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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은 Sep 05. 2022

쌍봉사 일기 7/16(토):<죄와 벌>, 아기 고양이

<죄와 벌>을 읽고, 사념 끊어내기, 아기 고양이 가까워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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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와 일기

처음 절에 올 때의 생각과는 달리 아내와는 자주 통화를 하고 있다. 다만 아내와 통화를 많이 할수록 일기는 조금 적게 쓰게 된다. 일기를 손으로 공책에 쓰다 보니 같은 얘기를 하더라도 말로 하는 것에 비해 시간도 오래 걸리는 데다 여기 환경상 일기를 쓸 때 자세도 좋지 않아 몸 또한 불편하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에게 내 일상의 이야기와 생각들을 입으로 얘기하고 나면 이를 글로 써 남기고 싶다는 욕구가 줄어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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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봉사

쌍봉사는 내가 가 본 적 있는 절 중 나에겐 가장 매력적인 절로 느껴진다. 처음 절에 도착했을 때부터 절 내에도, 주변에도 사람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데다 오래된 절 풍경이 뭔지 모를 끌림을 주었다. 일부 절 건물은 주변과 안 어울리게 너무 크고 신식에 깨끗이 채색되었지만, 그래도 나머지 건물들과 오래돼 보이는 큰 나무들, 3층의 높은 대웅전 등이 높지 않은 주변 산들 위로 하늘과 닿아 보여 상당히 예쁘다. 평소에도 낮이나 밤이나 절에는 사람보다 새가 훨씬 많아 이 공간이 마치 사람이 아닌 새를 위한 공간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3

아기 고양이

엊그제 아기 고양이에게 밥을 처음 준 이후로 방에서 계속 아기 고양이가 생각났다. 스님께서 챙겨주시는 게 개사료인데, 그 고양이는 아직 스스로 사냥도 못 할 정도로 어리기에 조금만 지나면 영양적으로 문제가 생길 것 같았다. 내 아내는 결혼하기 전 본인의 언니와 함께 살며 고양이를 키웠고 아직도 가끔 혼자 사는 언니네에 들러 고양이를 봐주고는 한다. 그래서 평소 길을 가다가 길고양이를 만나면 나는 어서 지나가려 하고, 아내는 귀여워하며 작은 간식을 주기도 하고 쓰다듬기도 한다. 그런데 이번엔 내가 절의 아기 고양이 때문에 사료를 살까 하며 아내한테 굳이 전화를 했다. 아내는 당연하게도 사료를 사서 고양이에게 먹이는 걸 찬성한다.


사료를 사기 위해 몇 번 갔던 적이 있는 이양면의 하나로마트로 갔다. 도착해서 보니 1.5kg짜리 전 연령용 사료가 있어 마지막으로 아내에게 확인받고 이 사료와 츄르 한 봉지를 샀다. 사는 김에 내 간식도 조금 살까 한참 고민하다가 절에서의 생활처럼 식습관도 조금씩 적응되겠지 생각하며 아무것도 안 사고 나왔다. 나중에 절에서의 배고픔에 대해서도 한 번 써야겠다. 무튼 나온 김에 시간이 아직 이른 오후라 저번에 갔었던 가까운 ‘열두시오분’ 카페로 갔다. 이번엔 카페에 아무도 없었다. 조금 서 있으니 아주머니가 오셔서는 점심을 먹고 있었다시며 주문을 받으셨다. 원래 좋아하는 바닐라라떼를 시켰는데, 생각보다 맛이 아쉬웠다.


카페에 앉아서 <죄와 벌> 1권을 마저 다 보고 일기를 조금 쓰다 나왔다. 이번에 절에서 나올 땐 팀장님께 말씀 안 드리고 나왔기에 조금 일찍 들어갔다. 방으로 가서 먼저 츄르를 하나 꺼내 고양이를 찾으러 갔다. 이번엔 그간 있던 곳이 아니라 자갈밭 옆 배수로의 집수정에 있었다. 츄르를 직접 주려했지만 여전히 가까이 가면 숨어버려서 일단은 작은 플라스틱(칫솔 포장재) 위에 조금 짜 줘보았다. 냄새가 아주 끌리는지 평소와는 달리 내가 조금만 뒷걸음으로 멀어져도 주변의 냄새를 맡으며 두리번거린다. 츄르를 찾고서는 정신 나간 듯 먹는다. 먹는 게 조금 불편해 보여 바닥에도 짜줘보고 작고 평평한 돌을 찾아 그 위에 짜서도 줬다. 진짜 잘 먹는데 여전히 경계가 심하다. 츄르는 다 먹어서 새로 사 온 사료도 조금 줘보았는데, 개 사료를 먹던 것에 비해 이것도 엄청 좋아한다.


조금 있다 아예 작은 상자로 사료그릇을 만들어 사료를 부어 두었다. 나중에 와서 보니 사료를 조금 남겨뒀는데, 개미가 사료그릇을 새까맣게 채우고 있었다. 나중에 사료도 더 주고 상자에 들어있던 개미들 털어내고(개미가 후두둑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사료를 바닥에 뿌리니 바로 잘 먹는 걸 보니 배가 불렀기보단 개미가 많아서 안 먹고 있었던가보다. 어제 이렇게 사료를 사다 주고 오늘도 계속 사료를 가져다주며 밖을 나가거나 화장실을 갈 때마다 한 번씩 들러서 고양이를 보고 갔다. 내가 사료도 직접 사다가 고양이에게 먹일 거라고 상상도 못 했다. 그렇지만 여기서 지내는 기간 동안 책 말고는 유일한 낙이 아기 고양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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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과 외식

어제저녁 공양시간에 맞춰 공양간에 갔는데 공양간 불도 꺼져있고 반찬통들도 모두 닫혀있고 사람도 아무도 없었다. 이상하다 싶어서 일단은 고양이나 한번 보고 다시 와봐야겠다 생각하고 다시 방 쪽으로 돌아갔다. 고양이에게 가는 길에 절 쪽으로 나오시는 스님을 봤다. (방에서 절 쪽으로 가면 그 끝에 공양간이 있다) 공양간 가시나보다 싶어서 일단 고양이 보러 가서 좀 보다가 바로 공양간으로 돌아갔는데, 스님이 불도 켜시며 반찬통도 준비하시며 있으신 거다. 여기 사람이 없더라도 공양하러 온 아무나 이렇게 준비하면 되는구나 싶다. 밥을 퍼면서 스님께 “다들 어디 갔나 봐요”라고 얘길 하니 스님께서 아마 다들 그러신 거 같다고 하신다. 금요일 저녁이기도 하고 아무래도 절밥만으로는 좀 부족할 수밖에 없다고, 다들 나가서 드시는 거 같다고 하신다. 어렴풋이 생각은 했지만, 다들 한 번씩 나가서 외식을 하시는구나 싶었다. 나도 매번 공양시간 1~2시간 전부터 배가 고파서 견디기 힘들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공양시간에 반찬들이 보통 4~5가지 정도 나오는데, 대부분이 나물 위주이고 간혹 한 두 가지 정도 단백질, 지방이 좀 포함된 콩, 버섯, 두부 등이 나온다. 그러다 보니 식사에서 기름기는 밥 위에 뿌리는 들기름이 대부분이고, 배는 밥 먹은 지 2시간이면 다 꺼져버리고, 식사의 열량도 상당히 낮은 듯하다.


그래도 식습관 자체가 여기에 적응되면 배고픔은 조금 가실 거라 기대하고, 또 맛있고 기름진 음식 역시도 여기서는 불필요한 도파민 역할을 할 거라 생각해 어제 낮에 나갔을 때도 아무런 간식도 안 사 왔었다. 그런데 여기서 나보다 더 오래 지낸 다른 사람들이 여기에 적응한 게 아니라 다른 방법을 통해 배를 채우고 있었다니… 약간은 어리둥절하다. 다음에 나도 (나주에서 공보의를 하고 있는) 평강이네 놀러 가서 같이 고기도 먹고 놀다 올까 고민이 된다.


밥과 관련된 이야기는 여기까지고, 저녁을 먹고 방에서 책을 보다 밤에 잠시 물을 뜨러 공양간에 들렀는데, 반찬이며 불이며 다 정리가 안되어있어서 내가 정리하고 나왔다. 오늘은 진짜 공양간에 사람이 거의 안 왔나 보다.




5

사념 끊어내기

어제 근거 없는 생각의 파편이 망상으로 이어졌다가 그로 인해 작은 깨달음을 얻은 일이 있었다.

시작은 어제 자기 전 마지막으로 화장실을 가는 길이었다. 가는 길에 공용 샤워장이자 빨래방의 불이 켜져 있고 문도 열려있는 게 보였다. 이렇게 두면 밤새 벌레가 들어오기에 불을 끄려고 보니 안에 사람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신발이 밖에 놓여있지 않은 걸로 봐서 누군가 신발을 신고 세탁을 하고 있는 듯했다. 이전에도 신발을 신고 샤워실을 들어가는 사람들 때문에 샤워실이 너무 지저분해져 불편을 겪었기에 한번 말을 해야겠다 생각했다. 안에 계신지 먼저 불러보았다. 안에서 한 사람이 나오는데 얼굴은 익숙하지 않았다. 아마 템플스테이로 지내시는데 다른 방들과 동떨어져 혼자 지내시고 매일 마스크를 쓰고 계셔서 내가 잘 알아보지 못하는 분인 듯했다. 얼굴을 이렇게 가까이 보는 건 처음이었는데, 처음 받은 인상은 눈빛이 굉장히 멍하고 초점 없어 보인다는 것이었다. 내가 신발을 밖에 벗고 이용해달라 부탁드리며 여기서 샤워해서 그런다며 나왔는데, 그분 표정이 썩 유쾌해 보이지 않아서 그 초점 없는 눈빛이 조금 더 무섭게 느껴졌다.


그렇게 방에 와서는 책을 보다가 잠에 들기 위해 잠자리에 누웠다. 그렇게 누워있으니 갑자기 아까 그 세탁실에서 봤던 사람의 눈빛이나 얼굴이 계속 생각이 나는 거다. 잠들기 전엔 원래 생각이나 상상이 끝도 없이 이어져 가끔 말도 안 되는 생각으로까지 이어진다. 누워서 그 사람이 혹시나 이상한 사람이진 않을까, 나에게 한 소리 들은 게 마음에 안 들어 해코지하려 마음먹었다면 어떻게 할까, 방문을 완전히 잠가두고 지내지 않는데 밖에서 누군가 침입해오면 어떻게 하나 등 끝없이 일어날 리 없는 망상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하찮은 공포감에 잠이 못 들고 있다가 문득 이런 이어지는 공포감도 다시 보니 내 머릿속에서 스스로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었다. 이성적으로 판단해 의미 없고 불필요한 공포가 명확하였기에 7월 13일에 썼던 일기에서와 같이 의식적으로 생각의 뿌리를 관찰하고 끊어내고서 불필요한 상상을 그만두고 편하게 잘 수 있었다.


진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고 머리를 복잡하게 하는 여러 생각들을 스스로 관찰해 끊어낸다면 현재의 상황과 감정을 더 온전히 느끼며 살아갈 수 있다 생각한다. 과거의 특정한 경험에 대한 감정적 집착이나 슬픔, 어떠한 대상을 향한 불필요한 욕구와 갈망, 미래에 대한 망상적 상상 등이 모두 이런 의식적 관찰을 통해 끊어낼 수 있는 생각들이다.




6

새벽에 자다 말고 화들짝 깼다. 깨고 보니 어슴푸레한 빛이 보이고 예불 전 종소리가 들렸다. 아마 새벽 네시쯤 예불 직전이었던 것 같다. 잠에서 깨기 전 꿈에서 <죄와 벌>을 읽고 있었고 그 속에 말도 안 되는 장면이 있었다. 그 내용에 놀라 깼는지 종소리에 놀라 깼는지 모르겠다. 며칠 전에도 자다가 진짜인지 모를 벌레 소리에 놀라 깼는데 이번에도 또 이런다.




7

차담과 피해의식

오늘도 언제나처럼 점심을 먹고 방에서 <죄와 벌>을 읽고 있었다. 그러고 있는데 저번처럼 스님께서 방 앞에 오시더니 커피 내려주신다 하셔 저번처럼 넷이 스님과 앉아 대화를 나누었다.


차담을 하며 그간 오해했던 사실을 하나 바로 알게 되었는데, 여기 세 분은 나가서 밥을 드시는 경우가 없다는 것이다. 대신 간식을 많이 쟁여두고 방에서 간식을 드실 때는 많다고 하신다. 이 분들 말고 아기와 함께 지내는 부부만 차를 타고 자주 밖을 나가시는 것 같다. 그리고 뜻하지 않게 스님의 질문에 답하다가 내가 차를 가져왔다는 사실을 다른 분들이 알게 되었고, 다른 분들이 한번 외식을 하러 가자 부탁을 했는데, 내가 조금 꺼려하며 대답을 제대로 못했다. 나 스스로 이런 부탁이 꺼려졌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이런 꺼리는 마음도 부당한 피해의식이었다. 나 혼자서도 밖에서 기름지고 맛있는 밥을 먹고 싶단 생각을 계속했었고, 카페도 한 번씩 나가기도 한 만큼 원래의 목적과 약간 맞지 않더라도 기분 내킬 땐 그런 행동을 했었다. 그런데 이번엔 다른 사람의 의지로 그런 행동을 한다는 것에서 스스로 꺼리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되돌아보면 아내나 친구와의 관계에서도 이런 피해의식을 느낄 때가 많았기에 다시금 뉘우치게 된다.




8

<죄와 벌>

<죄와 벌>을 다 읽었다. 읽는 중에, 다 읽고, 마지막으로 해설을 읽고 여러 가지 생각들이 들었다.


책을 읽으면서 등장인물들에 대한 묘사가 상당히 솔직하다는 생각을 했다. 각 등장인물들의 내면을 상당히 투명하고 멋 부림 없이 표현한다. 과장된 인물은 과장되고 기만적인 인물은 기만적이게 각 인물의 내면이 읽는 나에게 상당히 솔직하고 설득력 있게 전달되었다. 주인공인 라스콜니코프에 대한 묘사에선 전체 이야기 내내 상당히 숨 막히고 현기증이 올 것 같이 느껴진다. 그의 독백을 따라가면 그의 생각에 공감되어 읽어가게 되고, 예심판사와의 대화에선 그와 같이 가슴이 짓눌리는 압박 속에서 예심판사의 말을 읽게 된다.


책을 다 보고서 혼자 걸으며 주인공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논문으로 쓰기도 한 주인공의 사상이 겉으로는 니체의 사상과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주인공의 사상에서 초인이란 영웅적인 삶을 사는 사람의 겉으로 드러나는 삶의 결과적인 측면 한 부분만을 확대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어떤 인생의 경로를 살아왔냐?’ 보다는 ‘어떤 목소리에 응답해 살아가냐?’에 더욱 초점을 맞추는 니체의 초인 사상과는 사실 전혀 다른 사상인 것이다. 그렇기에 주인공은 자신이 우상시하는 영웅들의 삶의 결과만을 본인의 삶에 적용했으며, 그 적용에 의해 본인의 삶에 나타나는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삶의 결과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한다는 ‘아모르파티'가 없는 강박적 결과 주의자일 뿐이다. 본인이 정의하는 범인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처음의 운명을 강박적으로 벗어나고자(그는 머리가 뛰어나고 잘생겼다고 표현되기에 남들에 비해 출세한 삶을 살아갈 것이지만, 소설 속 표현을 따르면 그에겐 툴룽도 이집트도 없다) 본인의 신념에 따른 행동으로 스스로를 시험하지만, 결국 이겨내지 못하고 신념을 가진채 눈을 가리고 살아가게 된다. 어떤 깨달음이나 초월도 없는 눈 감음만이 남은 결말이지 않나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해설을 읽으며 든 생각이다. 주인공의 사상이 상당히 진부하고 보통의 것이라 평가하는 해설이 있었다. 이를 보며 나는 주인공과 비슷한 사상들에 대해 생각해보았던가 싶었다. 니체의 책을 읽기 전까지 비슷한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주인공의 사상을 읽고서는 위에 썼듯 이번에야 깊게 고민해보고 생각을 이어나가 보았는데, 해설을 보니 내가 가진 생각이나 지식의 스펙트럼이 너무 좁았나 생각 들었다. 심지어 니체의 사상도 매우 많이 보급된 이미 보편적인 생각의 틀이란 듯 해설에서 서술되어 있었다. 나는 최근에 들어서야 알게 된 이런 사상도 이미 매우 보편적인 생각인 듯 쓰여있으니 과거의 내가 많이 부족했음을 느끼며 마음이 아팠다. 그러다가 왜 나는 나의 부족함에 마음이 아플까 바라보았더니 이전에 적었던 “나는 평범한 사람이다"의 밑바닥 신념을 거부하는 강박임을 알아챘다. 내가 남에 비해 부족한 부분이 있다는 건 당연한 일이다. 지금처럼 부족한 부분이 있더라도 내 생각을 발전시켜가며 성장해가면 된다.




9

귀여운 아기 고양이

아기 고양이는 내가 계속 밥을 주는데도 나를 경계한다. 어제저녁부터는 아내가 알려준 대로 먹을걸 주고서는 멀리서 움직이지 않고 쳐다보기만 하거나 먹을걸 두고 그냥 자리를 떴다. 이렇게 하다 보면 언젠가는 경계심이 조금 풀어지겠지? 그나저나 이 고양이는 식욕이 엄청 좋다. 저 정도 크기의 고양이가 내가 주는 사료를 다 먹는 거면 엄청 많이 먹는 것 같다. 사료를 많이 두고 스스로 조절하며 먹게 하면 개미가 너무 많이 붙어서 잘 먹질 않고, 조금씩 계속 주면 주는 대로 다 먹어버려서 괜찮은 건지 모르겠다.


아까 츄르 줄 때는 내가 조금씩 짜서 주는데, 빨리 달란 듯 상자 밑에 숨어서 조용히 야옹 소리를 계속 낸다. 소리 내는 건 이번에 처음 들었다. 하지만 츄르를 주러 가다가 포장지에 3개월 이내의 어린 묘에는 주지 마라 쓰여있는 걸 보았기에 내일부터는 츄르를 주지 않을 것이다. 이 귀여운 모습을 츄르 이용해 이렇게 가까이서 이제 못 본다는 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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