은 체제에서도 ‘재화'와 ‘부'라는 기준이 있기에 조금 더 천박할 수 있지만 같게 볼 수 있다.


하지만 플라톤이 살던 시대의 민주주의란, 중심 된 판단의 가치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제약 없는 자유를 가진 다수의 민중이 중요한 결정들을 내렸다. 그렇기에 한 가치를 중심으로 깊은 논의를 통해 의사결정이 이루어질 수 없었고, 대중의 호응을 가장 많이 불러일으키는 웅변가에 의해 여론이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 시대의 민주국가는 헌법을 중심으로 여러 가치들을 강조하고, 가치들 간의 경쟁으로 정치가 움직이는 것에 비해 이 시대의 민주국가는 조금 달랐다 생각이 든다. 플라톤은 가장 낮은 단계의 정치체제로 ‘불법적인 독재정'을 말한다. 결론적으로 그는 불법적 독재정의 탄생 바탕에는 민주주의의 과도한 자유가 있다고 한다. 그가 묘사하는 민주주의가 독재정으로 바뀌어가는 과정이 지금의 현실에도 충분히 일어날 만큼 자연스럽고 합리적 과정이라는 게 재밌게 느껴진다.




5

플라톤 <국가>와 정치체제 2


<국가>의 다양한 논의와 그 전개과정에서 납득되지 않는 부분이 (특히 초반에) 많지만, 문제의식 자체나 중간중간 나오는 몇몇의 논의는 현대에도 충분히 논의될 수 있는 내용들이다. 플라톤의 통찰 자체는 시대를 앞선 부분이 많구나 느낀다. 먼 옛날이지만 현재 우리의 정치체제와 같은 민주정 아래 살아가는 사람이기에 비슷한 고민과 논의를 하는 것인가 생각이 들기도 한다.


플라톤은 책에서 민주정을 비판하고 그보다 더 높은 수준의 많은 정치체제를 예로 들었다. 그렇지만 민주정 만이 모든 정치체제에 대한 자유로운 논의장이 될 수 있다고 말함으로써 본인의 사유가 민주정 아래서 가능했음을 시인한다. 자유롭고 다양한 논의 자체가 민주정 아래서만 가능함을 스스로 알고 있음에도 그는 왜 억압적이고 기만적인 정치체제가 모든 정치체제 중 가장 으뜸이라고 한 걸까? 최고의 상태라고 함은 어떤 고정되고 완전한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뀌어가는 세상과 사람의 인식에 따라 그 답을 유연하게 계속 바꿀 수 있는 상태에 관한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물론 플라톤도 이상을 가정했기에 그가 바라본 당시의 현실에서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스냅샷을 설명했다 생각한다. 하지만 ‘그 체제가 과연 유지될 수 있을까?’ 생각하면 인간의 본성을 금욕적 가르침으로 가둬둘 수 있다는 가정이 필요한데, 나는 불가능하다 생각한다.




6

불교에 대한 의문


그제부터 가졌던 불교의 기복신앙적 모습에 대한 의문으로 결국 스님께 질문을 드렸다. 스님도 말씀하시길 초기의 불교에선 당연히 숭배의 대상 없이 수행과 이에 대한 가르침에만 집중했다 한다. 하지만 역사적 맥락 속에서 신자들을 이끌고 수행에의 동기 등 여러 이유로 신념체계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말씀하신다. 간혹 불교의 역사 속에서도 비판받아오던 부분이기도 했다 한다. 그렇지만 여전히 불교에서 최고의 지향점은 깨달음에 있고 신앙적인 형태는 도구일 뿐이라 하신다. 물론 스님들 중 의견이 다르신 분들도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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