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의 변론, 크리톤, 파이돈>, 상기설
소크라테스의 죽음과 사상
<국가>를 본 이후 내가 사 왔던 다른 대화편들도 다 보았다. <소크라테스의 변론, 크리톤, 파이돈>이었다. 소크라테스에 대한 재판의 날, 소크라테스가 처형당하는 날에 있었던 일에 관한 대화편이다. 책을 읽고 궁금한 것이, 이 대화편 속의 소크라테스의 말은 어디까지가 실제 소크라테스의 말이고, 어떤 것들이 플라톤의 생각인지이다. 이전에 봤던 <국가>에서는 주장들 중 대부분이 크게 공감가지 않고 내용도 와닿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번 책에서 소크라테스가 죽음과 운명을 받아들이는 태도와 그 기저의 인생의 목적과 소명의식 등에서는 이전에서와는 달리 깊게 공감할 수 있었다. 이전에 <국가>에서의 핵심 질문(정의는 추구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해 <이방인>으로부터 내가 얻었던 생각이 거의 그대로 떠오르는 말과 행동들이었다. 이런 사상을 가진 사람이 왜 그때 그 질문은 그런 말로 대답을 했던 걸까? 소크라테스가 갖는 사상의 깊이와 플라톤이 갖는 사상의 깊이가 달랐던 걸까? 플라톤의 책 속에서 나타나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사상적 관계를 잘 몰라 조금 아쉽다.
플라톤의 상기설
플라톤이 얘기한 것 중 상기설에 관해서는 재밌게 읽었다. 플라톤은 이 세상과 다른 이상적인 실체에 해당하는 세상이 존재하며,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를 비추는 그림자 세상이라고 주장하고, 이를 이데아론이라 한다. 상기설은 이 이데아론에서 시작한다. 이상적 세상에 존재하는 지식과 진리들은 우리가 태어나기 전 이데아에서 이미 알고 있던 것이며, 단지 그림자 세상에 내려와 이를 잊고 살아가는 중이며, 질문과 변증법을 통해 우리 속에 있는 진실을 스스로 상기해낼 수 있다고 하는 것이 상기설이다. 상기설의 배경에 있는 이데아론은 깊게 고민해보지 않았지만, 상기설의 방법론적 부분은 앞서 ‘상승 대화법’과도 비슷한 부분이 있는 만큼 재밌게 읽었다.
어떠한 의견으로 사람을 설득하는 데 있어서 논리적 대화나 설명, 가르침 등은 크게 도움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설득하려는 상대 스스로가 그 문제와 의견에 집중하도록 만들고, 그의 무의식이 그 주제에 관한 아이디어를 스스로 찾도록 만드는 것이 설득과 가르침에 더욱 유효하다 생각한다. 논쟁과 설득을 이용한 다툼보다는 서로가 생각하지 못한 상황과 질문을 나누는 것이 대부분의 경우에 더욱 건설적인 대화의 방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