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벌을 내린 것처럼 최근에 재미난 일들이 연달아 일어나는 중이다. 정신을 다잡기가 얼마나 힘들던지. 나중에 이같은 불행을 기억하고자 내용을 정리해본다. 불운에 매몰되면 나에게만 일어나는 일이라며 특별성을 부여하고 하늘을 원망하는 등 온갖 의미부여를 시작한다. 비단 어떤 일이든 모두에게 일어날 수 있으며 누구나 시련을 맞이하며 우주적 관점에서는 아주 사소한 일일 뿐임을 기억했으면 좋겠다.(라고 스스로에게 전한다.)
1. 올해들어 가장 더웠던 8월의 셋째주에 돈을 구하러 커피 프랜차이즈 물류센터 단기 아르바이트를 뛰었고 오른쪽 네번째 손가락이 골절됐다. 괜찮냐는 말 한마디 없이 한숨만 푹푹쉬며 짜증을 내던 관리자와 인력업체 담당자의 얼굴을 내 영원토록 잊지 않으리.
2. 내가 사는 곳에서 가장 유명하고 큰 정형외과에 방문했는데, 간호사 선생님이 손가락 깁스를 반대방향으로 알려줘 일주일 간 잘못된 방향으로 깁스를 했다. 뼈와 관절을 다루는 병원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게 믿겨지지 않았지만 사람이니 실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병원에서 따로 사과는 없었고 결국 컴플레인을 걸었다.
3. 산재를 신청한 지 몇 주 후에 복지공단에서 전화가 왔다. 공단 자문의가 판단하길 골절이 아니며 단순 염좌라고 하니 병명을 변경해서 신청하란다. 내 주치의와 함께 CT 사진에서 골절을 확인했고 증상 또한 골절이 분명한데 아니라고 하니 어이가 없었다. 나를 직접 진료보지도 않고 판단하는 자문의 말이 왜 절대적이 되는지, 내가 왜 그사람으로 인해 피해를 봐야하는지 모르겠다고 공단에 따졌고 어쨌든 자문의는 이미 그렇게 판단했으니 재심사청구를 직접 와서 신청하란다.
4. 버스정류장에 서있다가 발등 습격을 당했다. 이제껏 가끔, 아주 살짝 밟히는 정도야 있었지만 이렇게 공격 당하는 느낌은 또 처음이었다. 모자를 쓴 백발의 노인이었는데 당신이 넘어질 뻔 해서 착지한다는 게 내 발등위에 안착한거다. 아프고 깜짝놀라 악 소리를 냈는데 귀에 무선이어폰 꼽고 버스타고 유유히 사라진 노인...사과 한 마디 안하는 행태에 분노 대폭발.
5. 웬만하면 참으려고 했는데 계속 시큰거리는 발등으로 인해 파스라도 사자는 생각으로 약국에 갔다. 약사 선생님 왈 그 정도로는 굳이 파스 바를 필요 없어요. 이거 두 개 드세요 하며 약을 두 개 꺼내신다. 그 정도로 바를 필요는 없다면서 왜 약은 두 개나 먹어야하지? 하나만 주세요 하니 뼈에 좋은 약이라고 하루에 두 번 먹으란다. 겉면 바코드 찍으니 만 원이라고. 구입하고 보니 약도 아니고 건강기능식품이었다. 약사가 아니라 엄청난 능력의 영업사원이 아닌가.
더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대충 추려봤다. 가만 보면 엄청나게 큰 불운은 아닌데 되게 사소하고 지질한 형태의 불행들이다. 나름 담담하게 글을 썼지만 사건(?)이 일어난 그 순간에는 마음이 참 힘들었다. 특히 오른쪽 손을 다쳐서 설거지 하나 제대로 못하고 글자 하나 제대로 못 쓰자니 답답해 미칠 노릇. 어쨌든 지금은 많이 나아져서 이렇게 글도 쓸 수 있고 참 행복하다. 불행과 고통이 있어야 행복이 느껴진다는 걸 절실히 실감하는 중.
나쁜 일들이 연달아 일어났을 때 그 일 자체에 몰입하는 게 더 큰 구렁텅이로 빠트리는 지름길 같다. 사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인데, '왜 나에게만 이런 시련이!'하며 일종의 자아도취적 부정에 빠지는 게 문제랄까. 고통과 시련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그리고 그 사실을 받아들이면 우울하고 고통스러운 상태에서 빠르게 벗어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