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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원 Jun 25. 2023

오드리의 식당 이야기 (성공)

2편  :  핵인싸가 된 오드리


연이은 두 번의 실패로 심신은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오드리는 쉴 수가 없었다. 이래저래 쌓인 은행빚이 매달 그녀를 독촉하고 있었다.


두 달간 인터넷을 뒤지고 발품을 판 끝에 이번에는 바다와 가까운 작은 도시에 자리를 잡았다. 어릴 적 부모님을 따라 몇 번 와 본 적이 있는 곳이다. 마침 어시장 끄트머리에 있는 자그마한 가게가 임대로 나와 있었다.


개업을 준비하는 오드리의 마음은 무거웠다.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몰려왔다.

하지만, 늘 그래왔듯 믿고 의지할 데는 자신뿐이다. 몇 년간 바짝 벌어 빚을 다 갚으면 전주로 다시 돌아가 번듯한 식당을 차리것이 그녀의 최종 목표다.


가장 중요한 과제인 식당 이름은 고민 끝에 '전주맛집'으로 정했다. 전에 사용하던 '오드리' 간판은 퇴폐 유흥업소 느낌이 다는 친구의 지적 때문이었다. 


가명은 그대로 사용하기로 했지만, 오드리 대신에 오사장으로 불리기를 바랐다. 홀 업무는 전주에 있을 때 같이 일 했던 여 종업원을 간신히 데려와 맡겼다.


해산물과 육류를 혼합한 퓨전요리가 특색인 '전주맛집'은 개업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유명 맛집이 되었다. 동생이 가르쳐 준 인스타와 블로그의 도움이 컸다.


장사가 잘 되자 오드리의 마음 한 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불안도 덩달아 꿈틀거렸다. 그녀어시장의 텃세와 시장통  여자들을 의식해 최대한 몸을 낮췄다. 화장은 일절 하지 않았고, 수수한 옷차림에 도수 없는 꺼벙한 안경을 착용하고 다녔다.


하지만, 아무리 가리고 숨겨도 타고난 매력은 자체적으로 발광해 어시장과 주변 일대를 환하게 비추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남자들의 눈빛이 게슴츠레해지기 시작하자, 그동안 생각해 둔 것들실행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먼저, 어시장 상인회를 찾아가 떡과 음료수를 돌리고 다음으로 마을 부녀회장에게 접근했다. 마스크팩과 백화점용 영양크림은  두 사람을 언니동생 사이로 만들어 주었다.


그녀가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마을 경로당이었다. 식당 문을 닫는 날에는 남은 식자재로 몇 가지 음식을 만들어 마을 어르신들께 대접했다. 얼마 후 노인들에게 오드리는 딸이자 며느리 같은 존재가 되었고, 노인들은 오드리의 단골손님이 되었다.


어느 날 저녁, 부녀회장이 찾아와 부녀회 총무자리가 비었는데 맡아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오드리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 자리에서 승낙하고 늦은 밤까지 부녀회장 언니와 수다를 떨었다.


오드리의 명성은 점점 높아졌다. 어시장 일대에서 오드리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손님들을 뺏겨 시기하던 일부 식당 주인들도 조금씩 그녀를 이웃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섹시한 오드리가 아니라 이제는 자영업자 오사장이었다.


가끔 술에 취해 민망 농담을 던지는 남자들도 있었지만, 어시장과 마을에서 이미 공인이나 마찬가지인 오드리를 함부로 대하지는 못했다.


'전주맛집'이 많이 알려지면서 배달 주문이 늘어나자 오드리는 종업원을 한 명 더 고용했다. 식당 한쪽에서 별도로 반찬들을 포장해 팔았는데, 주부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영감의 반찬투정이 사라졌다며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는 할머니들도 있었다.


반찬 판매가 생각보다 잘 되자 온라인 판매에 도전했다. '오드리 반찬'이란 스티커를 붙여 인스타에 올리자 단골이 하나 둘 생기더니 몇 개월 뒤 전국으로 팔려 나갔다. 오드리는 인근에 비어 있는 점포를 임대해 '오드리 반찬'이 적힌 간판을 걸었다.



과거의 트라우마에서 완전히 벗어난 오드리는 촌스러운 옷차림 대신에 옷장에 보관해 두었던 세련된 옷을 다시 끄집어냈다. 도수 없는 어색한 안경을 벗어던지고 최근 유행하는 액세서리를 착용했다. 그녀는 인스타 내에서는 오드리가 아니라 오드리 헵번이 되어 있었다.


하루는 시장 내 여자들이 무리를 지어 오드리를 찾아왔다. 오드리는 여자들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순간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바짝 얼어붙은 그녀에게 여자들이 앞다투어 달려들었다.

"자기야, 그 블라우스 어디에서 샀어?"

"오사장, 내가 돈 미리 줄 테니 같은 귀걸이로 부탁해"


오드리의 본명은 오영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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