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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오 김 May 25. 2024

언어학자는 맞춤법을 잘 알까? - 규범문법과 기술문법

prescriptive vs. descriptive grammar

이렇게 안 쓰면 언어학자 님이 이노옴 하실까?


규범문법: ~하면 안 된다. (prescriptive)

기술문법: 관찰해 보니 ~하더라. (descriptive)

(생성문법: 원어민의 머릿속 문장 생성 프로그램모사하고자 함)



- '문법'이란 어떤 규칙인가?


'법'이나 '규칙'이라고 하면 우리에게 일반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그런 이미지에서는,

- '법'이 허용하는 인간 생활 양식의 특정한 범위가 있다.

- 그 범위를 벗어나는 행위는 금지되어 있으며,

      (예를 들면 '남의 물건을 훔치면 안 된다')

- 그러한 금지 규정을 어기는 경우 다양한 차원의 불이익이 따른다.

     (남의 물건을 훔치는 사람은 여러 처벌을 받거나 적어도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 이러한 금지 규정은 인간 개인의 본능적인 욕심을 억눌러 공공의 이익을 증진하기 위해 만들어져 있다.

- 금지 규정이 그 성질상 개인의 본능적인 욕심을 제어하는 것이기 때문에,

- 인간에게 본능적인 욕심이 있는 한

   누구나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자칫 규정을 위반할 위험이 있다.


'문법/어법'이라는 말에 '법(法)'이 들어가서 그런지,

언어학과 친하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문법'도 대략 그런 규칙의 일종인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듯하다.


요컨대, 대부분의 사람들은

- 한국어 원어민이라 해도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한국어의 문법 규정을 어길 위험이 있다고 생각하고,

    (예를 들어 "우리는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됐어'의 '됐'을 '됬'으로 쓰는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와 같이 생각하고,)

- 혹여 그런 '위반'(에 대한 지적)이 있는 경우에 당사자는 응당 반성하고 조심해야 마땅한 것으로 여겨진다.


'문법 규정'을 소위 '위반'하는 것이 남의 물건을 훔치는 것만큼 윤리적으로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야 없겠지만,

적어도 교양이나 학식의 부족을 나타내는 지표로 받아들여지는 일은 흔하며

따라서 많은 한국인들이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한국어 문법 규정을 잘 지키고자' 노력하는 편이다.


이상과 같은 것이 '문법'이라는 개념에 대해 으레 갖는 통념적인 인상이다. (라는 것이 나의 인상이다.)


그러나,

막상 '문법'을 주된 연구 대상으로 삼는 언어학이 문법을 바라보는 관점은 상당히 다르다.



- 규범문법기술문법


이상 다룬 것과 같은 '문법'의 개념을 언어학에서는 '규범문법'이라고 분류한다.

'규범문법'은 '기술문법'과 대비되는 개념이다.


사실 '규범문법'은, 그 이름에서 느낄 수 있듯이, 잘해야 '문법'의 일종이지 '문법' 전체를 대표하는 것이 아니다.


문법에는 '기술문법'이라는 것도 있으며,

실은 언어학에서 아무런 수식어 없이 그냥 '문법'이라고만 말하면 이 '기술문법'을 가리키는 것이다.


하나씩 알아보도록 하자.



'규범문법' 또는 언어에 대한 '규범주의(prescriptivism)'란,

- 특정한 발음/어휘/구문의 모습을 옳은 것/바람직한 것/아름다운 것/논리적인 것이라고 믿는 동시에

- 그와 다른 방식의 발음/어휘/구문을 두고 그른 것/추한 것/비논리적인 것이라고 하여 자제/금지하고자 하는 태도(로 만들어진 일련의 규칙 목록)를 말한다.


따라서 규범문법의 규칙은 '~해야 한다', '~하지 말아야 한다'와 같이 당위를 나타내는 말로 이루어져 있다.


"- '불을 켜다'는 '불을 켜고'처럼 활용해야지 '불을 키고'처럼 활용해서는 안 된다."

"- 의존명사 '것'은 앞말과 띄어 써야지 붙여 써서는 안 된다."

대략 이러한 것들이 규범문법에서 말하는 '문법 규칙'이다.

(흔히 '맞춤법'으로 통칭하는 정서법 규정을 포괄한다.)


+ 영어에서 대표적인 규범문법 규칙은 예를 들어 "to 부정사의 to와 동사원형 사이에 뭔가를 끼워넣지 말아라(do not split infinitives)"와 같은 것이 있다.


"한국어 원어민이라 해도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한국어의 문법 규정을 어길 위험이 있다"고 할 때의 '문법 규정'이란 바로 이 '규범문법 규칙'을 말하는 것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규범문법의 규칙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해야 한다'가 아니라 '~하지 말아야 한다' 부분이라는 것이다.


규범문법의 규칙을 만들고 집행(?)하는 사람들은 보통 그러한 규칙이 잘 지켜지고 있는 현장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


따라서 어떠한 규범문법 규칙이 자주 언급된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들이 그 규칙을 자주(활발히) 어긴다는 방증이 된다. 여기에 대해서는 이따 좀더 이야기하기로 하자.


어쨌든 언어학에서 '규범문법'은 주된 관심사가 아니다.

이제 언어학이 '문법'을 바라보는 관점, '기술문법'에 대해 알아보자.




'기술문법' 또는 언어에 대한 기술주의(descriptivism)란,

- (주로 원어민) 화자가 언어를 사용하는 방식을 있는 그대로 묘사(describe, 기술)하는 것이다.

     + 언어학은 현상관찰하고 기록할 뿐, 거기에 대해 좋다/나쁘다 등 아무런 가치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 그리고 묘사된 결과물을 가져다 화자가  그러한 방식으로 언어를 사용하는지 설명하고자 하는 것까지가 언어학(기술문법)의 연구 목표이다.



위에서 예로 들었던 '됬', '키고', '것'에 대해 기술문법적인 접근, 언어학적인 접근을 하자면 대략 이렇게 된다.


- 한국어 원어민들의 문자언어 생활에서 '되다'의 과거형에 '됬'이라는 어형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현상 관찰 및 기록)

     + '됐' 대신 '됬'이 쓰이는 것은 기존에 단모음이었던 /ㅚ/가 이중모음화되어 /ㅙ/와 똑같이 발음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왜 그러한 현상이 나타나는지 설명)


- 한국어 원어민들이 '불을 켜다'를 '불을 키고'처럼 활용하는 현상이 자주 관찰된다. (현상 관찰 및 기록)

    + (왜 그러한 현상이 나타나는지 설명) 내용은 아래 글을 참조

https://brunch.co.kr/@saokim/51


- 한국어 원어민들의 문자언어생활에서 의존명사 '것'을 앞말에 붙여 쓰는 모습이 종종 보인다. (현상 관찰 및 기록)

    + '읽는것', '보는것'과 같이 용언 관형사형 뒤에 '것'을 붙여 쓰는 경우, '읽는'과 '것'이 함께 '읽기/읽음'처럼 단일성이 있는 의미 단위를 나타낸다는 의식이 한국어 원어민들에게 있는 듯하다. (왜 그러한 현상이 나타나는지 설명)



이상의 기술문법적 진술에는 '됬' 등에 대해 '옳다/그르다'나 '좋다/나쁘다'와 같은 말이 조금도 들어가 있지 않다는 점에 주목하자.

기술문법은 그저 그러한 현상이 있다고 말할 뿐이다.





그러니까 언어학에서 말하는 '문법'이란, 원어민이 준수할 수도 있고 위반할 수도 있는 법 규정과 같은 것이 아니다.

차라리 자연과학이 말하는 '질량 보존 법칙'이라든가 '만유인력의 법칙'같은 자연 법칙(scientific law)과 더 비슷한 면이 있다.


한번 생각해 보자. 사회의 '법률'과 같은 윤리적인 규정과학의 자연 법칙은 뚜렷하게 대조된다.


- '남의 물건을 훔치지 마라'라는 윤리 규정에 대해서는, 그 규정을 위반하는 사람이 교정의 대상이 되지만,


- 수성의 궤도가 만유인력의 법칙을 '위반'했듯이, 자연 법칙에 대한 위반 사례, 즉 반례(counterexample)가 나타나면, 과학자들은 수성의 궤도를 어떻게든 만유인력의 법칙에 들어맞도록 교정해 보려 하는 게 아니라, 자신들이 기술(describe)해 온 내용이 자연 법칙의 실제와 들어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그 법칙(에 대한 기술)을 폐기 또는 수정하고자 한다.


이 중에 후자가 바로 언어학자가 문법을 대하는 태도이다.


(외대 전종섭 교수님의 수업에서 효과[효과]와 함께 들었던[聞] 예시인데, )

주체 높임 선어말어미 '-시-'가 "커피 나오셨습니다"와 같이 특이하게 쓰이는 경우에 대해,

언어학자는 보통 원어민들에게 '커피 나오셨습니다'라는 말을 쓰지 말라고 하는 게 아니라,

기존에 언어학계가 갖고 있었던 '-시-'에 대한 이론(문법 기술)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그 이론을 수정하고자 한다.*


* '문법'과 '자연 법칙'의 차이점 한 가지는 '문법'이 '자연 법칙'과 달리 항상 변화한다는 점이다.

'커피 나오셨습니다'가 늘 있던 현상이었다면 이 현상을 놓친 '-시-'에 대한 이론은 '잘못된 것'이 되겠으나,

만약 '커피 나오셨습니다' 현상이 어느 순간 새로이 등장한 것이라면 기존의 '-시-' 이론은 해당 현상이 등장하기 전까지의 한국어에 대한 이론으로서 문제가 없을 것이다.

후자와 같은 상황이라면 언어학자는 새로운 '커피 나오셨습니다' 현상이 문법요소 '-시-'의 변화에 대한 단서가 되는지 면밀히 검토하고, 이것이 기존의 문법체계에서는 생성되지 않을 현상이며 문법체계의 변화가 맞다고 판단된다면, 새로운 문법 체계를 잘 기술하고, 한국어에 이러한 변화가 생겨난 이유와 그 기제는 무엇인지 설명할 것이다.

어느 쪽이든 원어민들에게 '커피 나오셨습니다'라는 말을 쓰지 말라고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한편 많은 언어학자는 문법의 변화 양상까지를 포괄하여 설명하는 언어학 이론을 세우고자 하는데, 그런 이론은 (목표를 달성한다면) 보편성 면에서 불변의 자연 법칙과 성질상 꽤 유사한 것이 될 것이다.

('문법이란 녀석은 이러이러한 방향으로 변화한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는데, 그것은 이러이러한 이유 때문이다'와 같은 이론은 꽤나 보편적인 이론이 될 것이다.)


+ 어딘가에서 "동물학자가 박쥐더러 '너는 포유류 주제에 무슨 비행이냐? 날지 마.'라고 할 리가 없는 것과 같다."는 말을 본 적이 있는 듯.




언어학이 말하는 '문법'을 이해해 보는 방식으로 또 이런 게 있다.

'문법'은 마치 컴퓨터 프로그램을 실행시키는 명령어(코드)들처럼, 원어민의 머릿속에서 문장을 만들어내는 규칙(생성 규칙)과 같다.


이를테면 한국어 원어민의 머릿속에 이러한 명령어(코드)가 들어 있다고 생각해 보자.


- 체언에 주격조사를 붙일 때, 체언이 자음으로 끝나는 경우 '-이'를 사용하고 모음으로 끝나는 경우 '-가'를 사용하라.


머릿속에 이러한 코드를 가진 한국어 원어민은 '사람-주격조사'를 '사람이'라고 표현할 것이고, '사과-주격조사'는 '사과가'라고 표현할 것이다.


이렇게 '사람이'와'사과가'를 만들어내고 '*사람가'나 '*사과이'는 만들어내지 않는 명령어(코드)가 곧 언어학이 말하는 '문법'이다.

+ 규범문법'*사람가'나 '*사과이'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하면 꽤 흥미롭다.


(사실 이러한 관점은 주로 생성문법적인 것이고 언어학철학적인 전제에 따라 학파마다 다소 다른 입장을 갖지만, 하여튼 규범문법에서 말하는 것과 같이 원어민이 신경쓰지 않으면 위반할 수도 있는 규정 목록을 '문법' 또는 그 전부라고 여기는 언어학자는 없다고 봐도 될 듯하다. 언어학철학적 전제에 대해서는 아래 문서 참조. 언어철학이 아니다!)

https://plato.stanford.edu/entries/linguistics/


+ 본문에서 다소 섞어서 설명했지만, 기술문법문장 생성 코드로서의 문법이 서로 완벽히 같은 것은 아니다. 대략 '기술문법''문장 생성 코드로서의 문법'에 대한 모조품이라고 생각하면 될 듯. (언어학자의 목표는 모조품의 모습이 보다 원본에 더 가까워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 표준어제일주의규범주의는 맞닿아 있고 언어학은 보통 표준어제일주의하고도 대척점에 서지만 본문에서는 그에 대해 다루지 못했다. '사투리'도 언어학에서는 '표준어(또는 중앙어)'와 완전히 똑같은 자격을 지닌 데이터이자 연구 대상이라는 점만 언급해 둔다.



+++ 규범문법이 언어학의 주된 관심사가 아니라고 해서 규범문법이 그 자체로 나쁜 것이라는 뜻은 아니다.

규범문법에는 그 나름의 효용이 분명히 있으며, 그런 효용 중에는 (우연히도?) 언어학 연구에 도움이 되는 효용도 있다.


예를 들어 코퍼스를 활용해 언어학 연구를 할 때는, 목적에 따라 어형에 어느 정도씩 통일성이 있어 주는 편이 수월할 때가 많다.

전에 '곧이곧대로'와 '믿다'의 연어를 조사해 볼 때 '곧이 곧대로'를 미처 포함하지 못했었다.


또 (특히 요즘처럼 중앙어의 힘이 강한 시대에는) 규범문법이 언어의 모습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므로, 언어학자는 규범문법을 분명히 의식할 필요도 있다.


이를테면 '바라다[望]'의 활용형으로서 규범문법이 제시한 '바라'는 (아마도 다른 어떤 요인도 아니고) 규범의 힘에 의해 언중의 언어생활에 상당히 깊이 정착하여 '바래'를 거의 대체해 가는 중인 듯 보이는데, 이 또한 흥미로운 현상이고 언어학자가 관찰, 기술, 설명해야 할 대상이 된다.


+ 효과[효과]도 원랜 순수히 규범주의적인 동기로 생겨난 발음이었던 듯한데, 이젠 꽤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명백히 한국어 안에 실재하는 어형이 되어 버렸다.


또, 강력한 언어 규범은 잠재적으로 가능했을 언어 변화를 억제할 때가 많은 걸로 보인다. 이 또한 기술의 대상이 되는 중요한 경향성이다.



++++ 언어학자도 규범주의적인 태도를 지닐 때가 있고, 그 자체로서는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는 현상이다. 그 또한 메타적으로 기술의 대상이 될 수 있겠다.

(어느 교수님이 후배 연구자 분께 '너는 언어학 한다는 녀석이 ~~같은 말을 쓰다니, ##라고 말해야지.'라고 말씀하시는 모습을 본 게 인상 깊었다. 교정의 대상이 됐던 건 아마 '이번 년도'였나?)





https://blog.naver.com/ks1127zzang/223349645668

위 글에 Neky 님이 아래와 같이 댓글을 남겨 주셨다.


Neky 님이 남겨 주신 댓글: "모어 화자는 사실 자기 언어의 형태론적, 통사론적 구조를 신경을 덜 쓰는 수준을 넘어서 애당초 인지하지 못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라고 봅니다. 영어의 'could of', 'would of' 등의 표현을 보면 대놓고 통사론적으로 매우 기초적인 규칙이 파괴된 것을 볼 수 있죠.


제가 본 어느 미국인은 대놓고 저거 맞는 표현이라고도 하더군요. 제아무리 영어가 기술주의를 취한다 한들 당장 구글에 검색만 해도 저거 교양 없는 영어로 다들 받아들이는데(즉, 기술문법적으로도 틀린 것으로 받아들여진단 뜻) 정말 당당하게도..."



이 댓글에 답글을 쓰다 보니 블로그 본문에도 관련된 내용을 남겨 놓고 싶어서 이 글을 적어 보게 됐다.



내가 남긴 답글:

어떤 형태소의 음운 형식이 심하게 축소되어 어원의식이 불투명해질 때 그것을 원래의 어원과는 다른 엉뚱한 요소와 결부하는 일은 종종 있는 거 같습니다. 영어 the X-er the Y-er구문의 the 또한 그런 사례이고요. 통사규칙상 정관사가 나올 자리가 아닌데 등장하고 있고 의미도 정관사하고는 딴판이니까요.

말씀하신 woud of, could of 등에서도 나타나는 모어 화자의 무신경함이 개인적으로는 언어변화를 견인하는 주요한 기제로서 아주 흥미롭고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언어학자의 역할은 그런 기제를 자세히 들여다 봄으로써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의미 있는 통찰을 도출하는 거겠죠 (그래서 언어학은 과학 방법론을 사용하면서도 인문학의 일부인 거겠고요)

요컨대 '이렇게나 명백해 보이는 사실을 무시한다니/인지하지 못한다니 흥미롭다. 무엇이 인간으로 하여금 이것을 인지하지 못하게 만드는가? 이것을 인지하지 못함으로 인간이 얻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거죠.


제가 이해하기로 기술주의, 규범주의는 관대함의 정도를 나타내는 연속선상의 양 끝을 부르는 이름이 아니고, 그냥 어떤 현상에 대해서 취하는 태도가 무엇이냐를 나타내는 것이라 서로 전혀 다른 레벨에 있는 개념 같습니다.


말씀하신 사례를 제가 생각하기에 언어학에 적합한 기술주의를 따라 '기술(describe)'하면 아래와 같아집니다.


- 영어 모어 화자의 상당수가 영어를 글로 쓸 때 다른 조동사 뒤에 접어화되는 완료 조동사 've를 (슈와 삽입을 고려하면) 그와 발음이 같은 of로 표기한다. (그런 현상이 관찰된다.)

- 많은 사람들은 해당 표기를 '교양 없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런 불문(不文)의 규범이 존재한다. (그런 현상이 관찰된다. 사회언어학적 기술)


기술주의의 소관 범위는 딱 여기까지이고, 실제로 could of가 틀린 것인지 옳은 것인지를 논하는 순간 그 언술은 본질상 규범주의적인 것이 되죠.



말씀하신 현상처럼 논리적 모순이 꽤 명백해 보이는 상황에서도 모어 화자들은 개의치 않고 언어를 변화시켜 가곤 하는데, 그런 변화를 두고 교육의 부족이라고 여기고 교정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은 국어선생님의 역할이지 언어학자의 역할은 아니라고 봅니다. 언어학자의 역할은 '이 언어의 화자들은 이 현상을 교양없는 것, 교정의 대상으로 여긴다'라고 기술하는 데까지죠. 언어학자 개인이 다른 사람의 언어사용에 대해 그런 교정을 시도하는 것은 자유지만 그 행동은 언어학 학술 활동이 아닐 것입니다. (제가 언어학자는 아니지만 제 얘기를 하자면 저도 종종 가벼운 문법나치 행동을 하는데, 그게 언어학 학술 활동이라고 생각하고 하는 건 아닙니다.)


이중부정, 이중피동, 동어반복 등도 다 비슷한 사례들이겠죠.


그래서 '영어는 기술주의를 취한다'라기보다 '영어 화자들의 규범의식은 한국어 화자들의 규범의식에 비해 덜 세세한 편이다', '영어의 규범은 한국어의 규범과 달리 단일한 기관이 독점적으로 제/개정하고 화자 공동체에 보급하는 것이 아니라 권위 있다고 여겨지는 여러 기관이 공유하는 관습의 총체이다'가 더 나은 것 같습니다.

어떤 언어든지 공동체가 공유하는 일종의 규범의식, 사회언어학적으로 어느 게 교양어고 어느 게 아니다라는 의식은 어느 정도씩 있는데 그런 의식 자체가 일종의 규범주의적 의식인 거죠. (그 자체로선 나쁠 것도 없는 거고요)

그런 의식을 정치체가 명문화하고 화자들의 언어생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자 한다면 강한 규범주의가 되는 것이겠고요.


기술문법은 규범이 아니라 묘사, 언어구조에 대한 모사이기 때문에 '기술문법적으로 옳다, 기술문법적으로 틀리다'라는 말 자체가 저에게는 어색하게 다가옵니다만, 그래도 그런 표현에 실을 만한 의미를 말해 보자면 '기술문법적으로 옳다'란 '(원어민 화자가 의도하지 않은 slip of the tongue같은 말실수가 아닌, 원어민 화자의 의도대로의 발화에서) 발견된다'라는 뜻이고, '기술문법적으로 틀리다'란 '(원어민 화자가 의도하지 않은 slip of the tongue같은 말실수가 아닌, 원어민 화자의 의도대로의 발화에서) 발견되지 않는다'라는 뜻이 될 것입니다. (언어학 논저에서 쓰이는 * 표시는 ill-formed라는 뜻으로도 쓰지만 unattested라는 뜻으로도 쓰이죠)


여기에 규범문법과 기술문법의 본질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어떤 어형이 규범문법에서 틀렸다고 지적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오히려 상당수 원어민이 그 어형을 꽤 자주 일관되게 사용한다는 방증이고 따라서 기술문법에서는 그런 어형의 존재를 부정할 리가(그런 어형을 틀렸다고 할 리가) 없죠.


'커피 나오셨습니다'는 한국어 원어민이 매우 활발히 사용하는 구문이기 때문에 규범문법이 허구한 날 지적하는 대상이 되지만 (기술문법에서는 당연히 그 존재를 긍정하고 설명의 대상으로 삼고요),

규범문법이 이를테면 '*먹았다'라는 어형을 두고 지적할 일은 전혀 없을 것입니다. 원어민은 아무도 그렇게 말하지 않으니까요. 언어학의 기술문법은 오히려 '*먹았다'가 틀린(발견되지 않는) 어형이라는 사실을 흥미롭게 여기고 거기에 집중하여 어떤 규칙이 그것을 틀리게(생성되지 않게) 만드는지 밝혀 보고자 하고요.

물론 규범문법가에게 누군가 '*먹았다'를 가져다 보여주면서 옳은지 틀린지 물으면 그때는 틀렸다고 답하겠지만, '*먹았다'는 말하자면 규범문법에게는 아주 생뚱맞은 녀석일 것입니다. 전혀 주된 관심사가 아니니까요.


그러니까 어떤 의미에서 '기술문법적 틀림'은 '규범문법적 틀림'의 부분집합이 아닌 거죠.

(예전에 어느 통사론 수업의 오티 시간에 교수님이 기술문법과 규범문법의 틀림을 이런 식으로 대조하셨던 거 같네요.)


따라서 '기술문법적으로 틀림'의 범위는 매우 특정하고 제한적이며, 규범이 말하는 틀림과는 성격 자체가 다릅니다. 그냥 '(원어민 화자가 의도하지 않은 slip of the tongue같은 말실수가 아닌, 원어민 화자의 의도대로의 발화에서) 발견되지 않는다'라는 뜻으로만 생각하는 게 맞을 것 같아요.


말씀하신 of에 대해 영어 화자 상당수가 해당 표기를 교양없는 것으로 여긴다는 사실(현상)은 그 표기가 '기술문법적으로도 틀린 것'이라는 뜻이 아닌 거죠. 왜냐면 상당수 사람들이 상당한 빈도로 일관되게 사용하는 표기이고 따라서 언어학자의 눈앞에 분명히 존재하는, 관찰되는 현상이니까요.





예전에 어느 언어학 전공자 분이 대략 '언어학은 언어규범주의와 사이가 멀지만, 언어학을 좋아하는 사람은 과거에 언젠가 남들의 문법을 지적하기 좋아하는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언어학에 관심 갖는 것과 남들의 문법 규범 위반을 잘 감지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비슷한 성향에서 비롯된다.'와 같이 이야기하시는 걸 본 적 있는데, 재미있고 공감되는 말씀이었다.


그래서 '언어학자는 맞춤법을 잘 알까?'에 대해 답을 내리자면,

'그런 언어학자도 있고 안 그런 언어학자도 있을 수 있는데, 내 생각에는 언어학자도 기왕이면 맞춤법을 알 만큼 알아 두는 게 좋을 것 같다. 왜냐면 규범이 언어의 모습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기 때문이다.'라고 하겠다.



+ 나는 '됬' 같은 게 규범에 편입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빈도도 좀 적은 거 같고('바래'가 대체돼 버린 것과 비슷할지도) 언중의 인식에서도 너무 뚜렷하게 비표준이라는 생각이 퍼져 있기 때문이다. 그치만 아래와 같은 건 어떨까?

https://m.blog.naver.com/ks1127zzang/222841096374


언어의 '표준'은 '옳은' 것도 아니고 '좋은' 것도 아니다. 그냥 공적인 상황에서는 그렇게 말하기로 하자, 방언끼리가 너무 달라서 소통이 불편할 만한 상황에서는 그렇게 말하기로 하자고 정한 도구적인 존재일 뿐.

상황에 맞게 옷 입는 것과 비슷하다는 비유를 전에 어디서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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