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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열린 Oct 20. 2023

30대, 너 커서 뭐가 될래?

어릴 때는 욕심이 많아서 하고 싶은 것도 많았다.

엄마가 노래를 시작하면 방에 있다가도 달려 나가 엄마의 입을 틀어막고 직접 노래를 불렀다. 그 순간의 꿈은 가수였다.

요리 놀이해도  혼자 하겠노라 고집을 피워 부엌을 엉망으로 만들었고 청소도  홀로 해야 직성이 풀렸다. 엄마는 이중으로 집을 치우느라 미간에 주름이 늘었다. 가족 나들이를 가면  고약한 버릇은 심해져서 사진기의 셔터도 직접 눌러야 했다. 일회용 카메라는 내가 즐기는 아름다운 순간의 초점을 항상 망가뜨렸는데 상관없었다. 나는 짧은 간, 요리사와 사진작가 사이를 오가며 달콤한 꿈을 꾸었다.

유치원에서도 혼자 발표하는 것을 좋아했다. 개인 장기 자랑 때 울지 않는 어린이로 칭찬을 많이 받았다. 부모님은 확신했고 나도 확신했다. 도전심 강하고 자신감 넘치는 사람으로 성장할게 분명할 거야.

땡. 어느 순간 빗금표시가 나를 정의한다.

좌절은 나의 버릇을 고쳐놨고 순식간에 겁 많은 어른으로 돌변했다.

그 많던 하고 싶은 일들은 어린 시절의 추억그저 실속 없이 채워놨다.


여러 꿈들이 나의 숙면을 방해한다.

침대에 누워 눈을 감으면 필름이 재생된다. 공상과학 영화에 나올 법한 주인공이 되기도 했고 미지의 존재에게 쫓기는 공포스릴러의 피해자가 되기도 했다. 가끔은 얼굴이 보이지 않는 상대와 열렬한 로맨스를 찍기도 했다. 잠에서 깨면 꿈 때문에 머리가 멍했다.


하나의 꿈이 나의 숙면을 방해한다.

침대에 누워 나의 꿈을 곱씹어본다. 그때 그 시절, 하고 싶었던 직업들은 그저 어린이의 가벼운 말장난이 되었고 난 꿈 없이 성장한 어른으로 시시한 30대를 맞이했다. 남들보다 걷기도 빨랐고 말도 일찍 텄다. 재수 없게도 진짜 꿈은 한참 늦게 찾았다.

한 음절의 동음이의어가 나의 밤을 괴롭게 만든다.

지금은 잃어버린 게 분명한 고약한 버릇 때문에 벌을 받고 있다.


進路, 앞으로 나아갈 길.

서른 살이 넘어서 진로 고민을 하게 될지 몰랐다.

남들은 아기 낳고 한 생명을 책임지는 나이가 됐는데 나는 나의 길조차 책임지지 못하게 생겼다.




친구들이 내게 글을 써보라고 권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나의 글을 보지도 않았고 앞으로 읽지도 않을 터인 게 분명한데 어떤 근거로 글 쓰는 삶을 추천하는지 궁금했다.

내가 블로그를 해서? 아니면 사연 이벤트에 당첨이 잘 돼서?

블로그에 쓰는 여행일기는 그저 기록에 불과했고 운 좋게 당첨된 이벤트 경품들은 나의 작문 실력이 아닌 남들보다 두세 배 긴 문장들의 노력 때문임이 분명했다.


자신감 넘치던 어린 시절은 신기루 마냥, 나는 조용히 골방에 갇혀 글을 썼다. 글을 써보라는 주위의 권유에는 생각도 안 해봤다는 듯이 웃음을 지었지만 미소 뒤에 숨겨진 나의 꿈은 회피와 가증으로 얼룩져있다.

진짜 뜬구름 잡는 것은 나인지도 모르겠다.

그때의 나는 어디 갔을까.

많은 꿈들을 뒤로하고 이제야 정착하고 싶어 할까.

앞으로 나아갈 길을 뒤늦게 발견했을까.

 스스로 고통 속에 처박힐까.


시간을 내어 지난 12년, 학창 시절 생활기록부를 훑어봤다.

그 어디에도 희망진로에 작가라는 글자가 적혀있지 않다.






Photo by Jakob Owen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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