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년생이 들려주는 옛이야기를 시작한 계기

intro

by HYE

벌써 내 나이 서른일곱의 끝자락.
시간이 이토록 빠르게 흘렀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이제는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건만,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면 여전히 마음은 여고생의 자리로 돌아간다.
수다를 피워내는 그 순간만큼은 세월도, 주름도, 아이의 울음소리도 잠시 멈춘 듯하다.

그러다 문득, 내가 뛰놀던 운동장과 지금의 내 모습을 떠올리면 낯설다.
내가 그때의 나에서 이렇게 멀리 와버렸다는 사실이, 때로는 기적처럼, 때로는 아득하게 느껴진다.

요즘은 딸아이를 안고 있는 엄마의 모습을 자주 본다.
할머니가 되어버린 엄마가 내 아이를 돌보는 그 장면은, 오래전 나를 품에 안고 있던 외할머니의 모습과 겹쳐진다.
할머니는 1919년에 태어나셨고, 내 딸은 2025년에 태어났다.
그 두 생명의 사이에 내가 서 있다.
시간으로 따지면 백 년의 강을 건너는 일이다.
그 사이를 내가 잇고 있다는 생각에, 왠지 모를 경건함이 스며든다.

내 어린 시절은 시골의 냄새로 가득했다.
봄이면 장독대 옆 매화가 피었고, 여름이면 논두렁에 개구리 울음이 가득했다.
그 시절, 나는 할머니의 무릎에 기대어 일제강점기 이야기와 전쟁의 흔적을 들었다.
그 모든 이야기가 내 안의 뿌리가 되었다.
하지만 내 아이는 그런 이야기를 들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종종 생각한다.
내가 그 다리가 되어야겠다고.
할머니의 이야기와 나의 이야기가, 내 아이의 귀 속에서 다시 이어질 수 있도록.

나는 시골에서 자랐고, 남편은 도시에서 자랐다.
내가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면, 남편은 웃으며 묻곤 한다.
“정말 89년생이 맞아?”
같은 시대를 살았는데도, 기억의 풍경은 이렇게 다르다.
그래서일까, 그는 내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즐겁게 웃고, 나는 그 웃음 속에서 내 추억이 빛을 되찾는 것을 느낀다.

이제는 그 시절을 글로 남기고 싶다.
나의 어린 날과, 엄마와 할머니, 그리고 내 아이까지 이어지는 시간의 고리를 글로 엮고 싶다.
누군가에게는 낯선 이야기일지라도, 나에게는 세대를 잇는 한 편의 기록이자, 사라지지 않을 기억의 증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